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미래교회포럼은 12월 5일부터 이틀간 '이신칭의, 한국교회 면죄부인가'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지난 기사에 이어 이번에는 권연경 교수(숭실대학교) 강연을 소개한다. 권연경 교수는 '칭의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과 바울 읽기'를 주제로 6일 발제했다.

'칭의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은 1999년 로마가톨릭과 루터교세계연맹이 공동발표한 선언문이다. 권 교수는 양측이 칭의에 대한 입장 차이를 존중하며 44개 조항을 작성했다고 해설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공동선언문 관련 내용은 배제했다. 포럼 주제 '이신칭의'와 더 관련 있는 '바울 읽기' 부분을 다루고자 한다. 권 교수 강연을 요약해서 전한다.

권연경 교수는 로마서 핵심 논지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능력

로마서 하면 '이신칭의'를 떠올린다. 사실, 이신칭의는 로마서를 다 설명할 수 있는 교리가 아니다. 바울은 여러 방식으로 구원에 관한 가르침을 개진했다. 이신칭의 역시 다양한 가르침 중 하나다.

로마서 핵심 논지는 '(복음이야말로) 모든 믿는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1:16). 여기서 바울은 '모든'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할례자, 무할례자 '모두'를 아무런 차별 없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의롭게 한다는 사실 말이다.

아브라함 사례가 분명히 보여 준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믿음은 본질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는 것이다. 100세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과 사라의 태를 살려 아들을 허락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온 세상 주로 삼았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면, 의로움과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원은 미래다

많은 이가 '칭의-성화-영화'로 이어지는 '구원의 서정'에 익숙하다. 여기서 칭의를 그리스도 대속으로 죄를 용서받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인간에게 전가돼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고 사람들은 이해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선행이 일체 개입되지 않는다.

개신교 전통은 칭의가 인간의 선행과 무관하며, 반드시 성화 과정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칭의와 성화는 분리할 수 없다. 그런데 개신교 전통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성화와 칭의를 구분해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이는 인간의 선행을 동반하는 윤리적 변화를 '칭의'에서 배제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윤리적 변화가 구원 사건의 근거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칼뱅은 칭의와 성화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주어지는 동시적 은사들이며, 어느 하나 없이 다른 하나가 주어지는 일은 없다고 강조한다. 구원이 칭의뿐 아니라 성화 역시 요구하고 있다면, 성화 역시 구원의 필수 요건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칼뱅은 선행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성경 구절을 묵상하면서, 선행은 구원에 이르는 필수 '과정', '계단'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궁극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은혜가 인간의 선행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고로 인간의 선행은 구원의 종속적 원인이라 불릴 수 있다.

문제는 성경에서 우리 구원과 현재의 삶을 묘사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어긋난다는 점이다. 성경에서 구원은 본질적으로 미래다(살전 1:10, 벧전 1:3-12). 갈라디아서는 이를 '의의 소망'(5:5), '하나님나라'(5:21), '영생'(6:8) 등으로 표현한다. 칭의조차도 미래 소망의 대상으로 제시되고 있다. 로마서에서도 구원을 소망의 대상으로 규정한다(2:6-11, 5:9-10, 10:9).

사람들이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독교는 행위 심판 사상 전제

구원이 미래 목표로 설정되면, 당연히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순종이 중요해진다. 칼뱅 말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의롭다 함을 얻은 교인들이 선행이라는 과정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약은 '행위 심판'이라는 신학적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행한 대로 갚는다는 원칙은 공평무사한 하나님 성품에 근거한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는 상대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약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한다'는 구약 원리를 자주 인용한다(마 16:27, 벧전 1:17). 흥미롭게도 신약에서 '행위 심판' 원리를 가장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서신이 '이신칭의' 교리 교본으로 여겨지는 로마서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에게 행한 대로 갚을 것이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진노의 심판으로 갚으실 것이라고 나와 있다(2:6-11).

다시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으로 돌아가 보자. 복음은, 십자가 대속이 행한 대로 갚는다는 원칙을 대체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복음이 '복된' 것은 이 원칙을 파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선물로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한다. 십자가와 죄 용서는 바로 이런 새로운 삶을 위한 하나님의 관대한 조치로 이해된다.

복음은 행위 심판 원리를 회피하면서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위 심판 원리와 더불어 작동한다. 복음의 요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고 성령으로 새롭게 해 마지막 구원으로 이끄는 능력에 있다.

구원이 소망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지키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 그럴 때 복음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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