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빨갱이 아닌가', '돈 귀신 아닌가'. 누군가는 불편하게 쳐다봤을지 모르는 사람들. 이들은 오늘도 따뜻한 집과 교회 대신 추운 거리에 있다. 억울한 사정을 신원해 달라, 수년째 싸우는 사람들. 어쩌면 우리가 불편해했을지 모르는 이들도 성탄절을 맞았다.

2012년부터 크리스마스이브 때마다 이들을 찾아가는 모임이 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새벽송'. 시작한 이래로 재능교육, 쌍용자동차 등 여러 기업의 문제가 해결됐지만 아직 가야 할 곳은 많다. 올해도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고난함께)과 평화교회연구소,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주관으로 이웃들을 찾았다. 12월 24일, 신학생, 교회 청년 20여 명과 함께 현장을 돌아봤다.

"우리가 원하는 건 진솔한 사과와 책임 있는 협상"

처음으로 찾은 곳은 충남 아산 갑을오토텍이다. 갑을오토텍은 현대·기아차에 들어가는 에어컨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다. 과거 에어컨과 김치냉장고를 만드는 만도 계열사였다. 아산 공장이 회사를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회사가 경찰과 특전사 출신을 직원으로 채용해 '제2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조를 와해시키려 하면서 기나긴 분규의 터널로 들어섰다. 대표이사가 노동법 위반으로 법정 구속되고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등 우여곡절이 많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갑을오토텍 노조 390명은 7월부터 회사를 지키고 있다. 170일째다. 멈춘 기계 사이로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먹고 잔다. 하나의 작은 마을이 되어 버리다 보니 하루 생활비만 해도 만만치 않다. 손찬희 사무장은 임금 못 받은 지 5개월이 넘어갔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손 사무장은 "임금 30만 원 더 받으려고 싸우는 사람들로 언론에 비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노조 파괴 없이 제대로 일해 보고 싶은 마음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로 올라와 양재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 중인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만났다. 유성기업 노동자들 또한 '노조 파괴' 피해자다. 갑을오토텍이 유성기업 사례를 벤치마킹했다고 할 정도다. 현장에서 만난 노조원들은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노무 법인 창조컨설팅과 유성기업, 현대차가 모의한 증거가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김앤장을 위시한 대형 로펌이 가세해 싸움은 지난하다. 검사는 CCTV를 가린 죄로 노조원에게 1년 6개월을 구형했고, 노조 파괴에 앞장선 유성기업 대표에게는 1년을 구형했다고 했다.

"쌍용자동차 사건 보니까 알겠더라. 거기서 싸우다 29명 돌아가셨다. 우리도 충남도에서 심리 상태 파악해 보니 노조원 90%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40%는 고위험군이었다. 한광호 열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청문회, 국정감사에서 사측의 비리를 입증할 자료들이 계속 나왔지만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2의 죽음이 생긴다. 농약 먹은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막아야 하지 않겠나."

삼성 본관 앞에는 여전히 반올림 농성장이 있다.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목숨을 잃고 장애를 얻었지만 사과 한마디 못 듣는 사람들의 비닐 천막이다. 농성장에는 삼성 LCD에서 근무하다 뇌종양으로 장애를 얻은 한혜경 씨도 있었다. 한혜경 씨 어머니는 "삼성에게 바라는 건 재발 방지다. 보상해 준다고 몸이 낫느냐. 우리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게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올림에서 함께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최근 드러났듯 이재용은 반올림 피해자들에게 사과는 안 하고 500만 원 주겠다고 하면서, 정유라에게는 10억 원이 넘는 말 주고 수백억 원을 지원했다"며 격분했다. 삼성그룹에 출입하는 기자만 수백 명이지만 농성장에 찾아온 기자는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이 노무사는 "우리는 진심 어린 사과와 배제 없는 보상, 재발 방지 대책 세 가지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광화문역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과 세월호 분향소가 있다. 1,586일째 농성 중인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장을 먼저 찾았다. 최근 투쟁에 앞장서던 또 한 명의 장애인 활동가가 세상을 떠났다. 13번째다. 광화문역 지하, 영정 사진이 하나씩 늘어 간다.

이상수 활동가는 "장애인을 가축처럼 등급 매기고 낙인찍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중증은 1~3급, 경증은 4~6등급으로 나눠 복지 서비스를 차별 제공한다. 경증 장애인도 중증 장애인이 받는 복지 서비스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썰렁하던 예년에 비해 서명하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현장을 지키는 박승하 활동가는 최근 촛불 시위의 여파인지,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시민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100만 명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고, 현재 15만 명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서명에 동참했다.

세월호 분향소 앞에서 마지막 새벽송이 열렸다. 세월호 분향소도 촛불 시위를 마치고 한 번씩 들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래서인지 유가족들 표정도 조금은 밝았다. 세월호 희생자 창현 어머니 최순화 씨는 "시민들이 많이 관심 가져 주셔서, 이번 성탄절이 제일 기억에 남는 성탄절인 것 같다.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최순화 씨는 "교회 안에 빛은 많지만, 원하지 않는 빛들이 많다. 하나님의 빛은 줄어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이 든 초가 참빛이 되어서, 거리에 나온 어려운 사람들과 억울한 사람들을 비춰 달라"고 말했다.

창현 아버지 이남석 씨는 "처음에는 세월호 가족들이 하나님 원망도 많이 하고, 계시기는 한 건지 자문도 많이 했다. 큰 교회 목사들은 우리에게 많은 아픔 주었다. 가족들이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럼에도 아픔을 치유해 주는 분들이 믿음의 사람들 아닌가 생각한다. 끝까지 함께해 주고 울어 주셨으면 좋겠다. 가족들이 많이 교회를 떠났지만 하나님을 떠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부부는 다른 가족들과 성탄절을 맞으러 안산으로 내려갔다.

 

"힘들 분들 오히려 웃으며 반기는 모습에 감동"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현장을 걱정했다. 갑을오토텍 사람들은 유성기업을, 유성기업 사람들은 반올림을 걱정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비닐이 펄럭거리고 찬바람이 들어오는 길거리에서, 쥐죽은 듯 적막하게 멈춰 선 기계 사이에서, 사람들은 캐롤을 부르고 선물을 건넸다. 노동자들은 잊지 않고 찾아와 줘서 고맙다며 웃었다. 새벽송에 참가한 사람들은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보며 오히려 감동받고,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최근 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이혜지 씨(다드림교회 청년부)는 "책에서 본 문자적 지식이 입체적으로, 삶으로 살아지는 걸 봤다. 싸우고 살아 내는 분들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노조를 파괴하는 노무사도 있고, 노조와 함께 싸우는 노무사도 있는 양면성을 보았다. 크리스천으로,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였다"라고 말했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 중인 진지한 씨(약동하는서신인)는 "단순히 가난한 자, 억눌린 자를 위해 목회한다고 추상적으로 고백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현장에 가서 문제를 보고 그들의 아픔을 봤을 때, 여기가 목회자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했다. 농성장에 있는 사람들이 양이다. 예수님이 오셨던 의미를 생각하면, 사역자가 있어야 할 자리는 거리이자 광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광수 목사(고난함께 사무총장)는 "평소에는 이런 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교회 청년들이 함께 왔다. 평소 관심 없던 이들이 이웃을 돌아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 목사는 더디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 인권 감수성과 노동 의식이 점점 확장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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