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의 치유인 구원> / 하워드 A. 스나이더·조엘 스캔드렛 지음 / 권오훈·권지혜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 416쪽 / 1만 8,000원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있을까? 필자는 무기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필자의 수준에서 추측컨대, '생화학 무기'가 핵무기 만큼 무서운 무기라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직접적인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공격은 아니라 할지라도 공기의 심각한 오염, 물의 심각한 오염 가운데 있다. 의술이 발달해 개인 생명은 연장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의 잘못된 주권 의식과 탐욕적 개발은 지구 전체 기후와 환경의 변화를 불러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여기에 견주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세상(정치·사회·문화·종교·교육·사상 등)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병에 걸려 있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과연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후손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분리적 개혁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나'라는 부분도 우리가 자성하면서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분리적 개혁으로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세대들은 적어도 당시 정치·사회·문화·교육·종교적 부패 등에 침묵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거칠게 목소리를 냈기에 분리 개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종교개혁의 후손인 우리는 지금 종교적인 부분에만 집착하면서 그 나머지 부분(이 땅 위에서의 삶)에 대해 엄격하게 선을 긋고 분리시키고 있다.

이것이 '만인 제사장설'과 '직업 소명설'을 주장하는 개혁 취지와 일치하는가? 우리가 종교 제의에 집착하는 동안 세상은 하나님과 멀어져 갔다. 아이들과 젊은이가 교회를 떠난다. 교회에 출석하는 젊은이에게조차 예수 그리스도는 삶의 중심이 아니라 부분적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하나님은 만족하실까? 그들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예전에 봉사하고, 헌금하고 있다고 안심할 일인가. 과연 교회는 그 시대 사회·문화·정치·교육·자연 등에 대한 책임은 없는 것인가.

인간만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은 '영혼'에만 국한된 것일까? 적어도 지금 우리가 시인해야 할 것은 '영혼' 구원의 강조로, '몸'과 '다른 생명체', '자연환경' 등을 소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몸이 없는 인간, 다른 생명체는 없고 인간만 있는 세상, 자연환경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는 인간. 과연 존재할 수나 있을까. '영혼'만 소중한 것일까? 영혼만 잘되면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잘된다는 말은 사실인가?

성경에는 두 번의 심판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 심판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금하신 심판이었다. 최초의 심판은 환경의 박탈과 생명의 제한이었다. 생명과 기쁨의 땅을 상실한 것이다. 두 번째 심판은 노아 시대 홍수다. 그때도 역시 환경 가운데 재앙이 내려졌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른 동물들'과, '곤충들'을 방주에 태우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예수님께서도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이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만을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잘 돌보라고 우리를 창조하셨다.

영혼 구원이 중요한 이유

영혼 구원은 왜 중요한가? (구원에 대한 신학적 정의는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치유와 회복'의 관점에서 구원을 말하고자 한다.) 영혼 구원이 중요한 것은 타락한 영혼의 모습이 파괴적이고 재앙적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영혼은 바벨탑 이야기처럼 스스로 하나님의 왕좌에 오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주인 행세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타락한 영혼이 세상의 주인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든 만물을 사랑하고 돌보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충족하려고 다른 피조물은 욕망과 욕구 충족의 도구로 전락시킨다.

건강을 위해 멸종 위기 동물과 식물을 마구잡이로 살육하고, 오락과 취미를 위해 멸종 위기 동물을 사냥한다. 정경유착, 무분별한 자연 훼손, 부정 거래와 청탁, 다른 사람 생명을 무자비하게 제거하기까지 한다. 모든 자연, 생명체,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존중하고 섬기는 게 아니라 이용과 착취와 도구로 삼는다. 위기 모면을 위해 온갖 거짓과 술수를 일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교회 빠지지 않고 헌금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한다고, 복음과 무슨 연관을 지을 수 있을까?

그 무엇보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영혼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 영혼과 몸의 분리, 자아와 타인의 분리, 인류와 다른 피조물의 분리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피조물의 치유 관점에서 푸는 구원

본서는 구원을 '피조물의 치유' 관점에서 풀어 간다. 1부에서는 기독교 신학의 역사 과정 중 "하나님과 땅 사이의 이혼"이라고 표현하면서 구원에 대한 도를 넘은 영성화(신플라톤주의)에 주목한다.

2부는 진단적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는 사악하고 치명적인 도덕적 질병을 겪는다. 여기서는 죄의 본질을 다루고, 복음이 완벽한 치유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어떻게 죄의 질병을 치유하는 약인지, 어떻게 모든 피조물을 치유하는지 보여 준다. 생명의 순환적 관점의 필요성도 설명한다.

3부는 치유하는 하나님의 선교를 검토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피조물의 치유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남자와 여자로부터 시작해 성경이 약속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전한 성취를 선교적 치유라고 보면서 하나님나라 의미도 함께 살핀다.

4부는 치유 공동체-교회, 그리스도의 몸을 서술한다. 상호 관련된 하늘과 땅의 모든 차원에 있는 치유를 구체화하고 확장시킨다. 땅에 있는 하나님의 치유 공동체로서 교회는 어떤 모습일지도, 언약의 성취로서 '새 창조' 개념도 그려 본다.

포괄적인 생태학적 접근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첫째 질병으로서 죄와 치유로서 구원에 대한 성경적인 자료를 채굴해 낸다. 둘째 분리의 간극을 극복하고 양극성에 다리를 놓고, 기독교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에 종종 제약을 가하는 맹점을 치유하려고 노력한다. 의도적으로, 지속적으로 시도하면서 포괄적인 생태학적 접근에 착수한다.

셋째 오늘날 교회가 전적으로 신실하고 건강하려면, 이해가 필요한 궤도를 추적하며 역사를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넷째 땅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성경적으로 복음은 하나님 백성과 하나님의 땅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종종 기독교 신학에서 땅은 쉽게 사라지거나 분해되고, 제자도에서 대개 무시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사 62:4)고 예언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전인적 신앙생활, 전인적 선교적 교회를 꿈꾸는 분, 신학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는 분, 다양한 NGO 활동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찾고자 하는 분, 만인 제사장 소명을 성취하고자 하는 분에게 이 책이 소중한 발판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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