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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바 기도회와 황교안 요셉 총리론

한국교회의 '이미테이션'…현실 정치가와 성경 인물 엮는 잘못 경계해야

황준배   기사승인 2016.12.24  19: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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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단 2:21)

소셜 미디어상에서 어떤 크리스천이 요셉의 국가정책에 대해서, '경제 정의에 위배되는 정책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상상이 참으로 흥미로웠고 반가웠다. 왜냐하면 나도 신학을 연구하면서 성경 진리의 세상 속에서의 적용과 검증에 대해 수없이 많은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성경적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문제이다. 그래서 개인 네이버 카페(준의 카리스마적 리더십)를 만들어 다양한 자료를 정리해 두기도 했다. 이러한 동기로 2017년 1월에는 성경적 세계관에 관한 책을 기획 출간할 예정이다.

국가적으로도 현재의 정치적 탄핵 국면과 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크리스천의 현실을 대하는 관점이나 태도는 중요한 선택과 판단을 요구받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독교계의 김장환, 김삼환 목사에게 "대형 교회로 하여금 본인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어 달라"고 부탁했고, 한 대형 교회에서 몇 차에 걸쳐서 열기로 했다는 CBS TV 뉴스 특종 보도가 있었다.

이와 유사한 도에 지나친 행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서울역에서의 성경 '미스바 기도회'를 빙자한 정치 집회다. 이 이미테이션 '기도회'를 살펴보면 참 가관이다. 성경의 사무엘 선지자가 국가적 위기와 적의 침략 시 행했던 기도회는 이런 허접한 기도회가 아니었다. 이들이 부디 성경적 진리의 원칙을 지키고 기독교인의 품위와 품격을 갖추길 권면한다.

구약성경 "미스바 기도회"는 국가와 종교 지도자들의 회개와 통회 자복과 금식, 영적 갱신과 민족 단일화 운동이었다. 그 주적이나 대상은 적군이었다. 특정 진영을 매도하고 폄훼하거나 적대적인 이슈로 기도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전 백성이 참여한 국가적 기도회였다.

어떤 크리스천은 황교안 현 총리(대통령권한대행)에 대해 우호적인 관점이나 시각을 표현하기도 한다. 문자나 카톡으로 극성스럽게 홍보에 열을 올리는 등 지나친 경우도 있다. 대부분 보수적인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보인다. 나는 진영 논리나 개인적 정치관을 떠나 성경적인 리더십의 기준에서 황 총리는 대단히 위험한 리더라 평가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황 총리는 요셉이나 다니엘과 거의 무관한 리더십이다. 요셉과 다니엘은 외국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하나님의 주권적 구속사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한국의 현실과 그 배경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들은 특권이나 정권에 충성한 부역자가 아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었고, 백성을 사랑하고 위기의 정치 국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정치인이었다.

오늘날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신학 공부와 새벽 기도 열심히 하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성경 어디에 나와 있는가. 종교 전문가로서 종교 활동을 열심히 했는지는 모르나, 신앙이 평가받는 것은 삶의 자리에서다. 위기나 치열한 현장에서 검증받는 것이다.

요셉과 다니엘의 정치 리더십

성경의 요셉 총리나 다니엘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어서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이 아니다. 다니엘은 정적은 물론이고 핵심 정권 담당자로부터도 어떤 틈, 어떤 허물, 어떤 그릇됨도 없는, 흠잡을 만한 게 없는 사람이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단 6:4)

다니엘은 자신이 포로로 잡혀갔던 나라 바벨론에서 총리로 재직 시 국가가 두 번이나 바뀌었고, 왕이 네 번이나 교체되었지만 그 직책을 감당하고 수행했다. 네 명의 왕은 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였다. 일회용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서 탁월한 정치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물론 중요한 힘의 근원, 제1의 힘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반면 황 총리에 대해서는 언론에 이미 보도가 된 바와 같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정신과 그 삶의 행적이나 실천과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대다수 국민은 단순한 정권의 부역자로 본다. 과거 공안 통치의 실무자, 특권과 의전에 치중해 정치권과 일반 국민에게 거부감을 갖게 한 점도 올바른 신앙과 거리가 멀다. 본인 스스로가 대통령에 대한 권력의지가 없다고 공표했기에 사실상 그 문제에 대해 별 의미도 없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최전방 군부대를 방문해, "군인들이 비상 상황으로 인해서 퇴근도 제대로 못하고 잠도 못 잔다"고 말했다. 군인이 항상 주둔지에 근무하고, 특히 전방에서는 야간 경계와 근무에 전력한다는 기본도 모르는 황당한 발언이다.

개인적으로 황 총리가 남은 임기 동안 야당과 함께, 국민 관점에서 잘못된 모든 정책을 백지화하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물러나길 바란다. 그리고 다음 대선에 국민의 뜻과 의지를 받들어 정권 교체, 국가적 격변기와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수습하는 책임성, 이것이 그나마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속아 왔던가. 단순히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정치 리더를 지지하고 기대했으나 성경적 정치는 고사하고 국가적으로 얼마나 많은 지탄 대상이 되었는가. 전도에 걸림돌이 될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 공동체에 수치를 안겨 주었고, 얼마나 덕을 가렸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노예해방을 이끌었고 '영국의 양심'이라 불리었던 월리엄 윌버포스 같은 정치인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는 게 작금의 정치 현실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합 3:13)

현재도 TV에 나오는, 크리스천임을 표방한 이화여대 총장, 이정현 새누리당 전 대표, 정치인들이나 주변 세력을 보자. 그들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이나 자기희생, 사랑의 모습이 드러나는지. 도무지 신앙적 원칙이나 인격, 거룩한 성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대체 어떤 교회의 어떤 목사에게 저러한 신앙 교육을 받았는지 의문스럽고 한심스러울 정도다. 이들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는가. 자신의 입신출세나 권력욕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자에 대한 충성심만 드러낸 게 아닌가.

이들에게서 성경이 말하는 요셉이나 다니엘의 지혜나 거룩한 성품이 드러났는가? 사람들이 이들의 탁월한 리더십에 존경을 표하거나 감동되었는가? 비단 기독교뿐만이 아니다. 이들 범죄 혐의자 중에 모든 종교인이 똑같다. 한마디로 종교의 위기가 아닌 종교적 가치의 종말이다. 신앙은 개인의 양심과 도덕, 선의 지향으로서 법질서에 우선하는 가치이며 행동 양식이기 때문이다.

칼뱅은 당시 제네바 시의회를 성경적 가치로 컨트롤했다. 오늘날 현실에서 이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정치 질서인가. 지역사회의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이나 중앙 정치 리더들이 목회자 말에 따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큐티나 성경 공부, 제자 훈련, 수많은 신학 서적이나 경건 서적, 수천 편의 설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마저 들 정도이다.

목사들부터 모범적으로 큰 문제점을 드러냈지 않는가.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권에 대해 공적인 장소나 설교 강단에서 온갖 아첨과 아부를 떨던 사람들 태도가 돌변했다. "그렇게 될 줄 몰랐다." 기회주의자적인 태도로 "박근혜 대통령이 빨리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한다"라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거짓 설교자, 자칭 선지자도 탄핵 대상이 아닌가.

국가적 위기와 '요셉 프로젝트'

성경에는 요셉이 이방 국가인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누명을 쓰고, 감옥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국가의 총리가 되는 인생 드라마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실패도, 실수도 결국에는 선하게 사용하신다. 요셉의 삶을 보더라도 인생의 고비마다, 넘어질 때마다 인간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반전이 있고 소망이 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 39:2)

형통이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지금까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처해 있는지가 아니다. 이것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지가 중요한 영적 기준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자가 형통한 자다. 하나님 기준에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끌어 가시고 '함께'하시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나는 과연 형통한 자인가?

위기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다. '요셉 프로젝트'가 있다. 국가 경제 위기관리를 위한 요셉의 리더십은 크리스천 리더들에게 중요한 지혜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고 하셨다. 크리스천은 아브라함의 축복이 흐르는 사람들이다.

요셉이 형들의 질투와 시기에 의해 노예로 팔려 간 나이가 17세였다. 요셉은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에게서 종 생활을 한다. 인생 밑바닥을 체험하게 된다. 보디발 집에서 가정 총무로 일하게 되고, 유능함을 인정받는다.

문제는 보디발 아내의 유혹이었다. 요셉은 이 유혹을 뿌리치지만 역으로 성폭행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이 감옥에서 왕의 핵심 측근들을 만난다. 그리고 우연히 그들의 꿈을 풀이해 주게 되고, 그들은 요셉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다. 나중에 요셉의 꿈 해석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가 검증되었다. 그러나 요셉은 잊힌 존재가 되었다. 2년의 세월이 흐른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말이 3번 반복해서 나온다. 요셉의 형편과 처지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표현이다. 하지만 인간적 한계의 끝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남은 건 오직 승리뿐이다.

애굽의 바로 왕이 어느 날 꿈을 꾸게 된다. 바로는 애굽에 이름난 박수와 술객과 박사들을 소집하였으나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은 2년 전 감옥에서 만난 히브리 소년, 요셉이 생각났다. 그래서 왕에게 보고한 후에 그를 찾게 된다.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이 꾼 꿈, 두 소의 꿈과 두 이삭의 꿈을 알려 주었다. 요셉은 꿈의 해석을 하게 된다. 해석은 이렇다. 요셉은 바로의 꿈에 대해 일곱 마리의 살진 암소와 충실한 일곱 이삭은 풍년이고, 7마리의 파리한 다른 암소와 가는 일곱 이삭은 흉년을 말한다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 왕에게 보이신 것으로, 7년 풍년 후에 7년 흉년이 드는 것을 의미하니 지혜롭고 명철한 자를 세워 7년간 풍년 때에 곡식을 각처에 모아 저장하게 하고, 7년 흉년을 예비하게 하시면 위기를 잘 넘길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요셉의 지혜를 인정하며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게 하였다. 17세에 노예로, 그리고 13년이 지난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됐다. 국가의 법에 따르면, 관직에 나아갈 최소 연령이 30세 이상이었다. 결국 요셉은 꿈과 해석대로 국가의 경제 위기에서 지혜로 극복해 국민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성경에서 배우는 위기 경영

요셉의 스토리는 위기 경영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 요셉은 풍년이 들던 7년간에 저장고를 지어 곡식을 모은다. 그리고 7년간 흉년이 들었을 때 저장고에 있는 쌀들을 팔아 백성과 귀족의 땅과 가축을 사들여 국가에 귀속시킨다.

곡식을 밑천으로 두고 이뤄진 대외무역과 국내 행정은 바로 왕에게 막대한 재정 수입을 안겨 주었다. 토지법을 세워 백성에게 땅을 나누어 준 뒤 추수한 것의 20%를 세금으로 내게 했다. 그 나머지로 백성의 생계를 유지하도록 했다.

이 정책 기저에는 백성의 토지를 양식과 바꾸어 곡식을 허비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도 다분하다. 7년 풍년 이후 7년 기근의 미래는 요셉만 알기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오늘날과 같이 언론이나 통신, 국가의 통제가 전 백성에 미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 대표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탁월한 경영에서 디테일을 강조한다.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손꼽히는 리더들은 비전과 세부적인 것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고 세부사항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에 편집광적으로 매달린다."

요셉은 7년의 대풍년과 7년의 대기근을 잘 관리하는 경제정책을 펴 성공적으로 이를 수행한다. 경제공황을 거치면서 왕권 강화와 토지공개념을 통해 국가재정의 기틀을 세웠다. 한편으로 요셉의 경제정책을 철저하게 애굽 왕 바로와 기득권층의 이해에 부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당시 제국주의 정치 질서에서는 국민을 위한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7년의 경제 위기에서 구했다(창 41:54). 나아가 당시 세계적인 기근의 위기로부터 세상을 구했다(창 41:57).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을 기근으로부터 구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했다. 그의 인품과 비범함이 돋보인다.

요셉은 그의 인생에서 모든 시험과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 형통한 삶이나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약속의 성취였다. 하나님이 함께하신 형통한 자이기에 총리가 되었다. 국가의 경제 위기에서 백성을 구했고,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드러냈다.

노예 생활 중 보디발 집에서 가정 총무로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경제를 배우게 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감옥 생활에서는 정치인들에게서 정치를 배웠다. 요셉은 자기에게 처했던 모든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신앙적 프로그램이었고, 그곳에 축복이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경제 권력과 정치권력을 부여해,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막연한 비전이 아니라, 확실한 언약을 의지하고 붙잡았기에 요셉은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탁월한 리더십 능력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요셉의 혁신적인 정책은 현대 경제학과도 일치한다. 경제 석학이었던 요셉 슘페터는 <경제 발전의 이론>에서 혁신(Innovation)을 강조했다. 혁신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 믿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 49:22)

황준배 / <카리스마적 리더십>, <통일과 크리스천 리더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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