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에는 경전이 있고 자신이 믿고 따르는 내용이 보편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런 신앙이 깊숙이 내재되어 이성을 벗어나게 되면, 상식을 벗어나 폭력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기독교 역사도 왜곡된 신관과 과도한 신앙으로 보편성과 공공성을 잃어버리고 혐오적인 흔적을 남겨 왔다. 구약과 신약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인류가 받을 만한 좋은 내용이 있지만, 잘못된 해석이 기독교를 편협한 종교로 전락시켰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며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온 인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특별히 선택한 육적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펼쳐 가는 비전이 있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택하신 백성을 영적 이스라엘 삼아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특별한 구속과 은혜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구별된 백성에게만 특혜를 주는 목적을 넘어 더 원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을 읽으며 어떻게 이 말씀이 온 세상을 위한 것이고 공공선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한 소수 민족에게 주어졌던 이 법들이 어떻게 인류를 위한 것이 될 수 있을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주어졌던 규칙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인지 난해할 때도 있다. 게다가 구약에 나오는 일부다처제와 대량 학살, 사형에 대한 내용은 구약이 윤리나 인류애와 상관없는 내용처럼 보인다.

<온 세상을 위한 구약 윤리> / 존 바턴 지음 / 전성민 옮김 / IVP 펴냄 / 168쪽 / 1만 원

이 책의 저자는 구약이 윤리적이며, 구약에 온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윤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은, 구약이 율법적인 명령으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서도 풍성한 도덕과 윤리가 내재되어 있어서, 우리가 이상적인 사회를 상상하게 도와준다. 또한 구약의 윤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만 한정되지 않고 자연법을 통해서도 그 기초와 근원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연법이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본래부터 깃들어 있는 윤리 체계로, 세상에 내재한 일종의 본유적 도덕의 힘이라고 한다. 그는 아모스서를 통해 이방 민족에까지 이 법 적용을 확대하며 그 근거를 보여 주고 있다. 필자는 그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었고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마음과 양심과 이성의 법이 얼마나 강하고 크게 작용하며 인류의 평화와 공공선을 위하는지 보게 되었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구약 윤리의 생명력'에서는 비록 구약이 시대에 매여 있고 이질적이지만 이것이 강점이 될 수 있으며, 구약의 법은 삶을 다루는 방식이기에 실천적 지혜가 된다고 한다. 2장 '윤리와 이야기'에서는 성경의 내러티브가 우리에게 의무나 덕을 가르치기보다 우리의 실존을 사로잡고 도덕적 삶을 깊이 있게 한다고 다윗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해 가고 있다.

3장 '세 가지 윤리적 문제'에서는 '생태학'과 관련해 인간이 동물과 음식과 자연과 어떻게 도덕적 관계를 이루어지는지를 다룬다. '성윤리'와 관련해서는 인간이 성적 특질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지만 많은 것을 제한하고 있고, 어느 시대와 장소에서도 명백하게 선한 것을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소유'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돈, 시간, 재능에서 우리는 청지기이며, 땅과 관련해서는 사적 소유권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4장 '하나님의 명령인가 자연법인가'에서는, 자연법은 성경 안에도 존재하고 누구나 윤리적 의무의 기본에 접근하는 것이라 한다. 5장 '우리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도식 위에 윤리적 동기로 선한 삶을 살게 되는 보편성을 언급한다. 6장 '인간의 존엄성'에서는 고대의 신과 제도는 인간을 노예로 생각하고 계급화한 반면, 구약은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존엄하게 여기셨는지 그 깊이를 다루고 있다.

특별히 6장에서 필자에게 감동이 되었던 것은, 저자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어서 생명의 말씀에 반응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물론 저자는 인간이 타락하고 죄인임을 인정하는 학자다. 그러나 그 죄인으로 몰아가는 교리가 자칫하면 인간이 책임감을 가지고 보편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고, 자신의 부패함에 대한 연민만 갖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그것보다 인간의 타락 후에도 남아 있는 하나님의 흔적으로 인간을 소중하게 보는 저자의 관점이 희망적이었다.

반면, 저자에 대해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었다. 저자는 구약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인간의 신체를 보복하는 법이 실제로 적용되었던 적이 없다고 하며, 한때는 적용되었더라도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문자적으로 폐기되었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볼 때 저자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실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이렇듯 구약의 윤리가 특정한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온 인류를 아우를 수 있으며 현대 사회에도 유효하다고 제시한다. 또한 단지 명확히 드러난 몇 가지 주장으로 구약 윤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 주어진 말씀을 통해 더욱 확장되는 윤리를 기대할 수 있다. 하나의 법칙만이 존재할 때 그 법이 바른 정의를 행사하고 생명을 살리기보다 비윤리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구약 윤리 해석의 확장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더 드러나게 될 것 같다.

"법은 목욕탕이다"라는 말이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어린아이가 한 이 말을 인용하며, 법이 범법자에게는 엄정해야 하지만 어려운 형편의 사람에게는 적극적인 보호자와 안내가자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광주고등법원은 버스 회사에 입금액 2,400원을 빠뜨린 기사를 해고한 회사 편을 들었다. 횡령이라 하기에는 비합리적인 금액이고, 그 처벌은 가혹하기만 하다. 기사는 실수였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반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400억 이상의 뇌물 공여와 100억에 가까운 횡령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구속되지 않았다. 맘몬 앞에 법도 무용지물이고 어떠한 공의와 윤리도 적용되지 않는다. 맘몬은 탈윤리를 가능하게 한다. 법은 따뜻하기 이전에 윤리적으로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사람에 따라 굽은 판결을 해서 억울한 일이 없도록 정확히 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부패하고 불의한 구조로 더 이상 신음하지 않게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법이 목욕탕이라는 말은, 목욕탕에 들어가려면 정치인이든 청소부든 노동자든 학생이든 모두다 옷을 벗고 들어가니 법 앞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평등하다는 의미다. 윤리와 도덕은 평등하고 공정하다. 소수의 무리를 위해 주어지고 행사되는 윤리가 아니라, 인류애와 공공선을 지향하는 윤리가 되어야 한다. 이렇듯 구약의 윤리는 법으로 특혜를 주고 사람을 나누고 차별화하지 않는다. 구약의 윤리는 정치적·경제적 불평등과 인간들을 분리하는 구조 속에서 인류의 공적 진리를 향하고 온 세계를 품는 비전을 담고 있다.

방영민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열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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