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대통령 취임식을 할 날도 이제 열흘 남짓밖엔 남지 않았다. 미국 대선 기간 내내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기독교 사회윤리가 생각이 났다. 비록 나의 사회윤리 관점이 니버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며 발전해 왔지만, 니버만큼 미국 자유주의 신학 전통에서 사회, 정치 문제를 분석한 기독교 학자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니버의 입장에서 트럼프의 미국이 국제사회에 가져올 불안감을 분석해 보고, 희망의 신학을 생각해 보고 싶다.

니버가 쓴 많은 저서 중에 가장 유명한 책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Irony of American History)>이다.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를 통해, 니버는 비판적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기독교 사상을 분석하며, 이 사상이 미국 정치와 경제,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미국의 국제사회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니버가 이 책을 쓴 1952년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2017년의 미국은 별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트럼프는 니버가 생각하는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니버는 미국이 강대국인 것은, 기독교 칼빈주의의 입각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만든 자본주의 체제 때문이라기 보다는, 광대한 영토와 자원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사회에 널리 퍼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부자가 된다는 윤리 사상은 부르주아 계층과 결합한 기독교 사상이지, 미국의 부를 설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이유는 아니다. 미국은 이미 자연적으로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이 자산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부가 모든 계층에 공평하게 분배되지는 않았다. 니버는 부의 불평등만큼이나, 미국 사회에 팽배한 부에 대한 무비판적 시각, 또는 부를 바라보는 순수함(innocence)이 도덕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미국 사회는 정치적 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억압적인 정부나 거대 정부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고 있는 반면, 경제적 힘에 대해서는 소극적 입장을 취한다.

이미 60여 년 전에 니버는 돈이 가지는 힘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정치뿐만 아니라, 돈 또한 위험한 권력이며, 돈을 가진 자본계급이 정치권력까지 가질 때, 권력의 집중화로 인해 사회 불평등은 심화되고, 권력의 균형 있는 분배 또한 어려워진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니버가 우려한 것처럼 부의 권력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 무지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부유해진다는 진부한 믿음이 도널드 트럼프처럼, 어찌 보면 일반인이 생각하는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는지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국제정치에 대한 정책이 별로 없다. 아마도 정책의 부재는 지식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 같다. 니버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강대국이 된 미국이 힘의 정치가 판을 치는 국제사회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니버에 의하면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피해야 할 두 가지 길이 있는데, 고립주의와 제국주의가 그것들이다. 고립주의는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며, 미국이 국제사회에 가지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고, 제국주의는 국제사회의 반발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니버의 세계관은, 소련을 경계하며, 미국과 동맹국들이 핵전쟁의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17년은 니버의 세계와는 달리, 냉전 체제를 벗어났지만, 냉전 체제보다 더 위험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얽히고설킨 국제정치 판에서 트럼프의 등장은 위험을 더 가중시킬 뿐이다. 니버의 눈으로 본다면, 트럼프의 국제정치는 보호주의를 표방한 미국 고립주의, 힘을 이용해 다른 나라를 억누르려는 제국주의밖에 없다.

트럼프의 미국은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 상당한 위협을 줄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대선 운동 기간 내내 주한 미군 방위 분담금을 한국 정부가 더 부담해야 하고, 북핵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거 없이 하는 그의 주장이 대중적 지지를 얻는 것은, 그것이 미국 대중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전 세계 도처에 있는 미군과 미군 부대가 세계 평화를 위한 자국의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통틀어 핵폭탄을 실제로 사용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한데도, 이란과 북한과 같은 핵을 개발하는 국가들과 IS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으로만 비춰지고 있다.

미군 기지 연구의 전문가인 아메리칸대학교(America University)의 데이빗 바인(David Vine) 교수에 의하면, 비록 미 국방성에서는 686개의 미군 기지가 자국 밖에 분포하고 있다고 하지만, 공식,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크고 작은 기지들과 군사작전들을 생각하면, 전 세계에 위치한 미군 기지들은 1,000여 개가 훨씬 넘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만도 공식적으로 밝혀진 기지는 83개이며, 주한 미군은 2009년 현재 2,850명에 달한다(<Base Nation: How U.S. Military Bases Abroad Harm America and the World>, 2015).

미군 기지들은 해외에 거주하는 5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의 삶과, 그 기지 주변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의 삶, 주둔국들의 정치, 경제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다. 바인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골프장, 리조트 시설, 아파트 단지까지 갖춘, 외국에 위치한 하나의 미국 사회인 미군 기지는 철저히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오히려 미국의 국내 정치와 국제정치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미국은 마초주의에 입각한 힘의 정치, 군사 정치로 국제 문제에 접근한 확률이 높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미군을 생각하면, 국제 질서에 위협이 되는 힘은 실제로 미국이다. 니버는 이미 1952년에 미국이 세계 정치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했다.

트럼프의 등장은 오히려 미국의 사회운동 세력을 규합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에서도, 대선 후,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도 여러 연설을 통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사회변혁을 가져오는 힘은 시민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다. 현재 트럼프의 내각은 위험할 정도로 부유한 백인 남성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양한 사회운동 그룹들이 그 내각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러한 시민 사회운동의 힘은 1960년대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 여성운동, 반전운동, 소수 인종 인권 운동 등을 통해 다져진 힘이다. 유니온신학교의 라인홀드 니버 석좌교수였던, 기독교 사회윤리학자 래리 라스무센(Larry Rasmussen)은 이 힘을 "집단적 영성(collective spirituality)"이라고 불렀다 (<Earth-Honoring Faith: Religious Ethics in a New Key>, 2013).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갈라놓고, 군사주의가 자본을 보호하려고 들고, 자연이 인간에 종속되는 시대에, 집단적 영성은 인간들로 하여금 모든 생명이 서로에게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민중이 원래 가지고 있는 변화의 힘을 공동선을 위해 사용하도록 이끈다.

한국에서 불타오르는 수많은 촛불들은, 나에게 라스무센이 이야기한 집단적 영성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트럼프의 미국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내가 집단적 영성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웹진 <제3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웹진 <제3시대> 바로 가기: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

배근주 / Denison University 종교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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