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교회 천정근 목사와 만났다. 뉴스앤조이 현선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남는 시간에 소설이나 진득하게 읽어 보겠다는 것이 천정근 목사가 신학교에 들어간 이유였다. 신학은 공부하고 싶었지만 목회자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다. 상황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신학교 커리큘럼은 3년 안에 끝낼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다. 신학교에 다니려면 전도사 생활을 해야 했다. 교회 현실도 만만치 않았다. 이때 읽은 양명학 관련 서적들이 천정근 목사가 길을 찾는 데 영감을 줬다.

천 목사는 <이탁오 평전>, <분서>, <역주 원중랑집>을 언급했다. 유학이 주류에 봉사하는 관학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냈던 사상가들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 사상가들이 비판한 당대 유교 현실은 예수 시대 유대교나 현재 한국교회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수 시대 유대교의 상황에 빗대자면, 이들은 바리새인들이 판치는 현실 가운데 자기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책을 읽고, 천정근 목사는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비축했다. 눈치 보면서 목회할 필요 없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을 탈퇴했다. 주류의 길을 가지 않고 광자와 같은 예언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인터뷰 도중 천정근 목사는 지난 100년간 한국 보수 기독교가 자체적으로 생산한 책이 2권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이숙의 <죽으면 죽으리라>(기독교문사)와 박영선의 <하나님의 열심>(새순출판사)이다. <하나님의 열심>을 능가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한국의 필립 얀시, 유진 피터슨이 되는 것"이라며 웃었다.

이전 인터뷰 기사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9년간의 러시아 유학 생활 동안 천 목사와 함께했던 책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지난번에 이어 천 목사가 현재 갖고 있는 목회 방향이나 사상에 영향을 준 <이탁오 평전>(돌베개), <분서>(한길사), <역주 원중랑집>(소명출판)을 소개한다. 목사에게 양명학 교양 강좌 한 편을 듣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인터뷰는 1월 11일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천정근 목사가 사는 초록집에서 진행했다.

<이탁오 평전 - 유교의 전제에 맞선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 옌리에산, 주지엔구오 지음 / 홍승직 옮김 / 돌베개 펴냄 / 592쪽 / 2만 8,000원

나는 목회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단지 신학을 공부해 보고 싶었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신학교 형편을 이상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아내에게, 신학교에 들어가 소설이나 열심히 읽고 싶다고 말했다.(웃음) 막상 들어가 보니 공부할 내용은 많은데 시간이 없었다. 전도사 생활도 무조건 해야 했다.

전도사 생활을 하니까 책임이 발생했다.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고, 교회에서 전도사와 부교역자는 기업의 직원처럼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지냈다. 교회가 무엇인가, 톨스토이적인 질문을 하면서 해답을 찾으려 고민했다. 이때 나에게 영감을 준 책이 있다.

이탁오는 명나라 말기 사상가다. 명나라 말기 유학자이자 관료였다. 50세에 관료를 때려치우고 머리를 깎아 중이 됐다. 관직을 버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 짖었던 것이다." 이제 자기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다. 이 사람 사상은 왕양명의 양명학에서 나왔다. 양명학에서는 완전 좌파였다. 급진적인 양명학을 이야기했다.

학교 다닐 때 보면, 유교가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종교라고 배운다. 유교가 말하는 우주의 원리가 무엇인가 살피려면, 요순시대를 이야기해야 한다. 중국 사람들은 요순시대를 황금시대로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해 황금시대에서 벗어난 것이다. 성서에 빗대면, 인간이 선악과 먹고 타락한 것이다.

에덴으로 복귀하려면 아담이 처음 지어졌을 때 어땠는가를 생각해야 하듯이, 이들이 말하는 우주의 원리를 알려면 요순시대 인간들이 어땠는지 연구해야 한다. 요순시대 사람들은 우주의 원리에 맞게 살았다는 것이다. 이후 인간들이 너무 머리를 쓰다 보니 서로를 죽이는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됐다.

공자는 요순시대처럼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다. 공자의 핵심 사상을 나타낸 유교 경전은 <중용>이다. 공자의 손자가 썼다. <중용>에서는 마음에서 희로애락이 생기기 이전 상태를 '중(中)'이라고 했다. 인간 마음과 의식에서 어떤 감정이 생기기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 아직 물들지 않은 무채색 마음의 순수한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로 살면 요순시대 같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의 제자들이 중국을 석권했을 때, 세상을 요순시대처럼 만들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유교의 가르침을 관학으로 만들었다. 유학을 관학으로 만들어 출세 수단, 통치 수단으로 삼았다.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데서 벗어나 문장을 어떻게 짓고, 제사를 어떻게 지내는가 하는 문제를 따졌다. 문구와 문구를 따지면서 논쟁을 잘하는 사람이 출세했다. 말하자면 율법주의, 바리새주의였다. 유교에 바리새주의가 만연했던 것이다.

천 목사에게 영감을 준 책들. 뉴스앤조이 현선

맹자는 유학에서 가장 큰 원수가 향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학자는 세 부류로 나뉜다. 성인, 군자, 향원. 요순 같은 사람을 성인이라 한다. 도를 통달해 중에 도달한 이들이다. 성인이 되려고 성인의 길을 좇는 이들을 군자라 한다. 향원은 성인의 길을 좇지 않으면서 성인의 말만 지껄이는 이들이다.

공자는 첫 번째로 성인이 되어야 하고, 성인이 못 되면 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도 군자도 못 되면 향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향원이 되지 말고 광자(狂者)가 되라고 한다. 이렇게 구분하면 네 개의 길이 제시된다. 광자는 성인의 도가 향원에 먹힌 사회에서 성인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 나타낼 수 있는 태도다.

그 시대 위선자들이 그 사람을 미쳤다고 할 것인데, 그 사람이 광인 행세를 하는 이유가 있다. 성인의 도만 나타내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향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니까. 민중이 보기에 진짜 목사나 가짜 목사가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헷갈린다. 광자처럼 말해야 한다. 기독교로 치면 예언자들이다.

중국에 광자의 길이 있었다. 광자의 길을 주류 학문 세계에 나타낸 사람이 왕양명이다. 유학이 중용의 가치를 따지며 논쟁을 일삼았는데, 왕양명은 '중'을 마음의 문제로 봤다. 모든 문제가 마음에 들어 있다고 봤다. 그것을 '심학'으로 발전시켰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본원적 상태로 돌아가면 중에 다다르는데, 이 상태가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봤다. 나에게 하늘이 준 순수한 마음이 있다고 깨달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독교적 복음과 유사하다.

기독교에 빗대 말하자면 왕양명은 그리스도 같은 존재다. 왕양명은 성인, 군자, 향원이 못 되니까 "나는 광자의 길로 가겠다"고 했다. 기존의 주자를 따르는 학자들은 왕양명의 말을 불교를 끌어들인 유교로 봤다. 왕양명은 자신이 불교나 도교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못 했다. 시대의 검열과 협박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왕양명 제자들이 그의 사상을 퍼뜨리기 시작했는데, 최고 정점에 이른 이가 이탁오다. 이탁오는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겠다. 진짜 광자의 길을 보여 준 사람이다.

<분서 1> / 탁오 이지 지음 / 김혜경 옮김 / 한길사 펴냄 / 559쪽 / 2만 8,000원

왜 책 이름이 <분서>인가. 태워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태워 버릴 것이라 해서 '분서'라 이름 지었다. 또 다른 저서 <장서>도 있다. 장사 지내야 하는 책이라는 의미다.

이탁오는 중국 사상사에서 유일한 사상범이다. 이를테면, 조선 시대 때는 사상범이 있을 수 없다. 유학을 안 믿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정규 학문 체계에 들어간 사람 중 유학을 개똥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면 그날로 죽임을 당한다. 이탁오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반공자적인 인물이다. 사실 공자는 존경했는데, 공자 제자들을 비웃은 것이다.

<분서>는 누군가와 주고받은 편지,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한 비평, 자신이 쓴 시 등으로 돼 있다. 당대 유명한 인물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과 편지로 논쟁을 벌였다. 논쟁 벌인 내용을 가감 없이 출판해 버린 것이다. 어떤 사람과 논쟁을 벌였을 때 그 사람 논리가 부족했다고 한다면, 그게 편지에 다 나오는 것이다. 이탁오 편지에는 '나는 너를 하찮게 본다'는 식의 태도가 많았다. 이 사람은 정부에 의해 고발당해 70대에 투옥된다. 감옥에서 거울을 깨뜨려 그 조각으로 자살을 한다.

교회 전도사로서의 내 고민과 갈등을 왕양명과 이탁오가 해결해 줬다. 길을 제시했다. 열린 사고를 갖되 본질을 추구하라는 말이다. 수천 년간 유교적 언어를 사용해 유교의 언어가 관용어가 된 시대에서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써야 본질을 건드릴 수 있다. 그래서 왕양명은 '심학'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탁오는 더 용기를 내 자기 이야기를 해 나갔다. 이탁오는 왕양명에게 영감을 받아 유불선을 합쳤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은 끝까지 유학적인 인간이었다.

한국 기독교는 지난 100년간 기본 전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목사든 성도든, 누구에게 공격받았을 때 설득할 실력을 갖지 못한 것이다. 방어를 하면서 사탄, 이단이라며 적을 원수 삼는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다. 그 어떤 개념보다도 포괄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도 남아야 한다.

한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편협하다. 편협하다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포용할 능력이 안 된다. 그러니까 한국 기독교인이 쓰거나 말하는 것이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보수주의자이고 근본주의자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도 여전히 근본주의자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교의 신학 테두리에 갇힌 교회에서는 자유로워졌다. 교회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졌고, 이 책을 통해 선배나 조직 눈치를 보면서 목회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자신감과 자기 정체성을 얻었다. 나의 신앙고백을 찾았다. 누가 나를 어떤 식으로 비판해도 나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을 탈퇴했다. 내 모토는 '신학은 보수, 신앙은 자유'다. 교회 이름도 자유인교회다. 이탁오는 그렇게 나에게 영감을 줬다.

<역주 원중랑집 10> / 원굉도 지음 / 심경호 옮김 / 소명출판 펴냄 / 450쪽 / 2만 8,000원

원중랑이라는 사람도 있다. 이탁오 제자이며 시인이다. 직접 배운 제자는 아니다. 이탁오의 <분서>가 간행됐을 때 명나라 전체가 난리가 났다. 오늘날로 치면 사상계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이것을 보고 원중랑이 존경스런 마음에 이탁오를 찾아간다. 원중랑 3형제가 이탁오 제자가 된다. 원중랑은 이탁오에게서 배운 학문을 문학에서 표현한다. 원중랑이 이탁오보다 나에게 더 큰 영향을 줬다.

원중랑의 글은 동양을 바꿨다. 조선, 일본에서도 읽었다. 양명학은 조선에도 들어왔는데 누구 하나 양명학을 공부한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이단인 것이다. 강화도에 유배된 강화학파, 유학의 본류에서 소외된 양반들에게만 받아들여졌다. 노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노론의 도그마 속에서도 원중랑 글만은 선비들이 누구나 읽었다. 속이 시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원중랑 대단하지 않아?"라고 말하지 못했다. 원중랑에게 영향받은 작품이 허균의 <홍길동전>,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의 글이다. 조선 후기 글다운 글을 남긴 이들은 다 원중랑에게 영향을 받았다.

이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른하여 도무지 손님 맞을 마음이 없네." 기독교인은 입만 열면 성경에서 영감을 얻었다면서 도덕적인 얘기를 한다. 예를 들어, 목사들이 "아, 오늘 기분 더럽네"라며 마음속 말을 그대로 내뱉으면 '왜 목사가 저런 말을 하지?'라며 안 좋게 바라본다. 이와 비슷하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그대로 적는다. 나른해서 손님 맞을 마음이 없는 허무주의적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손님 맞아도 억지로 관 쓸 마음이 없도다."

'술회'라는 시를 보면, 온갖 제법으로 뒤얽혀 있는 세상에서 자기 길을 걸어갔고, 아직도 먼 길이 남았다는 술회가 담겨 있다. 주변의 꽉 막힌 도그마 속에서 자기 자신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준다. 이 사람 시에는 유학, 노장사상, 불교가 뒤얽혀 있다.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글이 선비들 마음을 달래 주었다. 겉으로는 억압돼 있지만 속에서 분출하고 있는 열망을 대신 표현해 준 것이다.

천 목사는 책 이야기를 하면서 군데군데 인상 깊게 받아들였던 대목들을 짚었다. 뉴스앤조이 현선
원중랑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천정근 목사. 뉴스앤조이 현선

나는 이렇게 사상적 영감을 주는 저자를 좋아한다. 관학이 되어 주류에 봉사하는 학문을 싫어한다. 의미가 없으니까. 한국에 촛불 혁명이 일어났다. 촛불 혁명이 보여 준 미래는 무엇인가. 소수에 의한 국가 사유화, 권력과 기득권의 적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이가 자유로운, 공동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힘없는 이를 희생시키는 구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교회가 깨어 있다면 세상보다 먼저 예언자적인 말을 해야 한다. 세상이 교회를 따라와야 한다.

지금은 오히려 민중 속에 예언자가 있다. 백남기 농민이나 정원 승려 같은 사람이 예언자다. 지금의 교회는 이런 예언자들이 비전으로 보여 주는 사회를 뒤꽁무니에서 쫓아다닌다. 박사모를 따라다니는 반동적인 세력으로 남아 있다. 고뇌가 없다. 이런 교회에 봉사하고 있다면, 선행이든 올바른 신학이든 말이든 다 개똥에 불과하다. 썩어질 것들이다. 이것을 깨뜨리고 가야 한다.

교회가 예언자로서 복음의 말씀으로 일깨워 줘야 한다. 광자가 되어야 한다. 바리새인밖에 될 게 없으면 광자의 길로 가야 한다. 그래서 예언자는 다 광자다. 예언자 에스겔은 거의 미친 사람이다. 에스겔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논문이 많은데, 그를 정신병자로 본다. 하나님에 미치고, 당대 현실의 고통에 미치다 보니까 진짜 미쳐 버린 것이다. 광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교회에 예언이 살아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 기독교인 중에 광자가 많이 나타나야 한다. 일반 신자 중에서도 자기 분야에서 광자이며 예언자적인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 포용력을 갖고 기독교적 도그마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열린 사고를 갖되 근본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본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본질 속에서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끝)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