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복음과상황> 12월호 '2016 이슈 톺아보기 - 교회' 편에 실린 글입니다. -편집자 주
가부장 사회의 남성과 여성 혐오

"낙~태죄를 폐지하라 곧 승리하리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10월 14일 낙태죄 폐지 시위. 참가자들이 찬송가 '마귀들아 싸울지라'를 개사해서 불렀다. CCM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우리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랍니다'로 바꿨다. 여성의 고통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낙태=죄'라고 등식화해 왔던 기독교를 풍자한 것이리라. 여성들의 당당함과 기발함에 감탄했지만, 한편으로 '한국교회 이미지가 이 정도구나' 하는 생각에 뒷맛이 썼다.

2016년 한국 사회는 여성 혐오 문제로 들끓었다. 5월 벌어진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여성 혐오는 이슈로 급부상했다. 당시 강신명 경찰청장은 "대한민국에는 아직 혐오 범죄가 없다"고 말했지만, 한 남성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여성에게 많은 여성이 '나일 수 있었다'고 공감했다. 포스트잇을 붙여 추모하는 문화가 생겼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눌려 있던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한국은 여전히 여성 혐오 사회라고.

여성 혐오 대항 사이트인 메갈리아의 '미러링'에 많은 사람이 불편해했다. '메갈리안'(메갈리아 사이트 이용자)들은 여혐·남초 사이트에 올라간,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글을 그대로 따라 해 남성들에게 돌려주었다. 자신들의 혐오를 똑같이 되돌려받은 남성들은 분노했다. 진보 온라인 커뮤니티라 불리던 곳에서도 메갈리안을 '메갈년', '암퇘지'라고 욕했다. 메갈리아가 만든 티셔츠를 구입하고 소셜미디어에 인증했다는 이유로 한 여성 성우의 목소리가 지워졌다. 이 현상을 비판한 웹툰 작가들의 만화를 보이콧하는 운동이 일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인지 아닌지, 미러링이나 낙태가 옳은지 그른지 따지자는 게 아니다. 사실 나도 여성 문제를 잘 모른다. 그럼에도 대담하게(?) 여성 혐오에 관해 쓰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 담론이 시작됐고 세상은 점점 여성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 있는 교회는 기자의 시각으로 볼 때 여성 문제에 '무방비' 상태다. 이러다가 한국교회는 여성 혐오의 보루 혹은 여성 혐오의 '끝판왕'이 되지 않을까.

강남역 살인 사건 후 포스트잇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문화가 생겼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내가 이해하기로 여성 혐오란, 여성에게 '여성성'이라는 성 역할을 개인 혹은 사회가 강요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 혐오는 남성에게 있어서는 여성 멸시, 여성에게 있어서는 자기혐오의 대명사다"(<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 남성은 생물학적 성을 근거로 여성을 평가하고, 여성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남성이 원하는 여성'이 되지 못해 자기를 혐오하게 되는 현상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자란 한국 남성은 대부분 여성 혐오가 몸에 배어 있다. 당장 "나는 아니다!"라고 하고 싶겠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잘 생각해 보면 여성을 아주 쉽게 성적 대상화하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트와이스 지효는 좀 뚱뚱하지 않아?", "설리 요새 너무 나대네" 이런 대화들이 가장 비근한 예다. 이런 '평가'에서 여성은 고유한 인격체가 아니다. 남성의 시각으로 '규격화'한 외모·성격에서 벗어나면 '여성'이 아니게 된다. 규격화한 외모·성격이란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외모', '(남자) 말을 잘 듣는 성격'이다.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여성들이 길거리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겪는 성희롱과 성추행은 비일비재하다. 남성들은 학창 시절 '바바리맨'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많지만, 여중 여고를 나온 여성들은 현실에서 마주치는 폭력이었다. 미성년 때 성폭행을 당한 여성도 많다. 선생님이든 친척이든 가해자는 언제나 남성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도록 사회화된 것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이동현과 여성 혐오

한국교회는 여성 혐오에서 자유로울까. 지난 9월 한 교계 월간지에서 '목회자 성윤리'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 왔다. '사례' 중심으로 써 달라고 했다. 분석은 누군가 하겠거니 하고 철저히 사례만 모아 썼다. 가해자를 익명으로 표시했는데 ㄱ 목사에서 시작해 ㅎ 목사까지 나왔다. 독자들의 각성을 위해 조금 자극적인 것으로 골라 썼는데도 그 정도다. 그것도 최근 1년간 드러난 사건만 정리했는데도.

교회 내 성폭력은 대부분 남성 목회자가 여성 신도나 부교역자에게 저지른다. 목사라는 영적 지위를 이용하니 더 악질적이다. 하지만 목회자의 성범죄는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성범죄라는 게 물증이 존재하기 어렵고, 교인들도 목회자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은 명명백백하게 밝히려고 하기보다 쉬쉬하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에 있다 보면 교회 내 성폭력에 대한 새로운 제보를 한 달에 두세 개씩 받는다. 하지만 언론사는 수사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의혹을 제기하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드러내기도 어렵지만 처벌은 더 어렵다. 전병욱 목사를 보라. 올해는 전병욱 목사에게 '희년'의 해였다. 그가 소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은 9월 총회에서 전병욱 목사에 대한 재판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이제 공식적으로 그에게 죄를 묻기 어려워졌다. 피해자 여성과의 통화 녹음 파일이 있고 몇몇 피해자 여성의 일관된 진술에도, 전 목사의 성범죄는 의혹으로, 아니 아예 없던 일이 되었다. 전병욱 목사뿐인가.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이 정부의 논리가 목회자 세계에서 왜 이렇게 잘 통하는지….

라이즈업무브먼트 대표였던 이동현 씨는 특별한 케이스다. 그의 범죄를 드러낸 건 <뉴스앤조이>가 맞지만, 사건을 맡았던 취재기자는 모든 공(功)을 피해자 A에게 돌렸다. A는 미성년 때 이 씨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자신이 영적으로 존경했던 사람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피해자의 삶은 망가져 버린다. 하지만 A는 수년간 전문의의 치료를 받으며 그 상처들을 극복해 냈다. 그가 이동현 씨의 범죄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씨는 지금도 청소년 사역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것이다.

A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목회자의 성윤리가 어때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자기가 받은 상처를 극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기처럼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수년간 하나씩 수첩에 써 왔던 귀중한 내용들을 공개했다. 이 글은 사실 <뉴스앤조이>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읽었던 글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글이다. 한국교회가 A에게 큰 빚을 졌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A가 진술한 바에 따르면, 이동현 씨는 하나님이 남성을 더 공격적이고 정복욕이 강하도록 창조했기 때문에, 성적인 욕구가 강하며 실수하기 쉽고 실수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여성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성향으로 창조돼 성적인 죄를 범하면 큰일 난다고 가르쳤다. 이 씨는 '여성이 구타당하면서도 결혼 생활을 참고 남편을 용서했다'는 예화를 들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현숙한 여인이 어떤 것인지 설교했다. 이만큼 지독한 여성 혐오가 있을까. 기독교 신자에게 성경이라는 절대 권위를 왜곡해 말하는 악질적인 '성 역할 강요'다.

이동현이 저런 말을 했다니 악마적이라고 느끼겠지만, 현실은 어떤가. 저런 식의 설교가 한국교회 강단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이동현 사건보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합리화하는 교회 내 남성이 많다는 게 더욱 끔찍하다.

교단 총회와 여성 혐오

"교회를 떠나게 하고 싶으면 총회에 보내면 된다." 매년 9월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의 총회 시즌이 다가오면 기자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 하는 말이다. 총회에 가면 정치 목사·장로들의 기름진 얼굴과 뱃살을 원 없이 볼 수 있고, 온갖 이권이 충돌하는 가운데 이합집산하는 꼴을 눈앞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단기간에 깊은 시험에 들게 하는 곳이 또 있을까. 물론 총회에 참석하는 목사·장로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교단 총회는 교회가 여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총회는 '아재'들의 리그다. 여성 목사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예장합동·고신·합신은 당연히 여성 총대가 0명이다. 여성 목사·장로가 있는 예장통합이나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101회 총회에서 예장통합 여성 총대 비율은 1.6%(24명)이었고, 기장은 7.2%(65명)였다. 예장통합과 기장에서는 각각 여성 총대 비율을 늘려 달라는 헌의가 있었지만, 남성 총대들의 거센 항의로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교단 상태를 보면 여성 목사·장로가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예장합동 총회 때는 매번 총신 여동문회 회원들이 회의장까지 찾아와 유인물을 돌리고 여성 목사 안수에 대해 발언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뚜껑을 열어 보면 5일간 회의 중 '여성 목사 안수'의 ㅇ 자도 나오지 않는다. 4년 전 여성 목사 안수를 허락해 달라는 헌의가 노회를 거쳐 정식으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결과는 기각. 정치부 서기가 안건을 읽는 도중에 "아니오!"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결론을 도출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예장고신은 이번 총회에 '권도사'라는 신박한 용어를 내놓았다. 교단 신학교를 졸업한 여성들에게 권도사 자격을 부여하자는 안건이 올라왔다. "말씀을 가르치고 주관하는 강도보다 한 단계 낮은 단계인 말씀을 권면하는 역할은 여성에게도 허락될 수 있어 권도사 자격을 만들었다." 이게 이유란다. 여성 목사 안수를 허락하지 않는 장로교단에서는 공식적으로 여성에게 강도권(설교권)이 없다. 실제로 교회에서는 여성 전도사가 설교도 많이 하는데 말이다. 여성에게 목사 안수는 줄 수 없고 어떻게든 현실에 끼워 맞추려다 보니 이런 용어까지 등장한다. 이 안건도 총회에서는 부결됐다.

여성들은 총회에서 접대와 식사, 청소를 맡는다. 어떤 교단 총회에서는 남성 총대들이 입장하면 교회 여집사·권사로 보이는 분들이 일렬로 도열해 "안녕하십니까", "환영합니다" 따위의 인사를 한다.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서. 이때까지 그 인사에 예를 갖춰 대응하는 남성 목사·장로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남성들이 회의를 하고 밥 먹으러 나가면, 여성들이 들어와 남성들이 어질러 놓은 회의장을 치운다. 심지어 총회 기간 동안 회의 장소(대부분 대형 교회) 내 여자 화장실을 남자 화장실로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떠난 적이 없었지만 <뉴스앤조이> 기자가 되기 전에는 '총회'라는 조직이 있는지도 몰랐다. 일반 신도들의 인식도 비슷할 것이다. '합동'이 뭐고 '통합'이 뭔지 헷갈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총회는 교단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 교단 소속 교회들이 지향해야 할 큰 방향을 결정하는 곳이다. 현실의 교회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데, 정작 중대한 의사 결정을 하는 곳에서 여성은 접대와 청소를 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런 아이러니를 가진 채 잘도 지금까지 왔다.

사실 이런 모습은 개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100년 넘게 고수한 의식, 남성은 이래야 하고 여성은 저래야 한다는 성 역할 강요, 이게 바로 여성 혐오다. 한국에서 여성 혐오는 '신학'의 영역이다. 여성 목사 안수를 허락하지 않는 교단은 "여성은 교회 안에서 잠잠하라"는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있다. 문자무오설에 대한 맹신인지 기득권에 대한 남성들의 본능적 무리의식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

올해 1월 개봉한 '셜록: 유령 신부'는 간접적으로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역사적 고증이나 극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운동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평이 있으나, 한 가지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다. 셜록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셜록과 왓슨에게 한 말이다.

"이기지 못해. 우리가 지게 돼 있지. 왜냐면 그들이 옳고 우리가 틀렸으니까."

여성 혐오에 맞선 여성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성 역할을 강요하는 무수한 사회적 제도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기득권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때로는 한 걸음 후퇴할 수도 있겠지만, 마침내 여성들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드러내고 그것을 개선할 것이다. 여성 혐오자들이 지게 돼 있다. 왜냐면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인간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옳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사람들이 틀렸으니까.

요즘 문단계·예술계 등에서 여성들이 자신이 당했던 성폭력을 폭로하는 일이 하나의 운동처럼 번지고 있다. 유명 소설가와 시인, 미술가, 사진가들이 줄줄이 공개사과를 하고 대중의 비판을 받고 있는 판이다. 문제는 교회가 이런 사회적 흐름과 논의에 전혀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 목회자가 여성 교인이나 부교역자에게 생각 없이 성적인 농담을 던져도 웃으며 넘기던 시대는 지났다. 여성 문제는 안 그래도 무너지고 있는 한국교회를 폭파할 강력한 한 방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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