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칭의 주제에 목회자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300여 명이 포럼에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구원파는 한국 사회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한국일보>는 '한국교회는 구원파와 다른가?'(2014년 5월 25일 자)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구원파는 '한 번 믿으면 완전한 의인이 되므로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극단적 예정론을 강조한다.

사설은 한국교회 목회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탈을 지적한다. 헌금 횡령, 성추행, 표절 등 여러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셀프 회개'하는 목회자와 구원파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2006년부터 매년 한국교회 이슈를 놓고 포럼을 연 미래교회포럼(박은조 대표)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한 해 앞둔 올해 주제로 '칭의론'을 선정했다. 한국교회가 칭의론을 잘못 이해해 변질된 복음을 추구하지는 않았는지 성찰과 점검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12월 5일 서울 종로구 소재 연동교회(이성희 목사)에서 열린 포럼에는 김세윤 교수(풀러신학교), 박영돈 교수(고려신학대학교), 권연경 교수(숭실대학교)가 강사로 나섰다. 포럼은 이틀간 진행된다. <뉴스앤조이>는 앞으로 세 신학자의 강의를 연달아 소개한다.

박영돈 교수는 장 칼뱅 입장에서 칭의론을 조명했다. 칭의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비판을 지적하며 종교개혁가들이 주창했던 칭의, 성화 개념을 설명했다. 박영돈 교수 강의를 요약해서 전한다.

박영돈 교수는 칼뱅의 입장에서 칭의론을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성화 없는 칭의', '칭의 없는 성화' 불가능

칼뱅은 <기독교강요> 3권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근거로 하여 구원론을 전개했다.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 신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두 가지. 칭의와 성화다.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은혜의 두 면이다.

만약 칭의가 참된 것이라면, 이는 필연적으로, 지체 없이 성화가 수반된다. 그리스도는 거룩하게 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의롭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 인격 안에서 영원히 분리될 수 없는 연합으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화 없는 칭의'나 '칭의 없는 성화'만 체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칼뱅에 따르면, 그리스도 연합의 바탕 위에서 믿음과 회개, 칭의와 성화는 긴밀하게 연합돼 기독교인의 삶에 병행된다. 성화 없이 칭의에 근거해서만 구원받지 못하듯이 행함, 즉 순종과 회개의 열매 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지도 못한다.

행함은 칭의의 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할 칭의의 열매다.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해 주는 게 행함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검증에서 탈락한 죽은 믿음이다. 여기서 한국교회에 만연한 값싼 구원의 복음이 얼마나 종교개혁자의 구원론과 거리가 먼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믿기만 하면 거룩함의 열매가 전혀 없어도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종교개혁의 칭의론을 완전히 곡해한 이단적 발상이다. 칼뱅이 가장 혐오하며 경계했던 오류가 칭의 교리가 교회 타락을 조장하는 방종의 라이선스로 해괴하게 변질되는 것이었다.

성화에 근거 않는 칭의

칼뱅은 칭의와 성화의 연합된 구조뿐 아니라 구별된 특성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칭의와 성화를 동일시하면 성화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으려는 만큼 자신이 실제로 의롭게 됐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 불안감이 가득해질 수 있다. 칭의의 은혜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생길 것이다. 이는 율법주의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칼뱅은 '오직 믿음'을 강조한다. 이 믿음은 믿기 전 의로움뿐 아니라 믿은 후 의로움까지 배제한다. 믿음은 우리 안에 모든 의로움을 배제하고 오직 우리 밖에 있는 의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이다.

칭의가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영 단번(once and for all)'에 주어진 순전한 선물이기에, 우리의 의로움(성화)에 따라 회수되진 않는다. 우리가 거룩하게 산다고 해서 하나님께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해서 덜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칭의가 하나님의 법적인 판결이자 관계 회복이라는 의미라면, 우리가 의롭게 살지 못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한 번 내린 의롭다는 판결을 취소하거나, 양자로 받아들인 우리를 내치거나, 신부로 맞은 우리를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새 언약이 그 안에 성취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새 마음과 영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이는 동시에 성령으로 거듭난 새사람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칭의를 이해할 때 칭의의 취소나 구원의 탈락을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신학적인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확신과 두려움이 공존한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확신과 두려움 공존케 하는 칭의론

칼뱅은 기독교인에게 확신과 두려움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확신에 경건한 두려움이 있어야 우리를 죄와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며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다.

이 두려움은 칭의의 탈락이라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원불변한 사랑과 궁극적인 구원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두려움이다. 자신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고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그 은혜와 사랑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위로와 확신을 주는 말씀, 두려움과 경종을 불러일으키는 말씀 사이에 있는 미묘한 긴장을 유지한 채 살아야 한다.

칭의 교리가 기독교인의 거룩한 삶을 증진시키기보다 오히려 방해하는 역기능을 하게 된 이유는 교회가 칭의의 복음을 제대로 전파하지 않아서다. 성령이 증거하는 칭의 복음의 진수가 빠진 구원론이 한국교회에 범람한다.

불의한 자를 의롭다 하기 위해 삼위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했는지,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를 드러내지 않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반복하는 건 거짓 확신과 윤리적인 혼란을 가중시킨다.

구원의 확신은 인위적으로 창출해 낸 종교적 감정이 아니다. 성령께서 복음의 광채를 우리 어두운 마음에 비춰서 생성된 진리를 깨닫고 확증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성령 안에서 거듭난 새 생명을 누리며 하나님이 주관하는 하나님나라를 부분적으로라도 누리지 못하는 이는, 진정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 교인은 참으로 회개하지 않는 한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만물 화목케 하는 칭의

칭의는 개인 구원뿐 아니라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이해하는 핵심 사상이다. 칭의는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인 교회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개념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이들이 그 의의 열매를 누리는 공동체다.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되어 성령 안에서 임재하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삼위 하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잔치를 누리는 하나님나라 공동체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하나님나라가 교회에서 실현되는 것도 바로 칭의의 열매다.

이 하나님나라 공동체에 들어가는 조건은 믿음으로 얻는 의로움이다. 그래서 교회가 전파하는 복음의 핵심은 칭의며,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에게 '사죄'와 '의롭다'는 선언을 대언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가 개인과 교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확산되기를 원한다. 칭의의 복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을 당신과 화목케 하며 인간의 죄로 파괴된 피조 세계를 치유하고 갱신한다.

칭의가 취소될 수 있을까,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을까. 교수들은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최갑종 총장 "칭의 취소, 구원 탈락 배제하면 안 돼"

박영돈 교수 강의가 끝나고 최갑종 총장(백석대학교)이 논찬했다. 최 총장은 칭의와 성화 두 개념을 구별할 때 생기는 모순성을 지적했다. 구원에서 탈락할 수 없다는 발언도 비판했다.

최 총장은 박영돈 교수가 "칭의는 성화를 증진시킬 수 있지만, 성화는 어떤 경우에서든 칭의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지적하면서, "칼뱅에 따르면 칭의와 성화가 그리스도의 연합을 통해 동시에 주어지고 칭의가 가는 곳엔 반드시 성화가 따라가고 성화가 있는 곳에 반드시 칭의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칭의는 성화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성화는 칭의에 영향을 줄 수 없나"라고 했다.

최 총장은 "박영돈 교수가 칭의의 취소, 구원의 탈락 가능성도 배제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울이 여러 서신에서 최후 심판과 탈락에 관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며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박영돈 교수는 "최종으로 구원에서 탈락한 자는 처음부터 참된 믿음과 칭의가 주어지지 않는 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 총장은 "바울이 최후 심판과 탈락을 경고하는 대상은 거짓 믿음과 거짓 칭의를 받은 자가 아니라 오히려 일반 교인"이라고 말했다.

최 총장은, 성경에는 칭의, 성화, 최후 심판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교훈을 동등한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어느 한쪽을 다른 쪽에 종속시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각 본문을 그 본문이 위치하는 문맥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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