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청운치안센터에서 시위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나간다. 매주 백만 시민이 광화문에 모이는 현상이 경이롭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 연달아 벌어진다.

백만 촛불이 운집한 모습은 일상 풍경이 됐다. 토요일 오후 세 시가 지나면 광화문역, 경복궁역 일대 차도는 인도로 바뀐다. 시내를 나갈 땐 버스 대신 지하철을 이용하는 습관도 생겼다.

촛불 집회를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촛불은 크게 줄지 않았다. 더 늘어나기도 한다. 12월 3일 6차 범국민 행동 때는 230만 명 가까이 모였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2014년 4월 이후 광화문광장 한쪽 구석에 맴돌던 목소리는 이제 백만 시민의 구령이 되어 도시를 점령했다. 토요일 밤이 되면 서울광장부터 청와대 앞 청운치안센터까지 결집한 시민들의 함성이 잠든 도시를 깨운다.

12월 3일. 세월호 유가족은 이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오후 3시 30분,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행진대가 청와대를 향해 출발했다. 선두에 세월호 유가족이 섰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 얼굴이 그려진 천을 목에 둘러멨다. 시민 수십만 명이 그 뒤를 따랐다.

행진대가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청운치안센터 앞까지 이동하는 데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1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세월호 유가족은 (참사가 일어난 지) 963일 만에 왔다. 그해 여름,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하기 위해 유가족은 청와대를 찾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경찰과 차벽뿐이었다.

오후 5시 30분. 집회 신고 시간이 지났다. 한 시간이 더 지나자,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경찰이 마이크를 들었다. 시간이 지났으니 해산하라는 경고였다. 시민들 야유에 경찰 확성기 소리가 묻혔다. 법이 시민사회를 위한 필요조건이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유족들과 시민들은 밤 11시 가까이 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경찰도 이들을 묵묵히 지켜봤다.

세월호 유가족과 이재명 성남시장이 행진대 선두에 섰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오후 8시 30분께 경복궁역 상황을 살피려고 자리를 옮겼다. 역 앞에는 대형 스크린이 서 있었다. 광화문광장 무대를 실시간으로 상영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장발의 할아버지가 무대 위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랩'을 하기 시작한다. 장애인 삶을 다룬 '공간 이동'이라는 노래다.

"내 모습, 지옥 같은 세상에 갇혀 버린 내 모습, 큰 모순, 자유, 평등, 지키지도 않는 거짓 약속. 흥! 닥치라고 그래, 언제나 우린 소외받아 왔고, 방구석에 '폐기물'로 살아 있고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차별의 시선, 위선 속에 동정받는 병신인 줄 아나! 닥쳐 닥쳐라, 우린 병신이 아냐!"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다. 그리고 이날은 '세계 장애인의 날'이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광화문역 지하도 안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을 시작한 지 1,565일째 되는 날이었다. 박 대표는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 차별에 대해 호소했다.

광장에서 여러 목소리와 만난다. 세월호 진상 규명, 장애인 차별 철폐, 여성 혐오 반대, 비정규직 철폐, 쌀값 폭락 항의, 반값 등록금 실현, 취업난·주거난·부채난 대책 마련 등. 오랫동안 도시 한쪽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 댔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박근혜 퇴진을 위해 모인 촛불이 이들을 새롭게 밝히고 있다.

나는 가급적 토요일마다 광화문광장에 나가려 한다. 강남순 교수는 광화문 집회를 보고 "광화문에 모인 100만의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가치관'을 확산하기 위하여 모였을까" 하고 묻는다(<허핑턴포스트> 11월 13일 자). 내가 광장에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박근혜 탄핵을 이뤄 냈다(물론 헌법재판소 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 이후 이들이 광장에서 어떤 답을 만들어 갈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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