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페미니즘은 논쟁 중이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폭발한 '여성 혐오'는 올해도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의 목소리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불평등하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이나 고정관념도 여성 혐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웠다.

그러나 여성 혐오를 지적하고 성평등을 주장하는 이들이 받는 시선은 곱지 않다. 온라인에서는 이런 여성들에게 '꼴페미'(꼴통+페미니스트), '페미나치'(페미니스트+나치즘)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여성들이 너무한다는 것이다. 자신들도 성 평등을 지향하지만,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여성들의 행태에는 억측이 많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최근 또 있었다. 바로 유명 연예인 박유천 씨 사건이다. 사법부 판단에 대해 네티즌과 여성 단체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여성도 인간이라는 외침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모두가 동의하는 것일 텐데, 페미니즘은 왜 이렇게 논쟁적일까. 몇 가지 사건을 통해 논쟁의 핵심을 짚어 봤다.

박유천 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던 여성 A는 무고죄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1 박유천 사건, 무고죄 2년형
여성 단체 "피해자다움 강요 말라"

지난해 유난히 유명 연예인들의 성 문제가 구설에 많이 올랐다. 포문을 연 건 가수 겸 연기자 박유천 씨였다. 여성 A는 성폭행을 당했다며 박 씨를 고소했다. 박 씨는 무고 혐의로 A를 맞고소했다.

당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계속 나오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지만, 박유천 씨는 '무혐의' 처분됐다. 올해 1월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은 박 씨에게 성폭행당했다는 A 주장을 허위 사실로 보고, A에게 실형 2년을 선고했다. 무고죄로 실형 2년 판결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건 이후 "피해자와 같아 보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건이 발생한 유흥주점 화장실에서 A가 소리를 질러 외부인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점 △A가 피해자답지 않게 사건 이후 박유천 씨 일행과 함께 춤추고 놀았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번 사건으로 박유천 씨는 경제적 손실을 입고 이미지에 치명타를 받았는데, A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어 엄벌이 마땅하다고 보았다.

재판부 판결에 네티즌들은 대부분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A의 실형 소식을 전한 기사에는 박유천 씨를 옹호하는 댓글이 줄지었다. 2년이라는 형이 짧다는 이야기부터 A 신상을 공개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무고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려 줘야 다시는 재발하지 않는다는 댓글도 있었다. 사람들은 A가 박 씨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일부러 사건을 만들어 냈다며 '꽃뱀' 취급했다.

법원 판결을 받았으니 이런 비난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러나 여성 단체들은 하나같이 재판부의 판결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성폭력상담소·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한국여성의전화 등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과 여성 시민단체 344곳이 결성한 '유명연예인박OO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판결 다음 날 반박문을 발표했다.

공대위는 "본 판결은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강요되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통념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판결을 내린 것에 격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분노했다. '피해자다움'은 '성폭력 피해자란 응당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을 말한다. 가령, 남성이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한다면 여성은 소리를 지르고 완력으로 거부할 것이라는 인식이다.

공대위는 피해자가 피해 장소를 빠져나오지 않았다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무고죄를 인정한 재판부를 비판했다. A는 박 씨의 성폭력에 "하지 말라"고 거절했고, 이후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알까 봐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의 진술은 언급하지 않고 그의 행동이 피해자답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대위는 "(재판부가) 성폭력 피해자라면 응당 성폭력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든지 적극적인 저항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피해자 중심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재판부를 비판했다.

영화배우 김꽃비 씨는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영화계에 만연한 성추행에 대해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2. 영화계 내 성폭력
'연기 과몰입', 문제없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처럼, 영화계에서는 성숙한 여성 배우라면 '노출'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흔쾌히 노출에 응하면 진정한 배우라 평하고, 거부하면 성격 까칠한 배우라 낙인찍는 게 영화계 관행이라는 사실이 최근 폭로되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영화계_내_성폭력 문제를 알리고 있다. 영화계에서 일상처럼 성폭력이 벌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낸다. 최근에는 <씨네21>과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의 중심이 된 사건은 영화 촬영 중 남성 배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배우 B 이야기였다. B는 가정 폭력 신을 촬영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상대 남성 배우는 감독에게 다른 연기를 디렉팅을 받았다. 촬영에 들어가자 남자 배우는 B의 상의 속옷을 찢고 합의하지 않은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

B는 남성 배우를 성추행으로 신고했고 재판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2016년 11월 1일 열린 1심에서, 남성 배우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일이 '연기 과몰입'으로 벌어졌다고 보았다. B는 법원에 항소했고, 곧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세미나를 통해 영화계에서 통용되는 합의되지 않은 연기가 성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영화는 예술이기 전에 연기자들이 노동하는 일터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가락동 스토킹 사건'을 들며, 국회에 스토킹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3 가락동 스토킹 살인 사건
스토킹해도 벌금 8만 원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안일한 인식이 여성의 목숨을 앗아 가기도 한다. 지난해 4월 발생한 '가락동 스토킹 사건'이다. 피해자 C는 가해자가 휘두른 흉기에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C와 교제하다 헤어졌는데, 이후 C에게 계속 만날 것을 요구하고 스토킹과 협박을 가했다. C를 "살해하겠다", "(만나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며 협박하던 가해자는 결국 살인을 저질렀다.

가해자는 재판에서 스토킹과 협박, 계획적인 범행을 부인했다. 오히려 자신이 지고지순한 사랑에 배신당한 상처로 벌어진 비극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행동은 스토킹가 아니라 피해자를 깊이 사랑해서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1심 법원에서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가락동 스토킹 사건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는, 사건 원인을 스토킹 범죄에 대한 안일한 대처로 보고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 스토킹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인권 범죄행위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 중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돼 8만 원 벌금형을 받을 뿐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경범죄처벌법으로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 범죄 예방, 범죄 처벌이 불가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스토킹 범죄는 대부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고 살인까지 갈 수 있는 위험한 범죄행위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스토킹을 '애정 공세' 등으로 가볍게 치부하고 있다. 잘못된 인식으로 피해자들이 별다른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이들은 가락동 스토킹 사건과 같은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국회에 '스토킹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