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평소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던 이탈리아 로마에 한파가 닥쳤다. 유례없는 한파에 교황청은 노숙인에게 교회 문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교황청 소유 산칼리스토교회를 노숙인 기숙사로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1월 13일, 성당에 침대와 난방 기구를 준비해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교회가 노숙인 쉼터로 변하는 일이 교황청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지역 언론들은 해마다 겨울이 되면 노숙인에게 손 내미는 교회를 소개한다. 노숙인 밀집 지역에 있거나 노숙인만 대상으로 하는 전문 교회들이 아니다. 대형 교회도 아닌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작은 교회들이다.

영국 보스턴 센터너리감리교회(Centenary Methodist Church)는 1월 첫 주부터 노숙인에게 예배당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강추위가 예고된 상황이었다. 교회는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추위에 떠는 노숙인들이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이불과 따뜻한 차·커피를 준비했다.

센터너리감리교회 닐 비커스(Neil Vickers) 목사는 "5년째 이 일을 해 오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교인들도 자원봉사단을 꾸려 노숙인을 돌본다.

릭 헤인즈(Rick Haynes) 목사는 교회에 머무는 노숙인들의 안전을 살핀다. 세인트매튜루터교회에 온 노숙인과 대화하는 헤인즈 목사. <볼티모어썬> 기사 갈무리

미국 동부 매릴랜드주 볼티모어 지역 교회도 노숙인 돕기가 한창이다. 지역 내 교회 14개가 정부 단체와 연계해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노숙인을 돌보기로 했다. 교회들은 순서대로, 월요일 오후 5시부터 그 다음 주 월요일 오전까지 7일 동안 문을 연다.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교회를 찾은 노숙인에게 음식도 함께 제공한다. 교인들이 자원봉사를 맡아 노숙인을 돌본다. 개인 짐이 많은 노숙인은, 다음 교회로 이동할 때 자원봉사자가 함께 짐을 옮겨 준다.

첫 번째 순서를 맡은 세인트매튜루터교회(St. Matthew Lutheran Church)는 교회 체육관 문을 열었다. 단체 관계자 디아나 틸튼(Dianna Tilton) 씨는 "이곳은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잠자리와 한 끼 식사가 준비돼 있는 집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산타로사시에 있는 퍼스트연합감리교회(First United Methodist Church)는 노숙인이 마음 놓고 교회에서 캠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노숙인에게 식사와 하룻밤 잠자리만 제공했는데, 거기서 한발 더 나간 것이다. 아무런 보호막 없는 야산, 기찻길 옆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노숙인 10여 명이 교회 사유지에서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게 됐다.

노숙인은 한국에서나 미국, 영국에서나 환영받지 못한다. 노숙인이 늘어난다는 이유에서 노숙인을 향한 지역 교회의 행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웃들도 있다. 블레이크 버식(Blake Busick) 목사는 "교회 인근에 사는 사람들을 무시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원래는 20명까지 받을 예정이었지만 반발을 우려해 10여 명으로 축소했다. 이번 결정은 교회가 지금까지 해 온 일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라고 말했다.

메릴랜드주 파탑스코연합감리교회(Patapsco United Methodist Church)는 교회 앞 벤치에 노숙인을 재웠다가 벌금 1만 2,000달러(한화 약 1,410만 원)를 낼 위기에 몰렸다. 파탑스코연합감리교회는 옆에 있는 가게로부터 신고를 당했다. 지난해 6월 가게 주인은 노숙인들이 가게 앞에서 노상 방뇨를 일삼고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행동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교회를 경찰에 신고했다. 교회는 허락되지 않은 장소에서 노숙인을 재웠다는 이유로 매일 200달러(약 23만 5,000원)씩 60일치 벌금을 물게 됐다. 벌금은 교회 연간 예산 10%를 차지하는 큰돈이다.

노숙인이 잠잘 수 있도록 했을 뿐인데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었다. 교회는 본분대로 이웃을 돌봤을 뿐이라는 의견과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시는 대안을 내놨다. 교회가 벌금을 내지 않는 대신 교회를 찾아오는 노숙인에게 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프로그램을 소개하라고 했다. 교회 역시 여기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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