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 촬영에 합류하고 싶다며 무작정 대만으로 건너간 배우 남정우 씨. 그는 뉴욕 영화사를 직접 찾고, 대만 세트장을 직접 찾아 다니며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단역 하나를 맡게 됐다. 사진 제공 남정우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고 인생이 바뀐 한 남자가 있다. 2월 28일 개봉하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에 나오는 한국 배우다. 등장 시간이 10초도 안 되는 단역이지만, 그 작품에 함께하고 싶어 인생을 걸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배우 지망생이었던 남정우 씨의 꿈은 서울에 있는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공부도 제법 했지만, 서울의 연극영화과들은 문턱이 높았다. 재수를 하면서 10개 대학에 원서를 지원했지만 그를 받아 준 곳은 딱 한 군데밖에 없었다. 단지 서울 도심에 있고, '나' 군에 지원할 학교가 없어서 교회 전도사님의 권유로 원서를 쓴 학교, 감리교신학대학교였다.

그렇게 2001년 감신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배우와 신학은 전혀 맞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만난다. 감신대 연극 동아리 '창조극회'에서 활동하던 그는 '침묵'을 연기로 접하게 됐다. 대학 1학년 1학기를 마치고서였다. 2학기를 휴학 신청한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영화 조명팀 일을 경험하려는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다. 그러나 동아리 선배는 '연기'를 권했다.

"'배우 되겠다는 놈이 조명판 들고 있는 게 낫겠냐, 아니면 작은 무대지만 한 번이라도 공연을 해 보는 게 낫겠냐'는 거예요. 고민하다 연기를 해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죠."

남 씨는 중국 가기를 포기하고 연기를 해 보기로 결심했다. 2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 11월 말 공연까지는 세 달이 남았다. 학교 수업도 없겠다, 그는 기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 보자면서 석 달을 캐릭터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는 소품도 직접 만들고 무대도 직접 꾸몄다. 충북 단양 출신인 그는 극중 대사가 모두 전라도 사투리였기에 사투리 공부도 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200여 석 규모의 학교 강당은 4일 내내 만석이었다. 동아리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공연 4일 차, 마지막 장면이었다. 무대 한쪽 높은 곳에 달린 작은 십자가를 조명이 비추면, 배우들이 그 빛을 따라 십자가 쪽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그때 감정은 지금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잊지 못할 여운이 그를 사로잡았다. 남 씨는 꼭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배우가 된 지 이제 12년 차인데, 기성 무대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어요. 대학 1학년 당시 그 장면에서 설명할 수 없는 뜨거움과 벅참을 느꼈어요. 무슨 감정이었는지 표현하기도 서술하기도 벅찬 그런 느낌이었어요. '정말 배우가 되고 싶다, 내 인생을 걸어 보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 인생을 바꾼 작품이죠."

교회 질서 순응하던 삶
<침묵> 보며 처음 '의심'
배교-회개 반복하는 캐릭터 보며
신앙생활 깊게 고민

<침묵>이 전하는 강렬한 메시지, '무엇이 순교이고, 무엇이 배교일까'라는 질문은 배우로서뿐 아니라 신앙인으로서의 삶도 돌아보게 했다.

<침묵>이라는 작품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남정우 씨는 교회에서 늘 주는 대로만 받아먹던 사람이었다. 교회 질서에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없고, 가톨릭은 이단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침묵>을 접하고 '왜 하나님은 인간이 고통받을 때 침묵하실까', 처음으로 '의심'이라는 걸 해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캐릭터들에서 우리들의 모습도 본다. 배교라는 형식이 신앙을 저버리게 하는 건 아닌지, 선교 완수라는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오히려 기독교를 욕먹이고 있지 않는지도 곰곰이 생각한다.

처음 연극에서 기치지로 역을 맡았다. 그는 기치지로가 '우리'를 대변한다고 했다. "회개와 배교를 반복하는 기치지로나, 교회에서 회개하고 세상에 나와 같은 죄를 반복하는 우리나, 같다고 생각해요."

영화화 소식에 뉴욕·대만으로
무작정 떠나 출연진 합류
5초 나오지만 "꿈 이뤄 행복"

남정우 씨는 2001년 11월 그 경험을 토대로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졸업 후 김민기 씨 연출의 '지하철 1호선' 등 여러 작품에서 활동하며 입지를 다져 나갔다.

배우 생활을 계속하고 있던 남 씨는 2012년, <침묵>이 헐리우드 거장의 손으로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택시 드라이버’, '갱스 오브 뉴욕', '셔터 아일랜드' 등 쟁쟁한 작품을 찍어 낸 마틴 스콜세지가 메가폰을 잡는다고 했다.

운명처럼 받아들여졌다. 자신이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메일을 읽지 않았다. 직접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2013년 남정우 씨는 무작정 뉴욕 가는 비행기에 탔다. 맨해튼 110번지, '사일런스' 사무실을 찾았다. 결과는 문전박대.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4년, 대만에서 영화 크랭크인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남 씨는 대만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말 그대로 무작정이었다. 캠코더 하나와 피켓을 들고 대만 땅을 밟았다. 촬영지가 어디인지도 몰랐다. 다짜고짜 대만 영화진흥위원회를 찾았다. 남 씨는 캠코더를 들고 "스콜세지를 찾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며 자신을 PD라고 소개했다. 결과는? 30초 만에 쫓겨났다.

"스콜세지 영화에 캐스팅되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누가 봐도 또라이잖아요."

낙심할 수 없었다. 영화 촬영지를 찾아야만 했다. 열흘 동안 '마틴 스콜세지 사일런스 슈팅'을 구글링하며 촬영지를 찾았다. 감독을 언제 만날지, 대만에 얼마나 머무를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루 1만 원짜리 8인 실 호스텔에 머물렀다. 며칠 후, 촬영 장소를 알려 주는 기사가 나왔다.

남정우 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40분을 걸어 촬영장에 갔다. 감독이 언제 올지 모르니 교통비도 아껴야 했다. 'Finding Scorsese' 피켓을 들고 하루종일 서 있었다. 어떻게 촬영지는 알아냈지만, 이제부터가 다시 시작이었다. 감독을 만날 거란 보장이 없었다.

"하루 종일 서 있다가 숙소에 들어오고, 다시 새벽 5시에 일어나고를 반복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한 이틀 하니까 두렵기도 하고 뭐하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너 잘 되려고 온 거잖아.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마음이 계속 들더라고요. 저랑 같은 시간에 일어나 새벽 기도를 할 부모님 생각도 계속 났고요."

끊임없이 감독을 찾고, 스태프들에게 물었다. 열흘을 그렇게 서 있었다. 관심을 보이는 스태프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대만 스태프들 보라고 피켓을 한자로 바꾸고 끊임없이 스콜세지 감독을 만나려 애썼다. 귀찮아 해도 묻고 또 물었다. 아직 크랭크인이 되지 않았다면 출연할 기회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성에 감복한 한 스태프가 보조 출연자를 모집한다는 정보를 알려 줬다. 남 씨는 곧바로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2년 전부터 준비했다. 일본에서 <침묵> 원작을 읽으면서 17세기 일본 규슈 지방 사투리까지 공부한 상태였다. 오디션 끝에 남정우 씨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영화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모든 엄청난 노력 끝에 대단한 배역을 맡았느냐고? 아니다. 남정우 씨는 영화에서 단 두 장면 등장한다. 일본 관리 이노우에가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도모기 마을을 찾을 때, 도열해 있는 마을 주민 중 한 명으로 한 번. 기치지로와 주민 간 갈등이 있을 때 기치지로의 오른팔을 붙잡는 장면에 한 번이다. 2시간 40분 영화에서 그의 얼굴이 정면으로 나오는 시간은 단 3초다.

총 10회 차, 열흘의 촬영을 하고 남정우 씨 역할은 끝났다. 그러나 그는 두 번 다시 못할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무엇보다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히 도전해 성과를 얻어 냈고, 꿈에 그리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만난 것이다.

그는 촬영 중 만난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고 편지도 전달했다. 스콜세지 감독은 남 씨 어깨를 두드려 주며 "놀랍군요"라고 했다. 그가 남정우 씨 편지를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남 씨는 거기까지만으로도 성취감을 느낀다.

다시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것도 소득이다. 대만에서의 경험은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 뜸했던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계기도 되었다.

남정우 씨는 '차기작 걱정 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 지금도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스태프들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즐겁게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새로운 터닝 포인트
다시 일상으로
"차기작 걱정 없는
배우 되고파"

50여 일의 대만 생활을 마치고 남정우 씨는 영화 촬영 이전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배우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남 씨 사연을 알고 기개를 높이 사 몇몇 곳에서 촬영 오디션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야 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남정우 씨 희망은 '차기작 걱정 없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지고 연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그는 꿈을 찾아 무작정 대만으로 건너갔던 경험이 '내가 아직 살아 있구나'를 느끼게 했다면서, 이 경험이 어떤 터닝 포인트가 될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제가 대만에 가지 않았다면 그 영화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개봉 이후에도 영화를 못 봤을 것 같아요. 기껏해야 '나 저 영화 찍으려 대만 가려고 계획했던 사람이야' 정도 얘기나 하고 다녔겠죠. 그게 뭐예요.

놓치고 싶지 않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에요. 대만에 간다고 (캐스팅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거지만, 대만에 가면 확률은 반반이고 한국에 있으면 0%잖아요. 저는 그래서 갔을 뿐이에요. '꿈 찾아 대만까지 왔구나, 내가 아직 심장이 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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