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 존 스토트 지음 / 한화룡, 정옥배 옮김 / IVP 펴냄 / 584쪽 / 2만 6,000원

최근 일반학계에서는 '미래 인간'이라는 거대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은 생물학적인 면에서 변화하고 발달해 왔다. 이제 인공지능, 유전자공학, 나노 기술, 로봇 기술 등의 발달로, 미래 인간의 신체는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이보그'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며, 이러한 변화에 인간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때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래의 그리스도인', '미래의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안타깝게도 교회는 세상이나 현실 문제들과 분리된 개교회 중심적인 전도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종교 활동 중심의 신앙 형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 이 상태로는 매우 위축되고 노인들의 전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상이냐 현실이냐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12년간 방황했던 플라톤은 다시 그리스로 돌아와 아테네 학당을 세웠다. 당시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는 수많은 청년을 자석처럼 끌어모았다. 그중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 16세기 초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1509~1510)은 그리스철학과 관련한 모든 인물을 묘사한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철학 전체를 그림 한 장으로 조망하고 있다.

라파엘로 그림을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는 그림의 중심에 있다. 그림 중심에는 소크라테스가 아닌,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철학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들이 가리키는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림을 보면, 플라톤의 손끝은 하늘을 향하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끝은 땅을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의 손은 이들의 철학의 대상과 중심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은 '이상',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실재)'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철학의 모든 중심적인 문제는 이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 연결을 위해 무엇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철학이 나타났다.

'이중적 귀 기울임'의 중요성

서양철학의 뿌리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면, 기독교의 뿌리가 예수 그리스도다. 유대교를 배제한 기독교 역사는 약 2,000년 정도다. 그 출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은 글을 남기지 않으셨다. 사도들이 남긴 글뿐이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마다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양하게 변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성경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성경 해석 방법은 다양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대목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기독교가 이상적 하나님, 내세적 하나님, 초월적 하나님을 넘어 인간 역사와 현실 안에서 활동하시는 현세적 하나님나라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는 종교 안에 갇혀서는 안 되며, 세상 속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존 스토트는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서 예수님의 역사성과 현실성을 다루려 한다. 성경을 해석할 때 앤서니 티슬턴의 역사와 문화적 간격에서 발생하는 '두 지평' 관점에서 복음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제시한다. 존 스토트는 성경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그 시대와 문화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과 현 시대와 문화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이중적 귀 기울임'의 필요성을 피력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이중적 귀 기울임'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존 스토트는 "사람들이 복음을 거짓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그것에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복음은 현실적 공감을 갖게 하는 시대성과 현실성을 반영해야 한다.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

본서는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주제는 '복음'.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지금까지 이것만 강조되어 왔다. 복음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복음의 대상은 우리 인간과 이 세상이다. 안타깝게도 본서의 저자는 복음의 대상에 대해 '인간'만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요한복음 3장 16절이 밝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만이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 또한 사랑하신다. 복음의 대상에 '세상'을 포함시켜야 한다.

저자는 복음의 중심과 대상을 함께 봄으로 복음의 역사성과 현실성을 풀어 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그분의 행하심, 십자가와 죽으심, 부활 등이 인간에게 어떤 실제적인 의미를 주는지 알아야 한다. 성경과 예수님에 대한 지식에서 멈추지 않고 경험으로 이어져야 한다. 주님과 이 세상 현실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을 분별하여 주님이 주신 복음의 자유와 책임을 누리고 감당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것들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철저히 헌신해야 할 부분을 6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2부는 '제자'다. 저자는 제자도 핵심을 '사랑'에 맞춘다. 제자를 '먼저 귀 기울이는 자'로 묘사한다.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 세상에 귀 기울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같은 귀 기울임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역이나 목적의 완성이 아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3부는 '성경'이다. 존 스토트는 말씀의 중요성과 중심성, 성경을 해석할 때 교리, 윤리, 문화, 사회의 간격을 용인하고 두 지평의 융합을 꾀하되 진리를 변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문화적 차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4부는 '교회'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외딴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존 스토트는 교회가 '세상을 향한 추구'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초월성 추구, 의미 추구, 공동체 추구를 통해 세상이 갈망하지만 세상의 특성과 구조 때문에 도달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치유와 대안적 존재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존 스토트는 다양한 형태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이 안고 있는 시대와 현실적 문제에 대해 복음을 제시하는 지속적인 갱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세상에서 실족하거나 낙오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나타낼 수 있도록 중보하신다. 존 스토트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교회는 쉬지 않고 진리, 거룩, 선교, 연합으로 갱신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5부는 '세상'이다. 그리스도 유일성을 주장하는 기독교는 다양성을 강조하는 다원주의 현실을 맞고 있다. 이 현실 가운데 기독교는 세상에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 다원주의라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유일한 그리스도를 전할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기독교가 세상의 다양성에 먼저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문화와 견해에 대해 적절하게 메시지를 제시하고 증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기독교는 급변하고 매우 다양하며, 복잡한 문제가 넘치는 현실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자기 만족을 추구하거나 고립된 상태에 머물러서도 안 되며, 세상을 향한 선교를 감당해야 한다. 단순한 종교적 선교에 머무는 방식은 더 이상 이 시대에서 통하지 않는다. 존 스토트는 복음 전도를 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 세상과 함께하는 동반적인 총체적 선교론을 제시한다. 성령의 은혜와 역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가운데 있다는 지적이다.

교회 부흥이
하나님나라의 확장인가

초대교회부터 4세기까지의 기독교는 로마에게서 박해를 받았다. 때문에 영지주의적이고 내세 지향적이었다. 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된 이후부터 13세기까지, 세속적 기독교와 영지주의적 기독교가 양립했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등장으로 이성적 기독교가 정치적 주류로 자리 잡았지만, 수도원주의도 여전히 양립하고 있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구교와 신교가 분리됐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과거와 같이 박해받고 있지는 않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세상이 내놓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 앞에 위축되어 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종교라는 카타콤 속에 숨어 버렸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오늘날 전도 대상은 더 이상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 고민하고 애쓰지만, 신자가 아닌 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고민하는 목회자와 교회는 거의 없다. 이 현상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본서가 말하는 것처럼, 복음의 핵심 가치를 잃어버리고 하나님나라가 아닌 교회의 외적 성장과 재정이 복음의 핵심 가치로 둔갑한 것은 아닐까.

'교회 부흥이 과연 하나님나라의 확장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확장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목회자와 성도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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