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중증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블루베리 농장이 몇 년째 재정난을 겪자, 대학생들이 나섰다. 학생들은 버려지는 블루베리잎으로 '잎차'를 개발했다. 결과는 대성공. 작년 9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상큼하다茶, 블루베리잎차' 매출액은 벌써 5,000만 원이다.

신상품을 개발한 곳은 서울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 '열림'이다. 열림은 2015년 말 인액터스가 진행한 프로젝트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생들은 중증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블루베리 농장의 경영난을 개선하기 위해 열림을 만들었다.

학생들 도움으로 산울베리사회적협동조합(산울베리·이사장 김경 목사)은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 도봉구 소재 산울베리는 중증 발달장애인 주간 보호소 '주바라기 해피홈'과 블루베리 농장(2,000평)을 운영하고 있다. 농장에는 중증 발달장애인 6명과 비장애인 1명이 일하고 있다.

학생들이 블루베리잎차를 개발한 덕분에 블루베리 농장은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사진 제공 열림
비영리단체 '열림' 팀원들. 왼쪽부터 김나형, 박하영, 유지상 씨. 뉴스앤조이 박요셉

"몇 년째 적자,
후원금으로 메꿔"
버려지는 잎
차로 가공해 판매

열림을 만나기 전까지 산울베리는 열매만 생산했다. 수확한 블루베리를 팔아 발생한 수익은 연평균 2,000만 원. 농장 연 임대료 1,000만 원을 제하고, 비료·포장·인력 등에 쓰인 비용을 빼면 적자였다. 산울베리 이영심 사무국장은 "2009년 블루베리 농장을 운영하고 나서 몇 년째 적자였다. 정부와 후원 단체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겨우 메꿨다"고 말했다.

열림은 신상품 개발을 구상했다. 블루베리잎은 열매를 수확하고 나면 모두 버려진다. 잎을 차로 만들어 먹을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블루베리는 시력 개선과 피로 회복에 효능이 있다. 학생들은 잎이 열매보다 효능이 더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블루베리잎을 차로 가공해 만드는 업체도 많지 않았다. 좋은 예감이 들었다.

2015년 말, 열림은 시제품 '단풍을 마시다茶'를 만들었다. 기부·펀딩 사이트 네이버 해피빈에 상품을 홍보했다. 반응이 괜찮았다. 그 해 생산한 450여 개가 모두 판매돼, 738만 원의 수익을 냈다.

산울베리는 '단풍을 마시다茶' 수익금으로 중증 발달장애인을 1명 더 고용했다. 열림 박하영 팀장은 "신상품 개발로 농장이 추가 수익을 냈고, 그 결과 발달장애인 1명을 더 고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시제품이 좋은 반응을 끌자, 열림은 2016년 본격적인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생산량도 늘렸다. 기존보다 10배 많은 3,200개를 제작했다. 질도 개선했다. 뜨거운 물에 잎째로 넣어서 우려내는 방식이었던 것을 개선해 신제품은 티백 형태로 만들었다.

티백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았다. 기존 방식은 형태가 잘 보존된 잎을 선별해 만들어야 해서 버리는 잎이 많았다. 티백은 블루베리잎을 분쇄해 제작하기 때문에, 시제품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었다. 다른 찻잎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맛도 더 좋았다. 신제품은 '상큼하다茶, 블루베리잎차'라고 이름을 지었다.

열림은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생산비를 마련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SK행복나눔재단, 현대해상 등에서 총 2,200여 만 원을 얻었다. 절반은 지난해 티백 생산에 사용했고, 나머지는 올해 신제품 개발과 생산에 사용할 계획이다.

올해 열림은 티백 형태로 잎차를 개발했다. 사진 제공 열림

블루베리잎차 개발은 농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산울베리 이영심 사무국장은 "경영난이 개선됐고, 발달장애인들도 안정적으로 농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임금도 10% 올랐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농장 일이 발달장애인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은 밀폐된 공간에 오랫동안 있지 못한다. 가끔 소리도 지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데, 실내에 오래 있으면 이러한 행동 빈도가 더 높아진다. 농장 일은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일을 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 사무국장은 이들이 스스로 돈을 버는 데서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몇 년 동안 급여를 모아 부모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선물을 주는 이들도 있다. 발달장애인 박 아무개 씨(45)는 농장 일로 수백만 원을 모아 부모님 칠순 잔치를 열어 주기도 했다.

임금 올리면
지원금 깎는 정부
"사회가 장애인
자립 막아"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시간은 하루 두 시간에 불과하다. 겨울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봄, 여름, 가을에 일이 집중된다. 농장은 시급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이들이 받는 임금은 한 달 평균 20~30만 원 수준이다. 열림은 상품 개발과 판로 개척에 전념해 수익을 늘리면, 이들의 임금을 더 올릴 계획이다.

산울베리도 앞으로 농장 경영이 좋아지면 임금을 더 늘리고 싶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급여가 늘어나면 발달장애인이 정부에 받는 지원금이 깎인다는 사실이다.

일부 발달장애인은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이다. 그런데 소득이 있으면 액수에 따라 수급비가 일부 차감되거나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이 때문에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이 사무국장에게 임금을 도로 낮춰 달라고 요청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열림 팀원 유지상 씨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이 지닌 한계를 발견했다"고 했다. 팀원 김나형 씨도 "사회가 오히려 장애인의 자립을 막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분이 하루빨리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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