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을 받고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루터 연재 3: 루터와 기도

"루터는 '내가 아침에 2시간 기도하지 않으면 그날은 마귀가 계속 승리한다. 나는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매일 3시간을 기도하지 않으면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E.M 바운즈의 <기도의 강력>(규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 책엔 인용의 출처가 제공되지 않는다. 게다가 여러 곳에서 이 문장을 검증 없이 은혜롭게(?) 재탕 삼탕한다. 심지어 교회와 출판사 홍보에도 사용된다. 또 어디서는 루터가 "평소엔 세 시간, 바쁘면 예닐곱 시간 기도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면서 어떤 신앙의 행위보다 기도가 우선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조금만 관심 가지면 루터의 기도 생활에 대한 여러 변형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명언들은 기도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주는 반면, 가끔은 듣는 이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이 정도 기도 생활 안 할 거면 교회에서 말도 꺼내지 말라!'며 쫄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루터가 이런 말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NO!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럼 앞서 언급한 말의 출처와 맥락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수도사 출신 루터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루터가 수도사 출신이라는 점이다. 1505년 에르푸르트 아우구스티누스수도회에 들어간 이래로 1523년까지 수도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는 점은 루터의 기도 생활을 이해하는 좋은 실마리가 된다. 루터의 수도원 하루 일과표는 어렵지 않게 재구성할 수 있다.

우린 새벽 예배가 보통 5~6시 정도지만, 루터가 몸담고 있던 수도원의 첫 일과는 새벽 1시나 2시 수도원 종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첫 번째 종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십자 성호를 긋고, 발목까지 오는 긴 흰 옷(Robe)을 입고 소매 없이 앞뒤로 걸쳐 입는 겉옷(Scapula)을 착용하고 조용히 기도하며 두 번째 종을 기다린다.

다시 종이 울리면, 각자 조용히 예배당에 가서 성수를 자기 몸에 뿌리며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헌신의 기도를 올린다. 이것이 하루의 첫째 일과인데 기상부터 약 45분 걸린다. 이후로 취침시간을 제외한 매 3시간마다 7회(취침 기도 포함) 기도회에 참여해야 했다(Vgl. WA30/1,125,17-21: "대교리문답 서문": WA 42, 511, 28f). 기도회와 기도회 사이에 노동, 탁발, 강좌, 식사 시간이 배정되었고, 매 주일 금요일과 특정 교회 축일엔 전일 금식과 더불어 특별 기도가 있는 등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다.

특히 수도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간은 기도와 미사 시간이었기 때문에 규율상 시간과 횟수를 정확하게 지켜야 했다. 이것은 수도원 생활에서 기본에 속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훈련받은 기도 생활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루터가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이런 기도 생활에 점점 의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루터가 들어간 수도원은 "기도란 하나님과 화해하고 구원받는 수단"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루터의 불안감은 더욱 심해졌다. 과연 '내 기도의 양과 횟수가 구원받을 만큼 충분한 것인지?'

당시 수도원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기도의 시간을 충분히 채우지 못하거나 정해진 기도 시간을 그냥 넘겨 버리는 것도 '죄'로 간주되었다. 지금 말로 하자면, '새벽 예배 빠지면 지옥간다'는 것과 유사하다. 루터는 순진했고,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수도원에서 지정된 기도 시간을 모두 채우는 것은 루터에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수도원에서 단순한 수도사 신분이 아니라 1507년 5월 2일부턴 미사 집례와 강의 직무를 부여받은 '사제'였기 때문에 강의 준비로 인해 정해진 기도 시간을 채우기 버거웠다. 이런 이유로 밤새워 기도하는 일도 많았고, 주말이 되면 밀린 기도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하루 종일 골방에 박혀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루터는 이 시기를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내 방에 쳐 박혀 나에게 주어진 기도 시간을 모두 채우기 전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어떤 때는 5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해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WA.TR 1, Nr. 495)

수도사 루터에게 기도란 지긋지긋하게 여겨지더라도 반드시 시간을 채우고 수행해야 할 그런 덕목이었다. 3개월치 기도 시간이 밀린 적도 있었다. 그러자 이런 고백을 하게 된다. "기도 시간을 채우는 것은 이젠 솔직히 감당할 수 없는 짐입니다. 그렇게 난 기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WA.TR 5, Nr. 5428)

기도 시간을 빼먹는 일은 루터에게 양심의 짐이 되었다. 한 예로, 1515년 비텐베르크대학교 교수 진급 문제로 기도 시간을 지킬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 폭풍으로 천둥소리가 하늘에서 진동하자 기도 시간을 빼먹어서 하나님이 진노한 줄 알고 두려움에 떨었다(WA.TR 4, Nr. 4919)고 회고하기도 했다.

수도사 루터에게 기도 시간을 채우는 것은 점차 영혼을 질식시키는 율법이었고 압박이 되어 갔다. 그러던 그가 1520년이 되어서야 이런 식의 기도는 복음의 자유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그 후로 이런 식의 기도 시간 때우기와 영영 이별하게 된다(WA.TR 5, Nr. 6077).

규칙적인 기도 생활과 기도 방법

그렇다고 루터가 기도를 게을리했다는 것은 아니다. 수도사 시절 몸에 밴 기도 습관은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수놓게 된다. 특히 대·소교리문답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처럼 아침, 저녁으로 기도할 것을 권하는 대목은 수도사의 기도 습관이 변화된 적절한 예로 볼 수 있다(WA30/1,125,17-21).

내 이야기 하나 해 본다. 얼마 전 교인 한 분이 딸내미 선물이라고 동화책 한 권을 선물해서 받은 일이 있다. 제목은 <루터와 이발사>(IVP)인데, 기도하는 걸 어려워하는 이발사에게 쉽고 깊은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 주는 내용이다. 여기서 루터는 대·소교리문답과 마찬가지로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를 통해 기도하는 법을 알려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소제목은 영어로 'A simple way to pray'(쉽게 기도하는 법)이다. 아이들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동화책이다. 조만간 나도 교회에서 어른들을 상대로 이 책으로 동화 구연을 하려고 계획 중이다.

그런데 실은 이것은 지어낸 동화가 아니라 실화다. 여기 등장하는 이발사 페터(Meister Peter) 역시 실존 인물이었고, 루터가 동네 이발사를 위해 기도서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루터가 이발사 페터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마이스터 페터씨, 제가 기도하던 방법을 당신에게 기꺼이 전해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중략) 이른 아침 시간과 일을 모두 마친 늦은 저녁마다 기도하길 바랍니다."(WA 38, 358, 2f)

루터는 아이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듯 이발사 페터에게 기도 방법을 전하면서 "아침, 저녁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라"고 권면한다(WA 38, 359). 물론 점심 시간을 의도적으로 뺀 것은 아니다. 기도는 언제든 가능하다. 다만, 루터가 보기에 그 외의 시간들은 "기도하기엔 너무 바쁘고 집중하기 어렵다"고 페터에게 쓰고 있다(WA 38, 358f).

루터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는 자발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설령 기도 시간을 빼먹더라도 수도원에 있을 때처럼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WA.TR 1, Nr., 122).

세 시간 기도?

이제 "루터가 매일 세 시간 기도했다"는 말의 진위 여부를 따져 볼 차례다. 수도원 기도 시간과 다르지만, 루터가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지켰다"는 말은 다른 두 사람의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한 사람은 평생 동료였던 필립 멜란히톤(Phillip Melanchthon)인데, 루터의 장례식에서 설교자로 등단하여 루터를 "매일 시간을 떼어 기도하던 사람"으로 회고했다(Melanchthon, Oratio funere D. Martini Lutheri, CR 11, 731).

또 한 사람은 1530년 루터가 코부르크성(Coburg) 안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만난 파이트 디트리히(Veit Dietrich)이다. 디트리히는 그때 만난 기억을 편지에 담아 멜란히톤에게 전하게 된다. 바로 이 편지에 "세 시간"의 비밀이 담겨 있다(WA.Br 5, 420,15: "디트리히가 멜란히톤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엔 "루터는 매일 성서 연구를 하며 최소 세 시간 이상 기도한다"는 문장이 실제로 등장한다. 주목할 것은 '세 시간 기도'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코부르크성 안에서 루터의 일상 일과였다는 점이다. 물론 루터가 죽을 때까지 그렇게 매일 세 시간씩 기도 생활을 했다는 건 아니다.

여기서 '세 시간'이란 말이 '성서 연구'와 함께 병행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세 시간'이란 말이 세 시간 꼬박 큰 소리 내서 기도한다는 뜻이 아니다. 루터의 기도는 언제나 성서의 말씀과 함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에게 기도란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언제나 "말씀과 함께 하는 영혼의 호흡"이었다(Oratio).

"성서 연구가 곧 기도였고, 기도가 성서 연구의 호흡이었다"는 루터의 기도 생활은 실제로 1540년 <탁상담화>에서 그의 고백으로 확인된다.

"나는 거의 매일 아침 세 시간씩, 오후에 있을 강의 준비로 바빴습니다. 이것으로 내 아침은 준비가 끝났습니다."(WA.TR 4, Nr. 4959)

이것으로 보아 루터에게 기도란, 정해진 시간이나 틀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움직이는 영적 호흡이라고 할 만하다.

종합해 보자. 

루터는 아침, 저녁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도 역시 말씀 연구를 위해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것이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기도의 길이나 총량은 중요하지 않다. 짧을 수도 있고, 더 길 수도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기도는 성서의 말씀을 더 깊이 알아 가고 체험하기 위한 통로였다는 점이다.

그러니 루터가 세 시간 기도했다고 너무 쫄지 마시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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