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17년 전, 쩐티빅한 씨(40)는 돈을 벌기 위해 고향 베트남을 떠났다. 23세에 낯선 한국 땅을 밟은 그는 대구에 있는 한 섬유 공장에 들어갔다.

한국은 빅한 씨에게 친절한 나라가 아니었다. 공장장은 그에게 매일 19시간 동안 일을 시켰다. 그가 받은 월급은 20여만 원. 당시 이주 노동자는 산업 연수생 제도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최저임금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어느 날, 빅한 씨는 공장에서 박스 더미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어깨 힘줄이 끊어져 큰 수술을 받고 7개월 동안 입원했다. 회사는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빅한 씨는 대구 이주민선교센터를 찾았다. 이주민선교센터(공동대표 고경수·박순종 목사)는 임금 체불, 저임금 등 노동권을 침해받은 이주 노동자를 돕고 있었다. 빅한 씨는 이주민선교센터의 도움으로 산재 보상비와 체불임금,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노숙인 사역을 하던 고경수 목사와 박순종 목사는 2001년부터 구민교회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 노숙인 상담을 했다. 가끔씩 이주 노동자가 찾아와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주 노동자 삶이 노숙인 못지않게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경수 목사는 "이주 노동자는 노숙인보다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저임금, 임금 체불 문제로 빈곤에 노출되어 있고, 한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들을 위한 사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른쪽부터) 이주민선교센터 고경수 목사, 쩐티빅한 간사, 윤일규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2003년 센터 설립
노동 상담, 법률 지원
무상 진료 안내

고경수 목사와 박순종 목사는 2003년 대구 대봉동 소재 한 건물을 빌려 이주민선교센터와 평화교회를 설립했다. 평일에는 이주민선교센터로, 일요일에는 평화교회로 활용했다.

이주민선교센터가 주로 하는 일은 상담과 법률 지원이다. 이주 노동자가 최저임금을 못 받았거나 임금이 체불됐다고 호소하면, 고 목사와 박 목사는 사업주에게 개선을 요구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청에 제소하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민사소송까지 도맡았다.

고 목사는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했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고 최저임금법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회사가 많다. 이주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 폭언, 폭행, 인권침해에 노출돼 있다.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산재를 인정하지 않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사업주는 퇴직금을 억지로 주지 않거나, 본국에 돌아갈 때 송금하겠다며 지급을 미룬다. 산재를 인정했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 때문에 산재 신청을 불허한다.

이주민선교센터는 병원을 소개하는 일도 한다. 이주 노동자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다치는 일이 잦다. 그런데 이들은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서 치료비가 비싸게 나온다. 이주민선교센터는 대구의료원과 업무 제휴를 체결해, 이들이 무상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했다.

매주 이주 노동자 40여 명이 주일예배에 참석한다. 예배가 마치고 나면 나라별로 성경 공부를 한다. 사진 제공 이주민평화센터

동포 만나러 교회 출석
예수 믿고 본국 선교사로

일요일에는 이주 노동자와 함께 예배한다. 중국, 베트남, 네팔, 태국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 40여 명이 매주 예배에 참석한다. 예배는 한국어로 진행하고 중국어, 베트남어, 영어 자막을 화면에 띄운다. 예배가 끝나면 다 같이 점심을 먹고, 나라별로 모여 성경 공부를 한다.

이주민선교센터 윤일규 사무국장은 이주 노동자들이 상담을 받거나 동포를 만나기 위해 교회에 온다고 말했다. 이들은 상담하면서 부탁한 일이 해결될 때까지 교회에 계속 나온다. 문제가 해결되면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기도 하지만, 상담을 계기로 교회에 정착하는 이도 있다고 윤 사무국장은 말했다.

명절에는 이주 노동자를 위한 행사를 준비한다. 설에는 세배, 윷놀이 등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보낸다. 추석에는 이주 노동자들이 각 나라 전통 의상을 입고 자기 나라 문화를 알리는 시간을 마련한다. 여름에는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받아 바닷가나 계곡으로 놀러 가기도 한다.

몇몇 이주 노동자는 평화교회에서 복음을 접하고 선교사가 됐다. 네팔에서 온 발 그리스나(Bal Krishna)는 2003년 중반 한국에 와 경북 고령에 있는 주물 공단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네팔 어린이들을 도왔다.

그리스나는 2004년 공장에서 발을 다친 뒤, 산재 신청과 관련한 상담을 받으려고 이주민선교센터를 찾았다. 이후 평화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선교사가 되기로 다짐했다. 기아대책에서 진행하는 평신도 선교사 교육 프로그램에서 훈련을 받고 2010년 본국으로 돌아갔다. 현재 그리스나는 네팔에서 낙후 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육·의료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스리랑카 출신 수밧 아산크와 중국인 정해연도 그리스나에게 도전을 받고 선교사로 나섰다. 둘은 이주민선교센터에서 만나 부부가 됐다. 2013년 파송을 받고 스리랑카로 떠났다. 콜롬보 지역에서 '해피센터'라는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며,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설에는 매년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행사을 진행한다. 여름에는 가까운 바닷가나 계곡으로 휴가를 보내기도 한다. 사진 제공 이주민선교센터

한 해 이주민선교센터에 상담을 요청하는 횟수는 약 900건. 센터는 이들에게 수고비, 교통비 등을 받지 않고 무료로 상담을 해 준다. 많은 노동자가 이곳을 찾는 이유다. 후원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형편이 넉넉하진 않다. 지난해 말,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대구 외곽 현풍군으로 센터를 옮겼다. 윤 사무국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딱 필요한 만큼 채워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목사는 "법이 개정되면서 이주 노동자 처우가 이전보다 나아졌다. 그럼에도 아직 개선될 부분이 많다. 공단 인근에는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사역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교회가 힘을 모아 이주 노동자 문제 해결에 나섰으면 좋겠다. 우리 이웃의 문제다. 교계에서도 이들을 향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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