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춥다는 동지. 서울역 한복판에 제사상이 차려졌다.

제사상 아래에는 위패 70개와 국화가 줄지어 놓였다. 고인의 이름·생년월일·사망 날짜·출생지·사망 장소가 적혀 있다. '무명남', '무명녀'라고 쓴 위패가 눈에 띈다. 1920년대생부터 1970년대생까지 태어난 해는 다양하지만 사망 연도는 모두 2016년이다. 주로 노상·쪽방·고시원·옥탑·병원에서 사망했다.

위패 주인들은 '홈리스'(homeless)다. 길 위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만 홈리스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길거리 노숙인 포함해 쪽방·고시원·여관·비닐하우스·찜질방·PC방 등 불안정한 주거지에서 살고 있는 주거 취약 계층 모두가 홈리스다. 한국 홈리스는 약 22만 명으로 추산된다.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 12월 21일 서울역 광장에 2016년 사망한 홈리스를 위한 제사상을 차렸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16년간 홈리스 문제 고발

제사상은 시민단체 40여 곳이 모여 만든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 만들었다. 이들은 2001년부터 16년째 동짓날이 있는 주를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홈리스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공동 기획단은 이번에 장례·주거·노동 문제의 허점을 중점적으로 짚었다.

홈리스 중에는 사망해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이 시신을 수습하지 않겠다고 '신체 포기 각서'를 쓰거나 장례 치를 가족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홈리스 중에는 사망신고를 해 줄 사람이 없어 15년 전 사망했지만 생존자로 기록돼 있는 경우도 있다.

장례 비용도 문제다. 기초 생활 수급자의 경우 정부로부터 장례비 75만 원을 지원받는다. 실제 장례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적어도 3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기초 생활 수급자로 지정되지 않은 홈리스는 장례비 지원이 없어 더 어렵다. 장례 절차 없이 바로 화장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원 단체들은 홈리스도 사용할 수 있는 공영 장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자체에 요구하고 있다.

주거 문제도 있다. 서울에는 쪽방촌 5곳이 남아 있다. 영등포동·동자동·돈의동·창신동·봉래동이다. 쪽방은 대개 1평~1.5평, 가로·세로 1.8m가량이다. 성인 한 명이 누우면 꽉 찬다. 쪽방 중 비가 새거나 난방시설이 없는 곳, 창문 없는 곳도 많다. 취사 시설도 없어 방 안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조리하고 공동 화장실에서 조리 기구를 닦는다.

열악한 환경에 비하면 비용도 그다지 싼 게 아니다. 보통 쪽방은 일세 8,000원으로 계산한다. 한 달 약 24만 원. 홈리스 중 다달이 비용을 내지 못해 쪽방에서 쫓겨나거나, 건물주가 공사를 이유로 홈리스를 강제 퇴거시키는 경우도 있다. 지원 단체들은 지자체에 1.5평 남짓한 쪽방 대신 공공 임대주택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홈리스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다. 윷놀이 판에는 '강제 퇴거', '만성질환', '수급 탈락' 등이 적혀 있다. 이 단어는 홈리스들이 겪는 일들을 드러낸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다?

노숙인 일자리 사업은 두 종류다. '일자리 갖기 사업'과 '특별 자활 근로'. 매해 일자리 갖기 사업은 400명, 특별 자활 근로는 600명을 모집한다. 홈리스 지원 단체들은 "홈리스 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라고 비판한다. 게다가 2017년에는 모집 인원이 줄어들 예정이다. 일자리 갖기 사업은 180명, 특별 자활 근로는 50명 줄어든다.

지원 단체들은 홈리스 일자리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역에서 만난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사람들은 홈리스가 게으르거나 나태해서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아니다. 이들이 노동할 수 있는 일자리 자체가 적다. 현재 정부가 진행 중인 일자리도 처우가 좋지 않다. 특별 자활 근로 경우, 50만 원을 월급으로 주면서 총 6개월간 일한다. 300만 원으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홈리스가 나태해서 일을 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을 위한 일자리 자체가 많지 않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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