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자기 스스로가 실천하는 조교가 돼 남을 가르쳤다. 누군가를 조교로 세워서 시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직접 조교가 돼서 원수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 몸소 보여 주셨다.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니까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 제자들이 깨닫게 하신 것이다. 베드로에게 칼을 거두라고 하는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원수를 원수의 방식으로 이기는 것이 정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수님은 악을 이기려면 절대로 악의 방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줄기차게 가르쳐 주고 계신다. 악의 방법으로는 절대 악을 이길 수 없다. 삶의 실천으로 가르쳐 주신 것은 원수 사랑이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전 통일부총리 한완상 교수(전 한국사회학회장)는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이 한 말을 직접 실천(프락시스)하신 분이라고 했다. 한완상 교수는 1월 13일 기독교 사회학 연구 프로그램 프락시스가 주최한 '<민중과 지식인> 그 후 40년…' 공개강좌에서, 사회학자이자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설명했다.

한완상 교수는 자신의 삶을 형성해 온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태어났더니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였다.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이름 '니시하라'를 쓰던 초등학생은 3학년 때 나라가 해방되는 것을 목격했다. 중학생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휴전이 됐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본 한국 사회는 친일 잔재가 널려 있고 반공주의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곳이었다.

전 통일부총리 한완상 교수는 지식인은 속한 계급과 집단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6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한완상 교수는 흑인 민권운동이 활발한 미국 남부 조지아주 에모리대학교에서 사회학 공부를 시작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흑인이 구조적으로 겪고 있는 고난을 해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천박한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히피 운동,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운동이 한창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한완상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구조·역사적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고난'과 개인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을 평생 과제로 삼았다. 연구한 것은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여기서 나온 개념이 사람 몸 대신 사회를 고치는 사람 즉 '사회 의사'였다. 사회학자이자 신앙인으로서 두 가지 정체성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도 했고, 공직자로서 예수님의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동일 집단 사랑은
이웃 사랑 아니다

한완상 교수는 사회학을 공부한 것이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겪은 히피 운동 등에서 사회학자, 지식인이라면 자신이 속해 있는 계급을 초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지식으로 배운 것이었는데 예수님의 삶을 보며 구체적으로 깨달았다.

"예수님이 하신 하나님나라 운동은 대안을 제시하는 따뜻한 샬롬을 구현하는 것이다. 래디컬이란 말을 잘못 쓰고 있는데 극단주의가 아니라 뿌리로부터 바꾸라는 이야기다. 산상 수훈에 보면 여섯 번인가 일반 통념을 뒤집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을 하지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한다. 자기와 동질적인 집단을 이웃이라 칭한다면 이웃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웃 사랑이란 것이 값진 게 아니다. 내가 소위 TK인데 같은 집단을 사랑하라는 거 아니다. 호남인이 호남향우회 사랑하고 해병대가 해병대를 사랑하는 건 이웃 사랑이 아니다. 원수 사랑은 훨씬 차원이 높은 것이다."

지식인이라면 자신이 속한 계급과 집단을 뛰어넘어야 하는 법. 한완상 교수는 "예수님의 행동 규범을 유발하는 북소리는 소속 집단의 북소리가 아니라 자신이 속하지 않았던 하나님나라의 북소리였다. 하나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질서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였기에 그 소리대로 이야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7년 촛불 정국에서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완상 교수는 "원수 속의 악과 내 속의 악이 만나 전쟁과 죽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선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이것이 예수님이 몸소 행하신 뿌리로부터 변혁시키는 근본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한완상 교수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 한국교회에도 자기 비움의 케노시스가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교회에 자기 비움이 있는가

한완상 교수는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예수님을 더 쉽고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당시 밥상 나눔과 무상 치료를 병행했다. 당시 사회는 사람이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것을 죄 때문이라고 믿으며, 신앙적으로 장애인을 저주받은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한 교수는 이것이 사회에서 갑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념적인 딱지라고 설명했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는다. 한완상 교수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여인이 병 고침을 받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했다.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주체성까지 부여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이다. 진짜 따뜻한 샬롬이 꽃피는 상태다. 한국에 그런 복음이 있나. 사회에서 상처받고 잃어버린 정체성이 교회에서 아름답게 회복되고 있는가. 사회에서 대접받는 사람이 교회에서도 대접받지 않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대안이다. 사회, 종교, 로마제국이 하지 못하는 것을 치유하는 구조적인 치유다."

한완상 교수에게 예수님의 삶 자체는 케노시스, 즉 자기 비움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다 뜯어먹으라고 내어놓으셨다는 것이다. 한완상 교수는 예수님의 케노시스가 한국교회에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양희송 대표(청어람 ARMC)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데 개신교 개혁은 실패했다고 본다. 종교개혁은 '믿음으로만'이라고 했는데 그 믿음이 프락시스(실천)와 연결되지 않으니까 실패. '은혜로만'이라고 했는데 값싼 은혜만 넘쳐나서 교인들이 정작 십자가 케노시스의 영광스러운 보람은 맛보지 못하게 하니까 실패. '성서만으로'를 외쳤는데 기계적인 축자영감설을 믿는 사람에게 성서가 역사를 창조하는 변혁적인 힘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할 수 없으니까 실패다. 축자영감설은 성경 문자 자체를 우상화해서 우리를 억압한다.

종교개혁 이념이 실패한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다. 탄핵 무효 집회에 태극기 들고 나간 사람들 중 기독교 신자가 많다. 이게 무슨 세상 빛이고 소금인가. 오히려 촛불 광장에서 경찰 차벽을 넘으려는 남자에게 밑에서 '내려와, 비폭력'을 외치는 이들이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나라 이룩하는 변혁의 주체라는 것을 느꼈다."

불금에 영하 11도인데도 참석자들은 한완상 교수의 강의를 듣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완상 교수가 강의하는 프락시스 공개 강좌는 1월 20일 한 차례 더 열린다. 두 번째 강의는 '<사회학적 파상력>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김홍중 교수(서울대 사회학과)가 강사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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