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동물에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패션을 즐길 순 없을까. 겨울철 소비되는 보온 의류는 대부분 동물을 학대하면서 만들어진다. 살아 있는 오리·거위의 가슴 털을 막무가내로 뽑는다. 신선한 제품을 위해 산 채로 라쿤의 가죽을 벗겨 낸다.

동물 보호 단체 '페타'(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는 2013년 앙고라털 생산과정을 공개했다. 영상은 충격적이다. 앙고라 니트 주재료인 토끼털을 얻기 위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모근까지 뽑는다. 토끼는 울부짖는다. 피범벅된 맨살 위에 다시 털이 올라올 때까지 토끼는 좁은 철장에 갇혀 지낸다.

동물에 피해 주지 않는 옷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비건 패션'에 관심을 갖는다. 채식주의자라는 뜻의 '비건'에서 파생한 말이다. 동물성 가죽과 털을 사용하지 않고 옷을 만든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비건 패션 전문 업체를 찾기는 어렵다. 수소문 끝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비건 패션을 전담하는 브랜드를 찾았다.

브랜드명은 '비건 타이거(Vegan Tiger)'. 어떤 생각으로 비건 타이거를 만들었을까. 장사는 잘 될까. 2월 1일, 비건 타이거 양윤아 대표를 불광동에서 만났다.

비건 타이거 양윤아 대표. 그는 동물성섬유를 쓰지 않는 비건 패션 제품을 제작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양윤아 대표는 비건 패션을 알리기 위해 비건 페스티벌도 열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잔인한 털 수집
산 채로 가죽 벗기기도

- 동물 보호 단체는 잔인한 방법으로 털과 가죽을 뽑는 걸 문제 삼는다.

거위는 목을 잡고 가슴 털을 뽑는다. 살아 있는 거위의 가슴 털을 뽑는 고통은 인간 머리털을 뽑는 것과 맞먹는다. 토끼는 귀를 밟고 털을 자른다. 토끼가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다. 토끼가 우는 거 들어 봤나. 페타가 공개한 동영상을 봤는데, 나는 그런 소리 처음 들어 봤다.

한국에서 많이 소비되는 울은 양털이다. 양이 계속 움직이니까 털을 자르다 때리기도 한다. 심한 경우 골절되기도 하고. 양털을 자르면서 피부가 찢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양털을 빠르게 얻으려다 보니 털과 살갗을 함께 자르는 거다. 문제는 살갗이 드러나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다는 것이다. 시간 지나면서 상처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정말 잔인한 방식으로 모은다. 대부분 회사가 이런 방식으로 털과 가죽을 생산한다. '파타고니아'라는 의류 회사는 떨어진 깃털만 주워서 옷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 동물성섬유 하면, 모피 코트가 먼저 떠오른다. 한 코트에 동물 몇 마리가 들어가나.

기장에 따라 사용되는 동물 수는 다르다. 모피 코트에는 동물 털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외국 동물 보호 단체가 낸 자료를 살펴보니 이렇다. 밍크 60마리, 수달 20마리, 너구리 50마리, 아기 하프물범 8마리, 여우 20마리, 늑대 15마리, 족제비 125마리, 햄스터 100마리, 다람쥐 100마리, 실버폭스 12마리, 다람쥐 100마리, 토끼 35마리, 친칠라 200마리, 검은 담비 50마리, 고양이 24마리, 개 8마리, 삵 18마리가 들어가더라. 매년 1조 마리가 소비되고 있다.

개나 고양이 털도 의외로 많이 사용된다. 라벨링이 없는 퍼 제품은 주로 개, 고양이털을 이용한 거다. 고양이털은 화학 과정을 거치면 밍크 털과 유사하다. 90% 정도는 중국에서 온다. 중국 북부 지역에서만 연간 고양이 200만 마리가 희생된다. 남는 살덩어리는 소시지로 만든다고 알고 있다.

- 일반 사람들에게는 동물성섬유의 대안인 '비건 패션'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젊은 사람들은 관심이 많다. 가수 이효리가 모피 안 입기 운동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도 한몫했다. 비건 타이거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보면 반응이 좋다. 특히 외국인들이 좋아한다. 미국으로 배송한 물건도 있다. 현재 만들고 있는 상품은 인조 모피, 데님 자켓, 스웨이드 자켓, 로브가 있다. 사람들이 물건을 보면 예쁘다고 한다.

동물권 보호는 젊은 세대들이 바꿔 나가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 중에는 산 동물에게서 털과 가죽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아무리 동물권을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비건 패션이 대중화되는 수밖에 없다.

- 비건 패션이 대중화되려면 인식 개선이 필요할 거 같다.

맞다.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모피 코트를 입고 밖에 나가면 뜨거운 눈총을 받는 때가 왔으면 한다. 외국 단체 중에서는 모피 입은 사람에게 가서, 이거 뭘로 만들었느냐고 묻는 돌발 인터뷰도 하는 곳도 있다. 우리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5~10년 지나면 사람들 인식이 많이 바뀔 거 같다. 동물을 잔인하게 죽여서 생산하는 패션을 소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인조섬유가 잘 나오는데 굳이 동물성섬유 제품을 사 입을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에게 윤리적인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권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디자인 측면에서 접근하면 좋을 거 같다. 비싼 모피 코트는 1,000만 원도 넘는데, 요새는 유행이 빠르게 바뀐다. 비싸게 주고 샀는데 촌스러워지면 속상하지 않나. 인조 모피로 만든 코트도 예쁜 게 많으니까 '한번 사 볼까?'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게 내 목표다.

동물 보호 단체 '페타'는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털과 가죽을 수집하는 것을 비판한다. 페타 홈페이지 갈무리

동물 보호 단체서
일하다 창업,
한국 비건 패션 브랜드 1호

- 비건 패션에는 어떻게 관심 갖게 됐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동물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1년 AI가 발생했을 때였다. 오리와 닭을 생매장했다. 뉴스에서 동물들 죽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사람은 죽으면 시민들이 애도하며 촛불이라도 드는데, 동물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게 이상했다.

당시 남성복을 만들었다. 문득 동물권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건 패션을 하려고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동물 보호 단체에서 3년 정도 일했다. 자연스럽게 모피 코트에 들어가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단체에 있다 보면 가끔씩 "오리털이나 울이 들어가지 않는 옷은 없느냐. 사려고 했더니 없더라"는 문의를 받기도 했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한국에는 비건 패션 브랜드가 없었다. '내가 한번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는 자료가 없으니 외국 브랜드를 검색했다. 비건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그렇게 1년 정도 준비해서 2015년 11월, 비건 타이거를 런칭했다.

- '비건 타이거', 이름이 특이하다. 뜻은 무엇인가.

친구가 붙여 준 내 별명이다. 내가 채식을 하는데,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다. 친구가 그런 나를 보고 채식하는 호랑이 같다고 말했다. '비건 타이거'라는 말이 비건 패션을 지향하는 것을 잘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비건의 의미도 있고, 호랑이가 진취적인 느낌이 있어서 우리 사업과 맞는다고 생각했다.

- 비건 패션에 종사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나.

원단이 다양하지 않다. 보통 패션계는 디자이너가 옷을 디자인한 후, 디자인을 잘 살릴 수 있는 원단을 찾는다. 그런데 비건 패션은 그 반대다. 일단 비동물성 원단을 살펴본다. 이후 원단에 맞는 디자인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다.

가격도 그렇다. 백화점 물건과 비교하면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지만 소비자가 비싸게 느끼기도 한다. 소량 생산이라 그렇다. 고객들이 예쁜데 비싸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렇다고 패스트패션처럼 대량생산을 하고 싶지는 않다. 패스트패션은 유행을 따라 물건을 만든다. 물건이 다 팔리지 않으면 싼 값에 팔거나 소각한다. 화학섬유를 소각하면 공해가 발생한다. 소량으로 생산하는 게 낫다. 대신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비건 패션을 접할 수 있도록 가격 부담이 적은 아이템을 개발하려고 한다.

양윤아 대표는 인조 모피 코트, 인조가죽을 사용한 제품을 만든다. 사진 제공 비건 타이거

모피 반대, 계절 안 가려
'모피 아웃 프로젝트'
비건 페스티벌

- 텀블벅(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모피 반대 캠페인도 진행했다.

1월 6일부터 한 달간 '모피 아웃 프로젝트'를 주제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다. 'MY FUR IS NOT YOURS'(내 털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와 'ANIMAL SKIN IS NOT FABRIC'(동물 피부는 천이 아닙니다)이 적힌 배지와 비건 타이거에서 만든 블랙 데님 자켓을 판매했다. (비건 타이거가 진행한 텀블벅은 2월 1일 자로 성공했다. - 기자 주)

목적은 두 개였다. 다음 시즌 상품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만드는 것과 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모피 반대 운동은 옷이 많이 소비되는 겨울철에 한다. 그러나 이건 겨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계절 내내 모피를 만들기 위해 동물들이 사육되고 털이 깎인다. 그걸 생각하면 사계절 동안 해야 하는 캠페인이다. 배지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지인에게 패션을 위해 동물이 잔인하게 학대된다는 점을 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제작했다. 사람들이 배지에 쓰인 문구가 좋다고 하더라.

- 비건 패션을 알리기 위해 또 하는 일이 있나.

'비건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지난해 5월, 10월 두 차례 진행했다. 지금 채식을 하고 있는데, 마음 맞는 친구들과 부스 70개를 설치했다. 40개는 채식 먹거리 부스이고, 30개는 업사이클(up-cycle) 제품, 비건 패션, 동물실험하지 않는 화장품을 소개하는 부스였다. 불광동에서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5월 1,500명, 10월 4,000명 넘게 왔다. 생각보다 많이 와서 깜짝 놀랐다.

비건 타이거가 제작한 로브 반응이 좋았다. 페스티벌 전 소셜 미디어에 로브 사진을 올렸는데, 선구매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많이 왔다. 페스티벌에서도 개장 4시간 만에 만들어 놓은 로브가 다 팔렸다. 비건 페스티벌에 온 사람들을 보면서 젊은 사람들이 비건 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3회는 4월 말쯤 열 생각이다.

- 수익 일부를 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한다고.

비건 타이거를 창업하면서 판매 수익 5%를 동물과 환경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은 기부액이 많지 않아 쑥스럽기도 하다. 50만 원 정도 보냈다. 지난해에는 WWF(세계자연지금 한국지부)에 기부했다. 마침 WWF에서 야생 호랑이 두 배 늘리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다. 비건 타이거가 생각한 가치랑 잘 맞아 떨어졌다.

- 비건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당장 모피를 입지 않는 거다. 울을 입지 않는 게 힘들다면, 모피라도 안 입겠다고 다짐하면 좋겠다. 지금까지 샀던 물건을 다 버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 옷에 추억이 깃들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더 이상 가죽이나 모피 물건을 사지 않으면 된다.

예전에는 인조라고 하면 사람들 인식이 좋지 않았다. 싸구려라는 느낌도 있었고.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인조 모피랑 가죽이 잘 나오는 편이다. 젊은 디자이너 중에서는 인조 모피를 멋들어지게 쓰는 사람도 있다. 내가 인조 모피 옷 입고 시장에 가면, 아줌마들이 너무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옷을 구매할 때 제품 정보를 따져 보면 좋겠다. 털 제품이면 주인에게 어떤 털이냐고 물어봐도 좋고. 라벨을 살펴봐도 좋다. 울, 알파카, 캐시미어, 실크는 동물성섬유다. 비동물성섬유로는 면, 폴리에스테르, 레이온, 큐프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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