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중구난방 들어선 건물 사이로 '로산젤라'라는 레스토랑이 보인다. '장미 천사'라는 뜻으로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작은 가게다. 로산젤라가 있는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은 카페가 즐비하거나 유동 인구가 많아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 아니다. 한적한 주변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로산젤라,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개장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매장 안은 깨끗하고 밝았다. 음식 가격을 보니 '착한 음식점'이라 불릴 만하다. 가격은 착한데 맛은 어떨지…. 페퍼로니가 올라간 사각 피자 조각을 한 입 물었다. 얇은 도우, 고소하면서 쭉쭉 늘어나는 치즈가 일품이다. 파스타는 또 어떤가. 적당하게 익은 스파게티면, 토마토와 생크림 소스, 통통한 새우를 적당히 버무린 칠리 로제 파스타에 입이 즐겁다.

칠리 로제파 스타(왼쪽)과 디아블로 피자. 저렴한 가격에 맛은 일품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로산젤라는 협동조합 '살길'이라는 곳이 자본금을 지원해 개업했다. 살길은 의정부 송암교회 박남수 목사와 교인들이 주축이 돼 만든 협동조합이다. 로산젤라에서 일하는 사람도 절반은 송암교회 교인이다. 어릴 적부터 송암교회를 다니던 청년이 쉐프로 일하고 있고, 함께 울고 웃으며 신앙생활한 집사들도 손을 보태고 있다. 자원봉사가 아니다. 월급 받고 일하는 직원이다.

박남수 목사는 2001년 경기도 의정부 송암교회에 부임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파송 독일 선교사로 8년을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와 청빙받았다. 송암교회는 한때 출석 교인이 200명 정도 되는 곳이었지만, 박 목사가 부임한 때는 한바탕 홍역이 휘갈기고 지나간 뒤였다. 상처받은 교인들은 교회를 떠났고 30~40명만 남아 있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
'구조'를 고민하다

박남수 목사는 처음 의정부 송암교회에 부임했을 때를 떠올렸다. 녹양동에는 하루하루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독일 선교사로 있으면서 지역 교회가 어떻게 지역민 삶의 중심에 자리 잡는지 지켜봐 온 박남수 목사. 먼저 녹양동 지역 주민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부터 살폈다.

"서울에서 목회하고 선교사로 해외 있었을 때는 잘 몰랐어요. 생활이 그렇게 어려운 분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존을 위한 삶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죠. 문화생활이 뭔지, 어떤 일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인지 전혀 생각 못 하고요. 생존의 늪 속에 살다 인생을 마감하는 저들의 삶을 보면서 교회가 이런 악순환을 구조적으로 바꿀 수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박남수 목사는 교회가 교인들의 경제적인 부분도 외면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사실 한국교회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어느 정도 자립한 교회는 선교부가 주축이 돼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 쌀을 직접 배달하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한시적으로 지원금을 주기도 한다. 학비가 부족한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주는 곳도 많다. 그런데 송암교회는 '협동조합'을 택했다. 다양한 방법 중에 굳이 협동조합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서민의 삶이 어려운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교회가 단순히 일회성 도움이 아니라, 삶의 근본을 바꿔서 자립하고 독립할 수 있게 구조를 만들 수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절망하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가 아닌, 삶을 함께 나누고 얻은 이윤을 사회로 환원해 또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적 경제 공동체를 이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교회가 교인들의 경제 여건까지 윤택하게 해 줘야 하는 걸까. 누구는 교회에서 협동조합 형태로 기업을 운영해 이윤을 남기는 행위 자체를 세속적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박남수 목사 생각은 다르다. 교회가 교인들의 영적인 목마름을 채워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끝인가. 박 목사는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목사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사업을 진행한다 한들 함께하는 교인들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박남수 목사는 3~4년 전부터 교회에서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 자본주의가 지닌 구조적 문제를 교인들과 함께 나눴다. 처음에는 담임목사가 하는 말이니 그냥 흘려듣던 교인들도, 나중에는 조금씩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박남수 목사는 협동조합 운영 노하우를 알고 있었다. 교회에서 협동조합을 시작하기 전 이미 다른 협동조합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는 경인기장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촌 교회와 도시 교회가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농촌 교회 교인들이 생산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도시 교회에 소개했다. 송암교회 교인들도 이미 계절별로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과일과 싱싱한 채소 등을 먹어 왔기에 협동조합이 낯설지 않았다.

의정부 송암교회 박남수 목사와 교인들이 만든 협동조합 살길. 로산젤라는 살길의 첫 번째 사업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6년 5월, 교인들이 10만 원, 많게는 100만 원씩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해 협동조합 '살길'을 만들었다. 교회 재정은 전혀 투입하지 않았다. 담임목사가 추진하는 일이면 당회를 거쳐 일사천리로 진행할 법도 한데, 왜 교회 재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마음 맞는 교인들과 뜻을 모아 협동조합을 시작한 것이지만 모든 교인이 동의한 것은 아니었어요. 협동조합은 저와 교인들이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요. 협동조합과 레스토랑이 잘 운영되면 상관없지만 만약 끝이 좋지 않으면 교회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거든요. 교회에 짐을 지울 수는 없죠."

교회도 버팀목이 될 수 있다

2016년 6월 17일, 많은 이의 염원을 담아 로산젤라가 문을 열었다. 현재까지는 잘 운영되고 있다. 아직 손익 분기점을 넘지는 않았지만 직원들 월급, 월세는 밀린 적이 없다. 윤미래 매니저는 이 정도 버틴 것도 감사하다. 봄이 오고 날이 좋아지면 야외 데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로산젤라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김영숙 집사는 송암교회 교인이다. 1996년부터 교회를 다녔다. 과거 함께 신앙생활하던 사람들이 상처받고 떠날 때 같이 떠났지만, 결국 고향 같은 송암교회로 다시 돌아왔다. 김 집사는 로산젤라에서 피자를 만들고 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해고될 위험 없이 일하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김영숙 집사는 1996년부터 송암교회를 다닌 교인이다. 지금은 로산젤라에서 피자를 만든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박남수 목사가 협동조합 살길을 만들려던 이유도 교인들이 눈에 밟혀서였다. 한 달에 열심히 일해 봐야 120만 원 간신히 버는 일자리. 그런 일자리마저 3개월만에 없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생계가 급한데 하루아침에 일할 곳이 없어진 교인들은 박남수 목사 손을 붙잡고 울었다.

교회에서 자란 청년 중 부모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도 자꾸 눈에 밟혔다. 부모 없는 청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희망을 잃은 청년. 대학 등록금이 없어 특별한 기술도 없이 주점에서 일하는 청년. 박남수 목사는 이 청년들이 살기 위해 일하러 가는 모습,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 절망감 속에 사는 모습을 보며 목회자로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좋은 직장,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저들이 저렇게 살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회자로서 마음이 정말 아팠죠. 그 틀 속에서 인생 한탄하고 사회를 저주하면서 외로움 속에 누군가를 만나 60~70대가 돼도 뻔한 삶을 살잖아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모험을 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한 청년에게 "너 꿈이 뭐니?"라고 물었다. "쉐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장 음식점을 시작하려 해도 돈이 없었다. 후미진 동네에 기업이 투자할 리도 없었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 끝에 생각해 낸 협동조합. 마침 지인 중에 백화점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다. 박남수 목사는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고, 청년은 그에게 정통 피자·파스타 만드는 법을 무료로 전수받았다. 청년은 로산젤라의 쉐프가 되었다.

윤미래 매니저(왼쪽)는 협동조합을 공부한 경력 단절 여성이었다. 지금은 로산젤라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사회와 교회 
패러다임 전환을 꿈꾸다

박남수 목사는 한국교회가 더 이상 교인들 삶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영적인 부분과 실제적인 생활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정신적·영적인 위로를 주고 교인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막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기도 하죠. 헌금 내는 문제 등에서 자기 책임을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신앙이 잘 뿌리내린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삶이 힘들어서 위로받고 싶어서 교회에 온 사람들은 생활이 어려워지면 경제적 부담 때문에 교회 생활도 덩달아 어려워집니다. 교회가 실제로 교인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박남수 목사도 힘들고 지친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해 주면서 자신이 함께 지치는 것을 경험했다. 아무리 위로한다 해도 실제 삶의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교인들의 경제적인 부분까지 건드리는 것을 꺼리는 한국교회가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적인 부분과 실제적 삶의 부분이 맞물려서 가야 해요. 초기 선교사들도 병을 고쳐 주고 고아원을 설립해서 아이들 돌보고 교육하는 일을 한 뒤에 복음을 전했잖아요. 예수 믿고 위로받으라는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러려면 결국 경제적인 영역도 함께 연결돼야 해요.

많은 도시 교회가 신앙의 본질보다 외형의 성장을 추구해요. 지역사회 주민들이 놓여 있는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그들의 아픔, 고뇌, 삶의 미래를 어루만지고 아우르지 못하기 때문에 목회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은 그런 상황에 있는 교회의 출구인 것 같아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교회가 찾는 일은 선교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입니다. 살길을 찾게 해 주는, 그래서 협동조합 '살길' 입니다."

이제 시작한 지 6개월. 박남수 목사는 "가난한 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실험하는 단계"라고 말한다. 길게 보고 있다. 로산젤라를 프랜차이즈로 키울 계획도 있다. 돈이 돈을 낳는 구조를 염두에 두는 게 아니다. 2016년 말, 지하철 1호선 덕계역 근처에 연 로산젤라 2호점은 교육비만 받았다. 2호점도 교회가 연 경우다. 로산젤라가 가진 기술을 전수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일, 박남수 목사와 협동조합 살길 조합원들이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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