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대한민국에는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라는 시스템이 있다. 피해자가 경찰서에 찾아가 범죄 사실을 신고하면 법률 상담도 해 주고, 경찰 조사에 동석해 경찰이 유도신문 하는 것도 막아 준다. 매년 늘어나는 성범죄에 대비해 법무부가 2012년부터 시행하는 시스템이다.

경찰청이 2015년 발표한 '5년간 성폭력 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성폭력 범죄 건수는 2만 9,517건이다. 하루 평균 80건의 성범죄가 발생하는 셈이다. 2010년에 비해 45% 증가했다.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막상 사건을 겪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꽤 된다.

이런 피해자를 법률적으로 돕기 위해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가 존재한다. 한국에 400명 정도가 활동 중이다. 이 중 성폭력 피해자만 전담하는 변호사는 17명이다.

12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 신진희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를 만났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세히 들어 봤다.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 제도가 2012년 시작했다. 초기부터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를 해 온 신진희 변호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가 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소개 부탁드린다.

피해자 변호사 중에는 사선과 국선이 있다. 사선은 의뢰인이 돈을 지불하고 계약하는 변호사고, 국선은 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변호사다. 대부분 성범죄 사건은 국선변호사가 담당한다. 피해자가 자기 돈을 지불해 변호사를 선임하기 쉽지 않아서다. 사선은 100건 중 5건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400명 정도 된다. 이 중 다른 사건은 맡지 않고, 성폭력 피해자만 돕는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가 전국에 17명 있다. 한국에만 있는 고유한 제도다. 병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적을 두고 활동한다.

나도 병원에서 활동한다. 정액이나 DNA 채취 등 응급처치를 위해 병원에 오는 피해자가 있다. 이때 피해자가 응급처치 끝내고 집에 갔다가 다시 경찰서로 출석해 조사받는 걸 힘들어 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전국 6개 병원(서울 보라매병원·인천광역시의료원·가톨릭대학교인성모병원·수원 아주대학교병원·대구의료원·제주 한라병원)에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가 배치돼 있다. 2012년 법무부에서 시행했다. 처음에는 19세 미만 아동만 변호했는데, 2013년 법이 개정되면서 대상이 모든 성폭력 피해자로 확대됐다.

- 피해자가 국선변호사를 직접 선임하거나, 지명할 수 있는가.

아니다. 경찰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면 경찰이 초기에 '국선변호사 제도'를 원하냐고 묻는다. 피해자가 원한다고 하면 경찰이 검찰청에 요청서를 보낸다. 국선변호사가 정해지면 직접 피해자를 만나 상담한다. 가해자 전담 변호사와 달리 1·2·3심 모두 한 변호사가 담당한다. 피해자가 반복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국선변호사'는 적극적이지 않다. 마지못해 변호하는 모습도 종종 나온다. 실제로 그러한가? 국선변호사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국선변호사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은 사람들 편견이다. 가해자 경우, 변호사가 증인 요청도 하고 피고인도 여러 번 만난다. 그러나 피해자의 경우 검사가 이런 역할을 한다. 변호사에게는 권한이 없다. 사선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 변호사처럼 하지 않으니 도움을 적게 받는다고 생각한다. 안 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 변호사에게 권한이 없는 거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피해자가 초기에 경찰 조사받을 때부터 검찰이 가해자를 기소해 법률 절차를 밟을 때까지 모든 과정에 함께한다. 경찰 조사를 받을 때 바로 옆에 앉아 유도신문을 막거나 암시적인 질문을 못 하게 한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피해자나 그 가족은 경찰 질문이 유도신문인지 모를 때가 많다. 그냥 묻는구나 생각하는데 아닌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친족 간 성폭력 경우 "아빠가 어디 만졌어? 가슴 만졌어? 엉덩이 만졌어?"라고 묻는다. 피해 아동이 어떤 상황인지 말하지 않았는데도 대뜸 묻는 것이다. 어린아이 경우 누군가가 물었을 때 별생각 없이 "응응"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 엄마는 아이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이후 아동에게 피해 사실을 다시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문장으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는 "학교에서 몇 반이야?",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야?"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묻고 "엄마가 얼마 전에 울면서 집에 들어온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일 좀 이야기해 줄래?"라고 묻는다.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아이가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한다.

성폭력은 직접 본 목격자가 없는 경우 피해자 진술을 근거로 처벌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아이가 자발적으로 이야기해야 증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엄마나 선생님 등 주변 사람이 유도신문해서 나온 답보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이야기해서 나온 답이 신뢰성이 더 높다.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는 피해 아동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을 한다.

- 국선변호사를 신청하면 그 즉시 동석해 주는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성폭력특별수사대가 있다. 여기는 13세 미만 아동이나 장애인은 무조건 변호사 동석 하에 수사한다. 초기 진술부터 동석하게 한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런 건 아니다. 지방은 상황이 열악하다. 새벽 1시에 강간 사건이 발생했다고 치자. 변호사가 지정되기 전, 피해자가 경찰서에서 초기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다. 서울은 도로망이 잘돼 있지만 강원도처럼 면적이 넓은 지방은 제시간에 도착하기 쉽지 않다.

신진희 변호사는 경찰 초기 조사부터 재판까지 모든 과정에 함께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가해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피해자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합의를 원하는 피해자도 있을 것 같다. 특히 합의의 경우 신변 노출이나, 보복에 대한 우려도 작용하지 않나 싶은데.

물론이다. 합의를 나쁘게만 볼 수 없다. 피해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경찰에서 1차 조사만 받고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질신문과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할 수도 있다. 법원에 증인으로 채택될 수도 있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여러 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불편함을 호소할 수 있다. 거부감이 드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가해자가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합의금을 지급한다고 하면 사건을 접고 싶을 수 있다. 가끔은 가해자가 너무 끔찍한 피해를 저질러 처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피해자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사회정의를 구현할 것인지, 피해자를 보호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 앞서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는 전국에 17명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인원은 아니다. 하는 일도 많을 것 같은데.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는 월 16건, 연 200건 정도 사건을 맡는다. 나는 피해자 전담 변호사가 생긴 2012년부터 시작해 주로 아동과 장애인 사건을 맡았다. 비장애인 성인 성폭력 사건은 월 2건 정도 하고 있다.

-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일 성폭력을 당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신고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남성 경찰이 많고, 여성 경찰이 배치돼 있어도 자기가 겪은 일을 적나라하게 말하는 게 쉽지 않다. 피해자가 경찰서 대신 성폭력 상담소에 방문하기도 하는데 거기서도 결과적으로는 가해자 처벌을 이야기한다. 바로 신고한 사건에서 무죄가 나온 경우는 거의 없다. 본인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도와줄 수 있다.

- 성폭력을 당하면 충격이 커서 경황이 없을 것 같다. '내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내가 잘못한 건 없을까' 등 여러 생각을 하다 신고를 늦게 하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님 조언처럼 빨리 신고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늦게 신고하면 피해자가 불리한가.

늦게 신고했다고 무조건 무죄판결이 나는 건 아니다. 되는 경우도 있고,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왜 시간이 지나서 신고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간 신고할 수 없었던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의붓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경우, 피해 아동이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엄마가 의부와 헤어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 거라고 판단할 수 있다. 또는 이복동생이 있어서 자기가 신고하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고민을 하다가 1년 지나서 한 것도 아동 케이스에서는 빨리 한 거다. 이런 경우는 유죄판결 받는다. 법원도 지금은 이런 특수성을 이해한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보다 '어떤' 사건이었는지가 중요하다.

반면 사귀던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1년 지나서 신고를 한 사람이 있다. 제3자가 생각할 때 왜 1년이나 지나고 신고했나 생각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재판에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납득 가능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늦게 신고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증거가 중요하다. 가해자도 인정하면 유죄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판사는 피해자 말을 믿을 것인가 가해자 말을 믿을 것인가 판단한다. 그 판단 기준은 누가 얼마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느냐에 달려 있다. 재판이기 때문에 다른 이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신 변호사는 여성들이 일관된 진술을 자세히 하는 것과 성폭력 후 바로 신고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을 때 참고해야 할 점이 있다면.

피해자는 최대한 경찰 조사에서 많은 걸 말해야 한다. 경찰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대답하면 안 된다. 대다수 일반인은 강간을 당했다고 하면 그때 그 사건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처음 보는 사람이 가해자라면 문제없다. 그러나 지인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찰이 가해자에게 "왜 강간했느냐" 묻는데 가해자가 "아니다. 그 사람과 세 번 만났고 이미 그 전부터 스킨십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치자. 피해자는 경찰이 성폭력 이전 이야기를 묻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후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신빙성이 높아진다. 피해자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 말에 신빙성이 있다면 그의 손을 들어 주게 된다.

성폭행 사건을 보면 여성이 명확하게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면 사건이 어려워진다. 여성들이 원하지 않을 때는 강력하게 싫다는 반응을 하면 좋겠다. 사실 성관계를 할 때 남성이 "해도 되겠니?"라고 의사를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다. 몸을 밀착한다든지,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흘러간다. 남성은 여성이 소극적으로 반응하면 쑥스러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거부반응인지 모른다. 표현하지 못하는 게 여성의 잘못은 아니지만 여성이 원하지 않는 성관계에 있어서는 강력하게 싫다는 반응을 했으면 좋겠다.

- 교회 안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도 맡은 적 있는가.

많지는 않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케이스를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사안을 보면 피해자들이 신고를 잘 하지 못하는 거 같다. 자신이 가해자를 처벌하고 교회를 떠날 마음이 있으면 신고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가 아니면 쉽지 않다. 교회 내 성폭력은 직장 내 성폭력과도 유사한 것 같다. 직장 내 성폭력도 (교회처럼) 가해자를 같은 공간에서 봐야 한다. 피해자가 신고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 교회 안에서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으로 볼 만한 사건이 발생한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워한다는 걸 알고 범행을 저지른다.

JMS가 가장 대표적인 예인데, 가해자가 하는 성행위를 피해자가 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가능하다. 피해자가 가해자 행동을 추행으로 느끼지 않고, 치료 또는 성령의 은혜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면에서 위계에 의한 성폭력으로 인정되기가 쉽지 않다. 굉장히 까다롭다.

- 일반 직장과 같이 교회 안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에 대한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실시하자는 의견도 있다.

직장에서는 가능하다. 징계위원회에 가해자를 회부하고 대부분 바로 해고시킨다. 피해자를 가해자에게서 분리시키고, 가해자에게 페널티를 주는 거다. 오너도 가해자가 회사에 있다는 사실을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어려울 거 같다. 사적인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법으로 강제성을 두기 힘들다. 권고할 수 있지만 교회가 할 것 같지 않다. 교단은 교인 편이 아니다. 이런 점은 일반 조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밑에 있는 교인보다는 조직 구성원을 더 먼저 생각한다. 또 목사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덮으려고 하지 사실을 캐내고 처벌하려는 조직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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