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사자의 요청에 따라 실명을 익명으로 변경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2022년 2월 15일 오후 6시 17분 현재)

'예수를 모른 채 죽은 아이들은 지옥에 가는가' 구원론에 의문을 던진 한 목사가 소속 노회 징계를 앞두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대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역사적 예수를 다룬 책을 읽고 있는 내게 학보사 선배가 왜 이런 책을 읽느냐고 따지듯 말했다. 말 그대로 '은혜를 받고' 회심한 선배는 열혈 신자였다. 설교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특히 "너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느냐"는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말은 신앙 선배의 진정 어린 조언이 아니라 매우 무례하게 느껴졌다.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

그 일을 계기로 누군가에게 구원의 확신을 묻는 행위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각자 생각하는 구원 개념이 다르고, 구원 유무는 전적으로 '그분' 뜻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구원 확신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노상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 교회 강단에서 "예수를 몰랐던 조상은 다 지옥에 갔다"고 외치는 목회자 등 말이다. 스스로 정답을 내린 이들의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6월 <불신 지옥을 넘어서>(홍성사)를 펴낸 A 목사는 불신 지옥에 의문을 제기했다. 예수를 모르는 갓난아이부터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이 전부 지옥에 갔냐고 묻는다. 특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청소년도 불구덩이에 떨어졌느냐고 지적한다. 누구나 한번은 고민해 봤을 문제지만,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진보 교단 소속 목사일 것 같지만 정반대다. A 목사는 고신대 신학과와 고려신학대학원을 나왔다. 부교역자로 10년간 지내다 책 출판을 위해 2년 전 교회를 사임했다. A 목사는 책에서 자신은 '만인구원론자'가 아니며,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믿으며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가장 성경적 진리라는 것을 믿는다." (12쪽)

A 목사는 책을 쓰기 위해 사역하던 교회를 그만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A 목사는 책을 쓰기 위해 사역하던 교회를 그만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다 지옥에 갔고 지옥에 간다"고 확정하는 '불신 지옥 교조화'는 반대한다.

"나는 지옥을 부인하지 않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지옥 자체를 부인하며 '지옥은 없다' 말하는 것은 인간의 바람일 수는 있어도 성경이 말하는 바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만인구원론자도 아니다 (중략) 다만 내가 반대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다 지옥에 갔고 지옥에 간다'고 확정하는 불신 지옥의 교조화이다." (77쪽)

"사랑하는 복음주의자들이여! 이제 믿음의 고백 없이 죽은 사람, 복음 이전의 사람, 선교 이전의 모든 사람, 선교 이후에 죽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지옥에 갔다고 말하지는 말자. 지옥은 인과율의 법칙성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 공로로 구원받을 수 없었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 또한 그리스도 없는 당신의 죄가 지옥이라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을 낳으니 오늘 당신에게 예수가 필요하다고 말하자. 이것이 우리의 전도요 우리의 선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135쪽)

A 목사는 책을 내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소속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고신)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무하는 교회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싶어 부목사직을 내려놓고 책을 집필했다. 우려는 들어맞았다.

"각종 참사 앞에 표리부동한 한국교회,
구원론 다양한 논의 필요"
소속 노회 "문제적 주장 연구하라" 지시
 A 목사 문제 제기한 신대원 교수
"책으로 펴낸 게 가장 큰 문제"

예장고신 전라노회는 지난해 10월 정기노회에서 "A 목사가 저술한 <불신 지옥을 넘어서>의 문제적 주장을 다룬다"고 결의했다.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고려신학대학원 이 아무개 교수에게 정밀 분석한 후 임원회에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당시 이 교수는 책 내용이 고신 교리와 맞지 않다며 노회가 판별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를 제기한 이 아무개 교수는 1월 19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을 '책'으로 낸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교조적 불신주의라는 개념 정의가 분명하지 않다. 문맥을 보면 복음을 듣지 않고 죽은 자뿐만 아니라 복음을 거부한 자들도 구원의 희망이 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다른 교단에서도 문제될 소지가 있다. 교단의 공적 목사 직분을 가진 분이 교단 신학에 반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책을 펴낸 게 가장 큰 문제다. 알기로 지금까지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교단에서 없다."

A 목사의 생각은 다르다. 1월 11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A 목사는 "합리적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 말고, 거론조차 하지 말라는 것은 독선이다. 복음주의 신앙을 지켜 가면서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답을 찾아가는 게 더 성경적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어머니처럼 여기는 교단에서 징계를 받지 않을까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불신 지옥을 넘어서>를 집필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A 목사가 말했다.

"기독교의 모든 문제는 영혼 문제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기존 구원론이 잘못됐다고 정죄하고 싶지 않다. 다만 (구원론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서 활발한 논의를 끌어올릴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의견을 제시하니 이단이라고 정죄하거나, 배격하지 않았으면 한다.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쉽게 이야기한다. 만일 당신 가족이 예수를 믿지 않고 죽었다면, 세월호 참사로 죽은 아이들 중 예수를 믿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이들은 모두 지옥에 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한국교회는 표리부동했다. 위로는 했지만, 정작 유가족이 듣고자 했던 영혼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해 주지 못했다. 교조적 불신 지옥 영향이 지금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때 A 목사는 누구보다 구원론을 신봉했다. 그러나 1999년 발생한 씨랜드 참사를 보고 강한 의문을 품었다. 당시 참사로 유치원생 19명을 포함 23명이 숨졌다.

"가엾은 어린아이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교리대로라면 (유아)세례를 받지 않았으면, 부모님이 교회 안 다녔으면 지옥에 간다. 정말 그런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씨랜드 참사는 고민을 증폭시킨 계기가 됐다. 앞으로 대형 참사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 없다. 이런 질문은 계속해서 나올 텐데 한국교회는 지금과 같은 자세를 취할 것인가."

구원론에 여러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는 절대 부인하지 않는다. A 목사는 "오직 예수를 통해 구원을 받는 건 분명하다. 다만 예수를 믿을 기회조차 없었던 이들과 억울한 희생을 당한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지옥에 간다는 기존 교리에 나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고 했다.

A 목사는 교조적 불신주의가 한국교회에 화두로 던져졌으면 한다고 했다.

"책을 계기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신학자들이 이 문제에 답을 계속 이어 가면서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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