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각기 자영업을 운영하는 한 부부는 2년간 4,000만 원을 모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2년 동안 매장 임대료로 낸 비용은 각각 6,480만 원, 4,800만 원이라고 한다. 약 1억 원을 월세로 내고 4,000만 원을 번 것이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2015년 출간한 <선한 분노>(아마존의나비)에 등장하는 일화다. 저자 박성미 감독은 "이전과 전혀 같지 않는 세상이 도래했다. 일하는 사람이 앉아서 돈을 버는 건물주보다 현명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농담에 더 이상 웃기가 힘들다.

부동산소득이 근로소득과 버금할 정도로 소득 불평등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토지+자유연구소(남기업 소장)는 1월 17일, 연구 보고서 <부동산소득 소득 불평등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부동산소득이 소득 불평등에 평균 40.3% 영향을 끼쳤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파악할 때는 지니계수를 본다. 지니계수가 '0'에 가까우면 완전 평등, '1'에 가까우면 완전 불평등한 상태를 의미한다. '부동산소득의 소득 불평등 기여도'는 부동산소득이 지니계수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한 값이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부동산 소유 구조가 불평등하다는 데 동의했지만, 부동산소득이 소득 불평등에 끼치는 영향은 적다고 봤다. 2009년 한국주택학회가 발간한 <자가 주택 소유의 묵시적 소득을 고려한 소득 불평등 연구>에서는, 부동산소득의 소득 불평등 기여도가 평균 16.9%에 그친다고 나와 있다.

장하성 교수(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도 2015년 펴낸 <왜 분노해야 하는가: 한국 자본주의2>(헤이북스)에서, 재산(부동산·금융 등)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며 그 증거로 시장 소득에서 재산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0.3~3% 수준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토지+자유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나타난 부동산소득의 소득 불평등 기여도는 적게는 35.6%에서 크게는 48.3%까지 달한다. 이는 같은 기간 근로소득의 평균 소득 불평등 기여도(40.8%)와 비슷한 수준이다.

부동산소득의 소득 불평등 기여도가 가장 높았을 때는 2008년(48.3%), 가장 낮았을 때는 2015년(35.6%)이었다. 2010년 이후 부동산소득의 소득 불평등 기여도는 매년 감소했다. 이는 부동산 가격 변동이 조금씩 안정화하면서 매매 차익 등이 줄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소득의 소득 불평등 기여도(2008~2015)

부동산소득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연간 평균 부동산소득은 472조 원으로, GDP 대비 37.2%다. 이는 같은 기간 근로자 보수(GDP 대비 43.6%) 다음으로 큰 수치다.

GDP 대비 연간 부동산소득 추산(2007~2015). 제공 토지+자유연구소

이번 토지+자유연구소 연구 결과가 기존 연구 결과보다 정확하다고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부동산소득은 매매 차익과 임대 소득을 합한 값이다. 매매 차익은 부동산의 매입 시점·가격을 알아야 정확히 구할 수 있는데, 모든 부동산의 매입 시점·가격을 아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존 연구에서는 국책 연구원이 표본 집단에서 추출한 자료를 활용했다. 남기업 소장은 "기존 방식은 표본 집단이 전체를 대표하는 데 한계가 있고, 부동산 고소득층이 축소해서 응답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토지+자유연구소는 세금으로 추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015지방세정연감>(행정자치부)에 나온 부동산 취득세 통계, 전체 부동산 가격 등으로 부동산 평균 보유 기간과 연간 부동산 거래액 등을 구해, 매매 차익을 추산했다. 매년 부동산 거래가 얼만큼 이뤄지는지 추정할 수 있어, 정확한 매매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연구에서 '귀속 임대 소득'을 임대 소득으로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귀속 임대 소득은,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의 현재 임대 가치를 말한다. 내 집이 월세 100만 원 수준이라면, 월 100만 원이 귀속 임대 소득인 것이다.

홍대에서 장사를 하는 A와 B의 예를 살펴보자. 이들의 연간 사업 소득은 1억 원으로 동일하고, 같은 가치의 건물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A는 가게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고, B는 임대료로 매달 500만 원씩 건물주에게 지급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둘의 소득은 연간 1억 원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둘의 경제 상황은 다르다. 귀속 임대 소득을 소득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남기업 소장은 "일반 시민은 부동산소득이 소득 불평등에 영향을 끼친다고 체감하지만, 기존 학계에서는 이를 증명하는 연구 결과가 없었다. 이번 연구는 부동산소득이 소득 불평등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이론으로 밝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다.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부동산소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부동산소득은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근로소득 불평등보다 문제가 크다. 부동산 소득을 환수해서 사회에 분배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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