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한광호 열사(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성기업의 노조 탄압으로 5년간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가 사망한 지 300일이 되던 지난 1월 11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 농성장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 부품 협력 업체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에 책임을 요구하며 지난해 5월부터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6년간 지속된 투쟁에, 조합원 306명 중 대다수는 생전의 한광호 열사처럼 분노 조절 장애, 우울증,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검찰은 유시영 대표이사(유성기업)와 유성기업에 근로기준법 위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유 대표이사는 징역 1년, 유성기업은 벌금 1,000만 원을 구형받았다. 올 상반기 선고심이 열릴 예정이다. 노조원들은 이번 선고 결과에 따라 긴 농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지난해부터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뉴스앤조이 현선

분노·우울증·불안에 시달리는 노조원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인권운동 사랑방, 일과건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법률원으로 구성된 '유성기업 괴롭힘 및 인권침해 사회적 진상 조사단'(명숙 단장)은 1월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침해 실태 보고회를 열었다.

조사단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유성기업 노조원 인권 실태를 조사했다. 조합원 306명 중 241명이 조사에 참가했다. 대다수 노조원은 사측에게 괴롭힘, 차별 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유성기업이 노조원을 괴롭히는 방법은 다양했다. 엉뚱한 작업장에 배치하거나 근무에 필요한 작업 도구를 미지급하고, 조퇴·복귀를 불허했다. 유성기업 아산·영동 공장에는 CCTV 30대를 설치해 노조원을 감시했다. 임금 인상, 상여금 지급에서 제외하거나 승진에서 누락시키는 등 노조원을 차별했다.

한인임 사무처장(일과건강)은 "사측이 아파도 일을 시켰고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화장실에 갔다 오면 그만큼 임금을 삭감했다. 작업에 필요한 장비나 도구도 지급하지 않았다. 상습적으로 노조원을 감시하고 대화를 녹음했다.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까지 통제했다. 회사는 여기에 항의하는 노조원을 고소·고발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한광호 씨는 오랜 노사분규로 얻은 스트레스와 우울증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른 노조원들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뉴스앤조이 현선

이런 괴롭힘·차별 때문에 노조원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한 사무처장은 "대표적인 인물이 고 한광호 씨다. 노조원을 인터뷰한 결과 대다수가 분노·우울증·불안·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었다. 40%가 고위험군에 해당됐다"고 말했다.

인간관계도 파괴됐다. 노조원들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아내와 자녀에게 폭언·폭력을 가한다고 호소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직장 동료, 지인과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다. 노사분규에 다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원들은 현재 빈곤에 내몰리고 있다. 매달 300여만 원씩 받던 이들은 현재 50~150만 원을 받는다. 한 사무처장은 사측이 걸핏하면 임금을 깎는다고 말했다. 수량을 못 채워서, 자리를 잠깐 비워서, 화장실에 오래 있어서, 커피를 마셔서, 동료와 말을 주고받았다는 게 이유였다.

계획적으로 진행된 유성기업의 노조 파괴

이서용진 노무사(금속노조법률원)는 유성기업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복수 노조를 악용한 단계적 전술을 구사했다고 주장했다. 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1) 노사 관계를 악화시켜 쟁의행위를 유도하고 2) 공격적 직장 폐쇄를 감행해 노조 간부와 노조원을 분리시킨 후 제2노조를 설립한다. 3) 기존 노조를 업무방해로 고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노조원에게는 탈퇴를 종용한다. 4) 제2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되면, 기존 노조와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무력화한다.

이 노무사는 유성기업이 2011년 4월부터 노동조합 무력화 작업을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금속노조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온건·합리적인 제2노조 출범을 유성기업에 제안했고, 유성기업은 창조컨설팅과 '노사 관계 전략 회의'를 구성했다고 알렸다. 그해 7월에는 제2노조를 설립해 노조 파괴 작업을 본격화했다.

곽명준 씨(오른쪽)는 사측이 노조원에게 기존 노조를 탈퇴해 제2노조에 가입하도록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곽명준 씨(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가 사전에 모든 계획을 짜고 진행한 것 같다. 2011년 주간 2교대 제도를 놓고 노사가 협상할 때, 사측은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우리가 쟁의행위를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직장 폐쇄를 감행했다. 그물을 미리 짜 놓고 물고기를 잡듯 작업을 진행한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곽 씨는 회사가 노조원에게 기존 노조를 탈퇴해 제2노조에 가입하도록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료·친척을 통해 회유하거나, 공장 관리직이 노조원에게 밥과 술을 사 주며 설득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임금 인상, 상여금 지급, 승진에 노조원을 제외하는 것도 조합원에게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괴롭힘 금지법 제도 개선 필요

보고회 참가자들은 유성기업 같은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권영국 변호사(민변)는 "현행법이 있지만 처벌 수위가 낮다. 근로자를 차별한 경우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부당 노동 행위를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친다. 처벌 강도를 높여 기업의 범죄 행위를 엄격하게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권 변호사는, 현재 노동 사건을 공안 검사가 처리하고 있다며 노사분규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동 검찰과 노동 법원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미 의원(정의당)은 올해 안에 괴롭힘 방지법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명숙 단장은 괴롭힘을 방지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올라왔다.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괴롭힘 행위를 규정하고 과태료도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회를 공동 주최한 이정미 의원(정의당)은 "지금까지 사회가 재벌을 보호하고 재벌 권익을 위해 모든 게 희생되어도 된다는 식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상적인 체제로 돌려놓겠다. 괴롭힘 금지법이 국회에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시민 단체도 계속해서 기업과 국회를 압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