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롬 13:1)

이 말은 대통령이나 공권력에 무조건 순종하란 말이 아니다. 로마서 13장 내용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는, 국가 지도자의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셨으니 국가권력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 구절은 나치 정권이 가장 선호하고 왜곡하여 사용하던 구절 중 하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이 이 구절 때문에 독재 정권에 저항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이 북한의 독재에는 항거하길 원한다. 얼마나 모순된 태도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얼만큼 국가 권위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 이 내용이 나오는 로마서 맥락을 보자. 먼저 사랑의 완성(12:14-31)이 나온 후, 그리스도인의 국가권력에 대한 자세를 다룬다(13:1-70). 이후 또다시 율법의 핵심으로 사랑이 언급된다(13:8-10). 그리고 종말이 가까웠다는 것이 주제로 다루어진다(13:11-14).

바울이 로마서 13장에서 국가권력에 복종하라고 말한 역사적 맥락은 무엇일까. 당시 열심당과 같은 동기를 가진 일부 기독교인 중엔, 황제가 아니라 예수가 이 세상의 '주님'이란 사상에 혁명과 봉기를 계획하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그들에게 정치적 혁명을 포기하라는 뜻일까. 아무리 봐도 그것이 본문의 맥락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혁명의 의도를 가진 기독교인들이 로마에 많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중엔 임박한 종말론과 하나님나라를 잘못 이해하여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본문의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은 높다.

왜 그럴까. 당시 로마의 시민권자들조차 황제를 뽑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일반 백성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길도, 정치인을 선택할 투표권도 없었다. 그들에게 선택권이라면 무정부주의나 민중 봉기였다. 예수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 봉기가 자주 있었다. 강력한 로마제국을 상대로 한 봉기의 성공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민중 봉기는 너무 위험한 선택이었다. 보다 소극적인 방법은 무정부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었다. 로마제국의 정치와 질서에 관심을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바는, 아마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관심 때문에 세상의 권력과 국가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들에게 호소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즉, 당시 임박한 종말론에 빠져 무정부주의에 빠진 이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 이는 정치와 사회 구조를 무시하거나 거기서 도망치면 안 된다. 오히려 세상 질서에 더욱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로마서 13장은 결코 정치적으로 무조건 혹은 최대한 기존 기득권을 누리는 정치 세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만일 그런 뜻이라면, 로마서 13장은 요한계시록의 로마 정권의 잘못된 정책과 질서를 비판하며 황제 숭배를 혹독하게 혐오하는 내용과 모순될 수밖에 없다. 또한, 기득권을 가진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잘못된 태도와 권력 남용을 비난하던 구약 선지자들의 태도와도 모순된다. 다른 곳에서도 바울은 무정부주의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우려하며, 국가의 권세와 평화를 기도하라고 한다(딤전 2:2; 딛전 3:1).

그럼 바울이 권력에 복종하라고 할 때, 이 권력은 어떤 권력과 질서를 뜻하는 걸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의 모든 권력과 정치적 규정들을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주장한 복종의 범주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자유와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는 국가의 질서를 뜻하고 있다. 신앙의 자유만 보장된다면, 교회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국가가 심하게 부정부패해도 그것은 세상에 맡기고 나는 신앙에만 집중하겠다는 자세는 오히려 신앙적이지 않다. 기독교인이라면 악에 복종할 수 없지 않은가.

세상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와 동떨어진 실체가 아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왕권이 필요했던 이유는, 족장 시대를 벗어나 국가가 형성되면서 무정부주의보다 왕정이 더 나은 제도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국가 제도는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왕권 제도보다는 민주주의를 선택하였다.

그렇다면 국가권력이 선을 추구하고 악을 막는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행4:19 5:29). 대통령과 측근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은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은가.

로마서 13장은 당시 국가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적 발상이 생소했던 고대에 쓰인 글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의 질서를 위해, 헌법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도 헌법을 지켜야 하며 국민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국가 제도에서 대통령이 해야 하는 최고의 의무다.

그리고 현명한 기독교인이라면 무조건 혹은 국가의 징벌 때문에 국가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위하여" 해야 할 것이다(롬 13:5). 세상 권세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 권세도 결국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만 한다(6절). 우리는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한다(7절). 그리스도인이 복종할 때, 그 동기의 중심은 악을 거부하는 사랑이어야 한다(12:9-10, 13:8-45).

그리고 그 사랑은 진리와 함께하며(고전 13), 억울한 자, 약자와 함께한다. 부정부패한 정권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맞서는 것이 사랑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모든 율법을 이루는 것이다(9). 그리고 그 이웃은 지금 신음하고 고통받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악을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한다. 정치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악에 침묵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절대 하나님 뜻이 아니다. 고통받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랑으로 가슴을 채우자!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악을 이기자. 여권도 야권도 국민이 깨어 있을 때 권력을 바로 사용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참으로 믿기 어렵다. 정치인들을 견제하고 국가의 정치와 질서에 관심 있는 양심 있는 시민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살길이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신앙, 그 오해와 진실>(새물결플러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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