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이희진 목사는 농촌 목회의 꿈을 안고 산골로 들어갔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배우가 되겠다며 잠시 방황(?)하던 그는 마음을 다잡고 2007년 영주 산골에 셋방을 얻어 개척했다. 농촌 목회, 공동체 목회, 대안 학교로 나라와 교회를 살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셋방과 흙집을 전전했다.

이 목사 꿈을 실현하기에 영주는 적합한 땅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가부장 문화가 강하고, 기독교 비율이 낮은 경북 산골. 그나마 몇 개 있는 교회는 전부 장로교 계통 교회다. 감리교회는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척박한 땅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27살 여자 전도사가 정착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외지인 꼬리표를 떼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처음에 말을 꺼내면 "뭔 썩을 놈의 천국이여!" 하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공동체 목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함께 공동체를 처음 시작한 친구는 아스퍼거증후군으로 사회성에 문제가 있었다. 마찰이 잦았다. '나라를 살리긴커녕 사람 하나도 못 살리는구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래도 꿋꿋이 버텼고, 교회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갔다. 이 목사 사역에 뜻을 함께하는 청년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병들고 지친 정신을 회복하는 계기가 있었다. 현재 총 18명이 사는 공동체로 일궜다. 장애인, 청년, 어린아이, 부부 등 여러 사람이 모여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땅 500평을 얻고 주위 도움을 보태 교회도 지었다.

교회 바로 앞, 흰색 표시 부분이 철길 예정지다. 흙을 쌓아 높이를 맞추기 때문에 교회는 가려지게 된다. 철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바로 인접해 있어 안전사고 우려도 있는데, 민원을 넣기 전까지는 가림막도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이어 갔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교회 앞마당이 터널 입구
"건축 2년 만에 건물 헐라니…"

마을 주민이 봉투 들고 교회에 찾아오기도 하고, 이 목사가 가면 화투 판 덮고 같이 예배드릴 정도가 될 무렵, 시련이 닥쳤다. 교회 앞마당, 불과 10m도 안 되는 거리에 철길이 난다는 것이다.

중앙선 도담~영천 구간 복선 전철화 사업. 단선 비전철 구간인 영주 이남 지역 선로가 곧게 펴지고 전철화하면, 여기에 준고속철도가 들어서고 서울 청량리에서 1시간 50분 만에 영천까지 도달할 수 있다. 3시간이나 단축되는, 지역사회로서는 반길 만한 사업이다.

하필 영주에서 영천까지 그은 일직선상에 교회 앞마당이 있었다. 교회를 건축하고 영주시에서 준공 허가를 받은 지 2년도 안 됐을 때였다. 더구나 교회가 터널 입구 앞에 바로 있어서 노선을 비틀 수도 없었다. 새 건물을 도로 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무원들은 '법'에 따라 집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관용은 없었다.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들은 이희진 목사에게 찾아와 "국가 사업이기에 강제 수용·철거까지도 가능하다"는 협박성 얘기를 하고 갔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었다. 언제 다녀갔는지, 철도시설공단은 알아서 감정 평가와 지장물 조사까지 마치고 자체 감정 평가액도 세워 둔 뒤였다.

교회 앞에 신설되는 철길은 5m 이상 봉토하기 때문에 교회 지붕 위로 고속철과 화물열차가 지나다니게 된다. 조망권은 물론이고 시도 때도 없는 소음, 안전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 무엇보다 공동체 어린아이들이 걱정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보상가가 현실적이지 않다. 교회 건물 건축 비용으로만 1억 5,000만 원이 들었다. 그나마도 남편과 신학생들이 인건비 줄이려 손수 뛰어들어서 비용이 절감된 것이다. 여러 교회들의 도움도 받았다. 그런데 보상금 책정은 건물 감가상각비 등을 고려해 건축 비용의 80%가 책정됐다. 현실적으로는 교회가 생존할 수 없는 조건이다.

"처음에는 80% 보상해 준다기에 애매했죠. 아주 못 받는 것도 아니란 생각도 들고… 근데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니 이 비용으로는 교회 존립이 안 되더라고요. 이주 보상금이라든지 주거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현실적으로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는데…."

교회는 비영리기관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이주 보상금 같은 것이 없다. 이사비도 100만 원이 책정됐다. 이희진 목사는 "토지보상법 기초가 일제시대 때 만들어져서 수용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담당 공무원도 딱하다고는 하는데,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며 답답해했다.

또 하나 큰 문제는 갈 곳이 없다는 점. 시골이다 보니 땅을 내놓는 사람이 없다. 영주에 머물고 싶어 내려왔는데, 정작 영주에 나온 땅이 없다. 지리적 여건이 좋아 최대한 마을 근방에 있고 싶지만, 평당 70~80만 원에 나온 땅 한 곳 제외하고는 매물도 없다. 빛마을교회는 평당 11만 원에서 20만 원 선의 보상을 받았다. 현실적으로 이사가 불가능하다. 정부에 대토(부지 교환)도 제안했으나 불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사정과 상관없이 공사는 막무가내였다.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교회 6m 앞에서 최근까지 터널 발파 공사가 진행됐다. 공동체 어린아이들이 스쿨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데 변변한 가림막 하나 없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민원을 수차례 넣고서야 가림막을 치고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

20명이 살다 보니 교회가 좁아 컨테이너를 들여놓으려 했다. 정부에서는 감정가 올려 받으려 한다며 이마저도 제한해 여러 가지로 난관에 부딪혀 있다. 말 그대로 현재 교회는 진퇴양난이다.

팍팍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지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빛마을교회는 교회 존립을 위해 함께할 사람을 찾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교단 "도와주고 있으나 방법 마땅치 않다"
"이래서 용산 참사 같은 일이…"

소송 같은 걸 할 일이 없었던 시골 교회 목사는 법을 공부하고 시청과 철도시설공단을 이래저래 뛰어다녀야 했다. 이희진 목사는 보여 준 수백 쪽 서류 뭉치에는 토지 수용 관련 법률, 철도시설공단에서 받은 문건, 시청에서 받은 민원 회신 내용, 토지 매매 계약서가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이래서 용산 참사 같은 일이 생겼나 봐요." 이희진 목사는 국가 사업 앞에서 힘 없는 시골 교회 목사로 싸워야 했다. 공무원들이 말을 제대로 들어 주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다. 특히 철도 쪽 토지 수용 문제는 악명이 높다는 걸 직접 경험해야 했다.

이희진 목사는 교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전명구 감독회장)는 모든 개교회 재산을 유지재단에 편입시켜 교단 본부에서 관리한다. 개교회의 재산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처음 들은 대답은 "개교회 문제니 알아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였다. 직원들은 유사한 사건을 100개씩 맡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업무에 치이는 현실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부담금 납부할 때는 칼같이 찾으면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외면하는 교단 본부가 야속했다.

교단은 이후 빛마을교회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방안을 강구 중이다. 전명구 감독회장과 연회 감독들이 탄원서를 작성해 줬고, 본부 법률 고문이 지원할 방안을 찾고 있다.

그러나 교단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입장이다. 감리회 사무국 이용윤 총무는 1월 2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빛마을교회를 돕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보상가 자체가 턱없이 낮다. 철도 영역이 토지 보상 문제에 제일 악질이라 쉬운 싸움이 아니라고 하더라. 우리로서는 일단 법률 지원을 하고 있고, 감리회 홈페이지에도 탄원 요청 글을 공지했다. 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 효과적인 건 감독회장 명의의 목회 서신을 전국 감리교회에 보내 동참을 호소하는 것이지만, 편지 인쇄 및 발송 비용만 수백만 원이라 선뜻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희진 목사는 교단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어 나름대로 법적 투쟁에 돌입했다. 도와주겠다는 한 행정사가 있었다. 착수금 없이 성공 보수의 일정 부분만 지급하기로 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교회 존립을 위해, 이희진 목사가 꿈꾸는 공동체 존립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보려 한다.

이희진 목사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관심 가져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보상안에 합의하지 않아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로 문제가 넘어간 상태다. 여기에서 수용 재결 여부를 심의하는데, 탄원서가 많을수록 영향이 있다고 한다. 3,000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 10분의 1정도만 채운 상태다.

내려온 지 7년, 아직 30대 초반 목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젊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겪긴 하지만, 교회를 존립하고 공동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한다. 그리고 빛마을교회 사례가 다른 교회들에 좋은 선례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탄원서 서명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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