[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황선관 씨(40)는 2016년 1월, 그동안 이랜드에서 받은 후원금을 '반납'하기로 결심했다. 2010년대 초반, 이랜드그룹 산하기관 아시아미션은 당시 선교 단체에서 활동했던 황선관 씨에게 3년간 매달 20만 원을 후원했다. 아시아미션은 해외 선교사와 대학교 선교 단체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황 씨가 이제 와서 후원금을 반납하기로 결심한 건 지난해 11월 이랜드파크 관련 보도 때문이다. 이랜드그룹 외식업 계열사 이랜드파크가 아르바이트생 4만여 명의 임금 총 83억 7,200만 원을 체불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임금 체불 외에도 임금 꺾기, 근로시간 임의 조정, 휴게 시간 미보장, 종교 활동 강요 등 각종 부당 행위가 있었다.

"11월 나온 기사를 보고 고민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선교 단체에서 캠퍼스 간사로 활동했거든요. 청년 사역자인 내가 이 일을 그대로 두고 봐도 되는지 생각했어요. 청년을 쥐어짜 벌어들인 돈으로 직접 수혜를 입은 당사자였으니까요. 고민하던 중 12월에 이랜드파크의 임금 체불과 부당 행위가 다시 뉴스에 나왔어요. 그때 결심했죠. 반납해야겠다고."

이랜드파크 임금 체불 사태를 본 황선관 씨는 자신이 받은 이랜드 후원금을 모두 반납하기로 결심했다. 사진 제공 황선관

일터신학 왜곡한 교회
법과 원칙 어기는
기독교 기업 만들어

이랜드그룹은 기독교 기업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설립자 박성수 회장은 사랑의교회 고 옥한흠 목사에게 제자 훈련을 받았다. 그는 작은 옷가게였던 이랜드가 연간 매출 10조를 거두는 그룹으로 성장한 비결이 기독교 정신을 반영한 경영에 있다고 간증해 왔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이랜드그룹이 기독교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다.

황선관 씨는 기독교 기업을 표방한 이랜드그룹이 오히려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실에 분개했다.

"기독교 기업이라고 해서 특별한 기업 윤리를 바란 건 아니에요. 그래도 최소한 법은 어기지 말았어야죠. 법은, 대중들이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만든 최소한의 윤리, 규범이잖아요."

현재 황선관 씨가 신학 연수를 받고 있는 캐나다 리젠트칼리지에는 '일터신학'으로 잘 알려진 폴 스티븐슨 교수가 있다. 한국교회도 일터신학을 수용했다. 일터가 하나님이 일하는 현장이고, 일 자체가 예배라고 가르쳐 왔다. 이 영향을 받은 이랜드그룹은 매일 아침 QT 모임을 열고, 정기적으로 예배를 했다.

"한국교회가 일터신학을 왜곡해서 받아들인 것 같아요. 직장 내 기독교인에게 근본적 변화를 주지 못했어요. 이랜드그룹도 마찬가지고요. '하나님을 위해 일하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열심히 일하자' 같은 추상적인 메시지에 그쳐 있었어요. 개인 영성에만 몰두하고 법과 원칙을 지키는 건 신경 쓰지 않았어요."

이랜드그룹은 기독교 기업을 표방하며 '나눔', '바름' 등을 경영 이념으로 삼고 있다. 이랜드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11년간 캠퍼스 간사 생활
대학생들, 이중·삼중고 시달려
"이랜드, 부끄러움 느끼고
기업 문화 개선했으면"

황선관 씨가 이랜드그룹 산하 기관 아시아미션에서 받은 후원금은 총 720만 원이다. 그는 '민달팽이유니온'에 6년간 매달 10만 원을 내기로 약정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청년들이 스스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이랜드그룹이 아르바이트하는 젊은이들 돈을 빼앗았으니, 동시대 젊은이에게 돌려주는 게 맞겠다고 황 씨는 생각했다.

"사회는 청년들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커요. 기성세대가 20대 청년을 돌보는 울타리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착취하고 있죠. 이랜드파크에서 나타난 임금 체불, 부당노동행위, 비정규직 문제가 단적인 예죠. 청년 단체에 후원금을 반납하는 것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 의도가 깔려 있어요."

황선관 씨에게 '청년'은 좀 더 특별하다. 그는 조이선교회에서 11년 동안 간사로 지냈다. 소위 '필드'에서 활동하는 캠퍼스 간사였다. 서울시립대, 고려대, 건국대, 한국외대,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교를 돌며 많은 대학생을 만났다. 청년들 삶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이들이 겪는 어려움, 아픔,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학생들은 정말 치열하게 살아요. 고등학교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친구들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것을 봤어요. 등록금,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죠.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은 주거비까지 마련해야 했어요. 서울은 땅값이 전국에서 제일 비싸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학업, 외국어, 자격증 공부까지. 이중, 삼중으로 떠안고 있어요."

황 씨는 선교 단체 간사 시절 고민했던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가 담당하고 있던 학교는 선교 단체 회원이 20명이었다. 그중 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강남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이들의 부모는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선교 단체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 있는 학생들만 하게 되는 걸까.' 청년 문제는 항상 마음의 짐이었다.

황 씨는 10년간 캠퍼스 선교 단체 간사를 지냈다. 등록비·주거비 마련과 학업, 취업 준비로 치열하게 사는 청년들 삶을 가까이 지켜봤다고 했다.

막상 반납을 결심했지만 한 가지 고민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으로 주변 동료가 피해를 받지 않을까. 몇몇 간사는 지금도 후원을 받고 있었다. 선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했다. 동기 간사들에게도 단체 메일을 돌렸다. 다행히 동료들은 이번 결정을 존중한다며 황 씨를 지지해 주었다.

황 씨는 이번 일이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랜드그룹에서 후원을 받은 선교 단체 간사, 선교사 등 여러 사역자가 후원금 반납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청년 문제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후원하는 일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지난달 청어람 홈페이지에 이 같은 내용으로 글을 한 편 기고했다.

글을 올린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동참하겠다며 연락을 준 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현재 아시아미션에서 후원을 받고 있는 사역자인데, 자기도 준비 중이래요. 20만 원은 사역자에게 무시할 수 없는 액수예요. 부족분을 채울 수 있게 되면 후원금 반납에 참여하겠대요"라고 황 씨가 말했다.

주변에서는 오히려 황 씨를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황 씨가 민달팽이유니온에 내는 후원금에서 1달 치, 2달 치를 자신들이 내겠다는 것이다.

"예상치 않게 제가 주목받는 거 같아서 걱정이네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공명심 때문에 이런다고 뒤에서 얘기해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을 때도 후원금 반납보다 저에게 집중될까 봐 고민했어요. 그럼에도 인터뷰에 응한 건, 더 많은 사람이 이번 운동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에요.

무엇보다 이랜드가 정신 차렸으면 좋겠어요. 10년 전, 이랜드그룹은 홈에버 사태로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았어요. 오늘날도 임금 체불과 부당노동행위로 비난을 사고 있죠. 하나도 안 바뀌었다는 거예요. 이랜드그룹이 이번 일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기업 문화를 개선했으면 좋겠어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