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의 조건에 용서가 없다면 우리 모두는 자신을, 또는 타자를 '잘못의 감옥'에 가두고 현재나 미래의 부재 속에 '과거의 존재'로만 살아갈 것이다." (247쪽)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용서가 중요한 것은 속박된 과거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용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용서해야 하는 상황은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조건이나 대상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용서는 중요한 테마다. 그러나 간혹 기독교에서 '값싼 용서'를 강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나의 도그마로서 강요할 때, 피해자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이달 나온 강남순 교수의 <용서에 대하여>(동녘)가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줄 수 있을 것 같다.

<용서에 대하여>는 용서를 둘러싼 논쟁에 마침표를 찍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용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정치·사회·철학·신학적으로 파고들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값비싼 용서'가 무엇인지 숙고하게 만든다.

<용서에 대하여> / 강남순 지음 / 동녘 펴냄 / 264쪽 / 1만 4,000원

강남순 교수는 "용서에는 완결점이 없다"(249쪽)고 말한다. "진정한 용서란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떼어 놓는 여정이다."(249쪽) 강 교수는 용서를 사유해야 되는 이유를 인간의 존재론적 측면에서 찾는다.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 △함께-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 △제도 속 존재로서의 인간 △미래를 향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네 가지 측면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용서가 점진적인 여정임을 인식할 수 있다.

강남순 교수는 용서에 대한 하나의 전범(典範)을 제시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용서받아야 하거나 용서해야 하는 현실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세월호에는 생존자의 현실, 유가족의 현실이 따로 존재한다. 용서의 문제는 각각의 정황 속에서 살펴야 한다. 하나의 참사로 환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강 교수는 해답으로서의 용서가 아니라, 용서의 다층적 측면을 보여 줄 뿐이다. 강 교수는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용서인가 △언제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에 전제 조건이 있는가 같은 물음을 쉴 새 없이 던져서, 자칫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용서'라는 개념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한다.

어떤 이들은 용서를 종교적·영적 주제로만 본다. 단순히 분노를 삭이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인가 선행조건이 있어야만 용서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강남순 교수는 이들이 놓치는 부분도 상세하게 짚는다.

더 나아가, 무조건적 용서와 조건적 용서의 맹점도 짚는다. 무조건적 용서를 추구하기에는 짚어야 할 문제가 많다. 조건적 용서는 자칫 용서를 교환가치로 만들거나, 피해자-가해자 간 '윤리적 위계 관계'를 형성할 우려가 있다.

이쯤 되면 용서가 일종의 '딜레마'로 다가온다. 그만큼 우리가 용서의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용서'를 이야기할 때 살펴봐야 할 기초적 물음들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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