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세월호 가족들의 투쟁이 오늘의 촛불 정국, 촛불 혁명을 가져왔다."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는 말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참사 후 1,000일 가까이 한길만 걸어왔다. 정부의 지난한 방해는 물론, 동지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압박, 가족들 내부의 이견들을 극복하고 한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먼저 간 아이들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심판하는 국민의 칼끝은 대통령의 7시간을 향하고 있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지는 백만 촛불과 함께 활활 타오른다. 9월 말, 정부는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강제 종료시켰지만,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구축이라는 과제는 이미 세월호 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2016년을 마무리하며 세월호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 가장 슬픈 사람들, 하지만 그 아픔을 딛고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끌어온 사람들. 세월호 가족은 어떤 마음으로 연말연시를 맞이하고 있을까. 12월 26일 안산 합동 분향소 기독교예배실에서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를 만났다.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아이와 1년 더 가까워졌구나

-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입니다. 느낌이 어떠신지요.

글쎄요. 작년 연말과 비슷한 것 같아요. 작년 12월에 특조위 주관 첫 번째 청문회가 있었죠. 그래서 '이제 뭔가 좀 밝혀지려나' 싶었어요.

올해도 비슷한 것 같아요. 10월 넘어가면서 국정 농단 사태가 드러났고 지금까지 촛불 열기가 이어지고 있잖아요. '뭔가 밝혀지겠구나'라는 희망?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매주 이렇게 촛불 집회가 있는 게 굉장히 희망적이고 고무적일 수도 있지만, 작년과 상황이 비슷해서 살짝 걱정되기도 해요. 기대 반, 걱정 반이에요. 뭔가 더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

저희 세월호 가족들은 아침을 시작할 때 '오늘 하루 또 어떻게 보내지?' 그래요. 저녁이 되면 '아, 이제 우리 아이들과 하루 더 가까워졌구나' 그런 마음이에요.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그래요. 어떻게 버티나 했는데 어찌 됐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으니까. 아이한테 1년 더 가까워졌구나 싶어요.

- 그래도 올해 4월 16일, 2주기 때는 1주기 때에 비해 조금 희망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고 여소야대 국회가 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2주기 때도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았어요. 그때도 특조위가 유야무야 힘을 못 쓰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1주기 때는 정말 최악이었으니 그때보다는 나았죠. 그때는 진짜 죽을 각오로 싸울 때였고,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으니까요. 부모들이 싸우면서 "여기를 우리 무덤으로 만들자"고 서슴없이 말할 때였으니까. 그때 제일 잊히지 않는 게, 아빠들이 안국역에서 경복궁역 넘어가는 그 중간쯤에서 같이 밧줄로 목매고 주루룩 앉아 있던 모습이에요. 그 한 장면이 그때 부모들 심정이었어요.

올해는 어쨌든 투표 결과가 저희한테 가장 큰 위로가 됐죠. 근데 그러고 나서 야당의 태도가 또 가장 큰 상처가 됐고. 특조위를 비롯해 아무것도 못 지켰으니까. 정치인들 하는 행동이 답답해요. 그 어디에도 우리 편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나마 광장에 나가서 집회 할 때, 시민들 만날 때 위안이 돼요. 2주기 후로 시민들 사이에 노란 리본도 더 많이 보이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게 힘이 됐죠.

어떻게 만든 특조위인데…
특조위 강제해산은 아쉽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6월부터 특조위가 강제해산될 조짐을 보이다가 9월 말 결국 그렇게 됐죠.

정말 어렵게 만든 거잖아요. 특조위를 만들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었고, 그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서명을 받으러 전국으로 돌아다녔죠. 가족들은 몇 개월간 거의 매일 나갔어요. 아침에 무슨 인력 시장처럼 일렬로 서서 버스 타고 전국으로 흩어지고. 가까운 지역 가는 경우에는 저녁에 도착하는데, 멀리 간 경우는 새벽에 도착하고 그랬어요. 거의 초주검이 돼서 도착하면, 분향소에 일렬로 들어가서 아이들한테 인사하고 집에 가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모은 여론으로 특별법을 만들었는데…. 비록 반쪽짜리였지만 어쨌든 특조위가 구성됐잖아요. 검찰에서 밝히지 못한 것들을 특조위가 밝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저희가 알고 있는 사실에서 그렇게 많이 나가지 못했어요. 아쉬운 게 굉장히 많아요.

- 정부가 조사에 비협조적이고, 특조위에 수사권·기소권도 없으니 조사 자체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특조위도 그러더라고요. 자기들은 조사 결과가 100%가 돼야 공개할 수 있는데, 어떤 건 50%, 어떤 건 70% 조사가 진행됐다고. 그런데 더 이상 조사를 진척할 수 없도록 활동 기간이 종료됐기 때문에 안타깝다고. 조사 기간이 너무 짧았고, 특히 정부 기관들이 제대로 자료를 내놓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지금 계속 세월호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대통령의 7시간 이야기가 나오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도 청와대가 정확한 자료를 내놓지 않는다는 거죠. 이 정도면 특조위가 조사하기 어려웠다는 것도 이해는 가요.

며칠 전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세월X'를 공개했잖아요. 자로가 얘기하는 게, 세월호 진상 규명은 자료가 부족한 게 아니고 자료가 있는데도 그걸 얻을 수 없어서 밝히지 못하는 거라고, 제대로 된 자료만 취합하면 밝힐 수 있는 거라고 하잖아요. 자로가 해군 레이더 영상 자료를 얘기하는데, 지금 3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그걸 안 내놓는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특조위가 진행되고 조기 종료되는 과정을 보면서, 부모들은 더 확실하게 깨달은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온몸으로 막는 데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이유가 있나 보다.' 처음에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단순 사고이길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근데 정부가 너무 적극적으로 막으니까. 이건 누가 봐도 뭔가 고의성이나 너무나 감추고 싶은 큰 과실이 있는 거라고 생각되죠.

심장이 오그라들던 '기억 교실' 철거
기억 교실을 철거하던 날, 단원고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8월 말에는 단원고에서 기억 교실을 철거한 일이 있었죠.

그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기억 교실을 철거하지 말아 달라고 피케팅을 시작했어요. 시민들 사이에 교실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계기는 된 것 같아요. 근데 결국은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때 피케팅에 참여했던 부모들이 그만큼 상실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해도 안 되는데, 피케팅 가지고 뭘 할 수 있겠어, 그런 자괴감이 들었죠.

- 그땐 상황이 좀 애매했던 것 같아요. 가족협의회 집행부에서는 어쨌든 '사회적 합의'라는 것에 도장 찍었기 때문에 교실을 뺄 수밖에 없던 입장이었고….

집행부는 그랬을 수밖에 없고, 다른 가족들은 '저들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 과연 나중에 기억 교실이 만들어지겠느냐. 단원고 근처로 돌아오지 못할 거다'라는 불안감이 컸죠. 실제로 지금 그 그래요. 단원고 인근 지역 주민들이 추모 시설 들어오는 걸 반대하고 있거든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예요.

집행부 부모들도 마찬가지고 가족들 한 명 한 명 물어보면, 다 거기(단원고)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했어요. 근데 주변에서 너무 압박이 들어오니까. 교육청, 안산시, 지역 활동가들도 그렇고, 뭐 누구 한 명이라도 같이 손들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집행부에서도 밀고 나가는데…. 쫓겨난 거죠. 저희한테는 또 어떻게든지 이 지역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숙제가 있으니까.

교실 뺄 때는 정말 심장이 오그라들었어요.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기분. 주홍글씨처럼, 세월호 가족이라는 이름이 더 선명하게 느껴질 때였어요. 누구를 만나는 것도 무섭고. 밖에 나갔다가 안산 들어오면 숨 막히고.

- 안산에서 그러니까 마음이 더 힘드셨을 것 같아요.

광주 같은 경우도 민주화운동 후 3년 정도 지역 주민과 갈등했다고 하더라고요. 정부에서 압박하고 계속 문제시하니까 지역 주민들이 당사자·유가족과 거리를 뒀던 거죠.

지역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왜 나사렛에서 터부시됐는지 조금 이해가 가요. 예수님 형제자매 중 실수 안 한 사람 있었겠어요? 실수도 하고 싸움박질도 하고 술 마시고 주정도 부리고 했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렇게 같이 지내던 형제 중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너무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하니까. 생소했을 거 같아요.

지금 지역 주민이 저희를 바라보는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평범하게 살던 사람, 불쌍한 사람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저희가 말하는 게 일상적이지 않잖아요. 저희도 처음에 '퇴진'이라는 말을 못했어요. 집회에 나갔다가 누군가 '박근혜 퇴진'이라고 하면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새누리당 해체하라고 하고, 국가를 염려하고, 역사를 논하고 하니까. 주민들은 낯설 수 있죠. 이해는 돼요.

박근혜 탄핵과 세월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던 날, 예은 엄마와 아빠가 포옹하는 모습. 사진 제공 박은희

- 10월 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드러나면서 뭔가 급물살을 탔달까요. 결국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는데요. 박근혜 정부 심판의 마지막 화살은 세월호로 향하는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가 했던 여러 가지 잘못된 일 중에 정점에 있는 거죠, 세월호가. 304명을 수장시켰으니….

- 12월 3일,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하셨을 때 오열하셨던 게 기억나요. 탄핵안 가결 때도 가족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는데요.

2년 8개월 동안 서러웠던 거, 그런 게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 너무 답답하고 참혹하고 그런 게 이만큼 쌓여 있었는데, 그걸 막고 있던 게 무너져 내린 느낌? 저희가 싸워 왔던 시간들이 있잖아요. 지치고 힘들고 상처받았던 것들…. 그런 걸 생각하니까 기뻐하기보다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 같아요.

청와대 100m 앞까지 갔을 때도 그런 생각이었어요. 아니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 막았을까, 이렇게 가까운데 그게 뭐라고 한번 나오지 않았을까.

-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이 이슈로 급부상했는데요. 예전에는 대통령의 7시간 이야기하면 음모론자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은 확실히 여론이 달라진 것 같아요.

1주기 지나고 나서 한동대에 간담회를 간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한 학생이 물었어요. "1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머님은 뭐가 변했다고 생각하느냐." 배도 안 올라오고, 언론도 그대로고, 대통령도 그대로고, 정치권도 저 모양이고, 도대체 변한 게 뭐가 있느냐고. 그 말 듣고 좀 멍했어요. 1년 동안 논 거 아닌데. 정말 온몸을 다 바쳐서, 가정을 내팽개치고,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악을 쓰고 싸웠는데, 정말 변한 게 없더라고요.

너무 억울하잖아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니. 그래서 제가 그 학생에게 말했어요. "변한 게 딱 한 가지 있다. 가족들이 변했다. 가족들이 처음에는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몰랐는데, 1년간 싸우면서 정치가, 언론이, 대통령이 뭘 잘못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4·16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 1년은 여러분이 변하면 된다."

근데 진짜로 1년 사이에 국민들이 변했어요. 광장에 수백만이 모이는 걸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이 눈에는 안 보였지만 우리와 똑같이 숨어서 아파하고 있었구나. 숨어서 칼을 갈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들도 참사 후 1년 동안 설마설마하다가, 이건 고의적이든지 뭔가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국민들도 2년간 설마설마하다가, 이제 뭔가 있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설마가 아니라 개연성이 있구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 거죠. 남은 숙제는 정치인들의 변화예요. 정치인들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 11월 중 SBS '그것이알고싶다'에서 세월호 관련 방송을 두 번이나 내보냈고, 성탄절 지나 자로가 '세월X'를 공개하면서 다시 한 번 참사 진상 규명이 조명되고 있어요.

저희가 보기에는, 지금 자료를 10~20%밖에 못 봤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모든 자료를 열람해야죠. 그리고 그 당시에 의혹이 불거졌던, 잠수함이든 핵폐기물이든, 또 아침 7시에 방송이 나갔다가 삭제됐던 것, 선장이 묵었던 숙소의 CCTV가 삭제됐던 것,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은데 하나도 해결이 안 됐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를 볼 수 있는 권한이 특조위에 있어야 하는 거죠. 지금처럼 정부에서 조작하고, 자를 거 다 자르고 갖다 준 것만 보고 어떻게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있겠어요. 자로도 자기가 결론 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이런 다큐를 만든 건 강력한 특조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내년에는 꼭 합동 영결식을
내년에는 강력한 특조위가 만들어져 모든 자료를 열람해야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2017년에 기대하는 바가 있으시다면.

일단 대통령이 바뀌어야 하고요. 박근혜 대통령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저희가 3년 가까이, 1,000일 정도 겪으면서 느낀 건 '사람이 아니구나'. 왜냐면 사람이 다른 사람 아픔에 공감할 줄도 모르고,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사람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둘 수가 있어요. 그건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거죠.

정치판도 바뀌어야 해요. 가족들이 정말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 이 문제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모든 것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에요. 또 위에서 아무리 틀어막고 있다고 해도 그걸 뚫어야 하는 게 정치판인데, 국회의원들이 그걸 못해요. 완전 패거리 정치에, 친박·비박 이런 말 자체가 부끄럽고 우스운 일이잖아요. 건전한 정치 문화가 있어야, 정치인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대변하죠. 정치권에 한번 요동이 일어나야 해요.

그 안에서 제2의 특별법을 만들어서 특조위가 다시 가동돼야죠. 이제까지 열람하지 못했던 자료를 다 봐서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이뤄지기를 바라요. 이 모든 의혹들을 정리하려면, 배가 올라와야 해요. 부디 3주기 전에 배가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잭킹바지선으로 들어 올리는 작업을 4월부터 한다는데, 왜 그때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작년에도 겨우내 작업했으면서….

빨리 배가 올라와서 9명 찾고, 가을쯤이나 내년 넘기기 전에 합동 영결식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죠. 아직 할 일이 많아요. 배가 올라오면 더 힘들고 어려울 거라고 예상해요.

국민들도 염려하고 있지만, 탄핵에서 대선으로 넘어갈 때 엉뚱한 사람들이 주도권을 쥘까 봐, 그게 제일 경계돼요. 이제 시작이고 이제부터 정신 차려야 해요. 제대로 된 대통령이 뽑히고, 국민의 눈치를 보는 정치판으로 변할 때까지는 국민들이 조금 더 힘을 내 주셨으면 좋겠어요.

- 그래도 두 달 내내 토요일날 몇 십만 몇 백만 명이 모이고 있는데, 그런 걸 보면 어떠세요.

가족들 다 그래요. 일주일 내내 뉴스 보면서 화딱지 나다가, 주말에 광장에 가면 위안을 받고 온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시간인 거 같아요.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도 그러시더라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돼 주고 빛이 돼 주는 곳이 광장 아닌가….

-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기독교인 가족들 보면, 참사 초기에는 교회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힘들어하셨는데, 지금은 그래도 신앙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셨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어요. 교회를 떠나신 분도 계시지만, 다들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하나님은 나의 편이다'라는 생각. 처음에는 '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됐을까'에만 관심을 가지다가, 점점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 분이구나'에 더 관심이 가게 됐어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내가 주저앉기보다는 불의한 자들과 싸우기를 바라시고, 기꺼이 우리와 함께 싸우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걸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확신할 수 있다.' 그런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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