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거리 행진은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계속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평화의 이름으로 오신 주님,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저희들 마음은 얼어붙어 있습니다. 온 국민이 평화를 잃었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주님께서 위로해 주십시오. 마주 서 있는 경찰들에게도 위로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내일을 향한 희망을 허락해 주십시오."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12월 1일 밤 9시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안산에서 올라온 박인환 목사(화정교회)가 폴리스 라인 앞으로 나와 기도했다. 기독교인 150여 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앞에는 경찰 병력 100여 명이 진을 치고 이들을 바라봤다. 경찰들 어깨 사이로는 청와대 담벼락이 보였다. 5분만 더 걸으면 청와대다. 감리교시국대책위원회와 촛불교회는 청와대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이곳에서 박근혜 퇴진 시위를 벌였다.

감리교시국대책위원회는 이날 저녁 6시부터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였다. '박근혜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감리교 시국 기도회'를 하기 위해서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목사·교인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전날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져 거리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평소 관광객으로 붐볐던 대한문 앞은 한산했다. 참석자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 깔개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김기석 목사(청파교회)가 설교를 전했다. 김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재계·학계·법조계 등이 악의 카르텔로 국민들 삶을 유린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느부갓네살이 만든 우상 앞에 절하는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대통령을 에워싸며 권력의 단맛을 누렸다"고 지적했다.

권력에 올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교회 지도자를 향해서도 쓴소리했다. 김 목사는 "권력에 맛들인 일부 종교 상인들은 평안이 없는데도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며 사람들을 속였다. 꾸짖을 것을 꾸짖고 위로할 것을 위로해야 할 종교가 빛과 소금 구실을 못 한다. 눈앞에 있는 위험을 직시하면 나팔을 불며 사람을 깨워야 할 이들이, 나른한 자장가를 불며 국민들을 재운다"고 비판했다.

하나님을 대적해서 승리한 권력은 없다고, 김 목사가 말했다. 그는 "세상 모든 제국은 무너졌다. 그게 섭리다. 눈앞에 있는 현실만 바라보고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자. 생명을 풍요롭게 만들고 평화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과 연대하자"고 설교했다.

감리교 시국대책위원회가 대한문 앞에서 박근혜 퇴진을 위한 시국 기도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시국 기도회를 마친 사람들은 덕수궁 대한문에서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2.5km 행진했다. 이들은 인도를 걸으며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를 외쳤다. 이날 국회에서는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던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4월 퇴진론을 내세우며 태도를 바꿨다. 국민의당도 박근혜 탄액소추안 발의를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위대는 새누리당을 포함해 국민의당도 비판했다.

평소 경찰은 청와대 앞까지 가겠다는 행진대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날은 막지 않았다. 최근 법원이 청와대 앞 200m까지 시위를 허가했기 때문이다.

경복궁역을 지나 청와대에서 약 500m 떨어진 지점에 다다르자 충돌이 발생했다. 경찰이 행진대 깃발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 주최 측은 행진을 허가받았는데 깃발은 왜 안 되는 것이냐며 항의했다. 30여 분 갈등 끝에 경찰은 깃발을 돌려주고,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행진을 허가했다.

시국 기도회 참석자들은 대한문 앞에서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행진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경찰이 행진대 깃발을 빼앗으려 하면서, 경찰과 시민들이 충돌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는 촛불교회로 모인 50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감리교시국대책위는 촛불교회와 합류해 저녁 8시 10분께부터 공동 시위를 벌였다.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가 발언자로 나섰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이 뿌리부터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모든 부패를 이번 기회에 청산하자. 권력, 힘으로도 매수할 수 없는 게 광장의 민심이다. 대한민국 권력은 국회에도 야당에도 없다. 광장에 있다. 광장에서 단결하자"고 외쳤다.

이들은 성명서를 낭독하고 집회를 마무리했다. 돌아가면서도 '박근혜는 퇴진하라', '새누리당은 해체하라', '재벌도 공범이다'를 외쳤다.

감리교시국대책위원회와 촛불교회는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집회는 안산에서 올라온 박인환 목사 마무리 기도로 끝이 났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7)

박근혜 정권의 지난 4년은 국민들에게 악몽이었다. 추락하는 서민 경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졸속 합의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개성공단 폐쇄로 상징되는 남북 관계의 단절, 쉬운 해고와 노동 악법 강행으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 미래가 없는 청년들, 사드 배치, 최하점에 있는 국가경쟁력 지표들, 어느 것 하나 낙제점을 면한 것이 없다. 답답하고 속상한 가운데서도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인지라 어서 5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참았다. 지난 역사에서 피 흘려 가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인내였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민을 비웃었다.

대통령에게 위임된 주권은 국민의 것이고 결코 양도될 수 없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권력을 사적 소유로 만들어 최순실 일가에게 통째로 넘겼다. 이 사태의 폭로가 시작된 지 한참 되었음에도 여전히 매일 같이 새로운 의혹들이 제기되고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한 개인이 국정을 휘젓고 고위 관리직 인사에 개입하였으며 대통령 측근에 자기 사람을 심어 놓고 국가 기밀을 제한 없이 들여다보았다. 국정만이 아니라 청와대를 등에 업고 기업들을 상대로 각종 이권 장사를 했으며 기업 경영에까지 관여하였다. 피나는 노력으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딸을 부정한 방법으로 명문대에 입학시켰다. 이렇게 축재한 최씨 일가의 재산이 수천 억, 수 조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그저 귀가 막힐 노릇이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관계를 뻔히 알면서도 무리하게 대통령으로 만든 모든 기득권 세력들 역시 이 사태의 공범이다.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박근혜 정권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대통령의 비리가 만천하에 공개되자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모든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제1당사자인 새누리당마저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양 대통령 탈당과 윤리위 제소, 분당까지 거론하며 발을 빼려고 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김무성 전 당대표도, 유승민 전 비서도 이구동성으로 '몰랐다'고 하니 이들 역시 대한민국 정치에서 철저하게 배제하고 죗값을 물어야 한다.

대기업들 역시 공범이다. 이들은 청와대와 최순실의 위계에 의한 강압으로 돈을 갈취 당한 피해자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 그러나 각 기업은 숙원 사업 해결을 위한 각종 규제 완화,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채용 완화 등의 선물을 받았다. 삼성의 경우 최순실의 딸 정유라 개인을 위한 지원에 수십 억 원을 지불했다는 내용이 속속 사실로 확인되고 있고, 국민연금이 5,900억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가성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그 손실은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맡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모자, 공범이 아닌 주범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박근혜는 검찰 조사, 특검 조사도 거부하고 자신이 제안한 국회 추천 총리도 번복하였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개인의 비리로, 정당한 통치행위로, 순수한 의도로 포장하고 있다. 특히 200만의 분노한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후 발표된 11월 29일 3차 대국민 담화는 끓어오르는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남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은 여전하며, 본인의 책임과 결단을 정치권에 떠넘겨 시간을 벌려고 하는 술수를 쓰고 있다. 정말 나쁜 대통령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국민들이 성숙한 시민 정신으로 평화적 퇴진을 요구할 때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즉각적인 퇴진이 질서 있는 퇴진이며 조속한 결단만이 박근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애국이다. 또한 이를 조사하고 재판할 위치에 있는 검찰과 사법부 역시 한 점의 의혹이나 성역 없이 철저하게 옳고 그름을 밝히고 판단해야 한다. 정치권도 당리당략으로 얄팍한 꼼수를 부릴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온전히 반영하고자 노력하라!

우리 감리교인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 사태가 매우 엄중하다고 판단한다.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세우고자 십자가에 달려 생명까지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민이 주인이 되어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뤄지는 참된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에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
하나, 최순실 일가의 죄과를 철저하게 밝혀내고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을 국고 환수하라
하나, 새누리당도 공범이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해체하라
하나, 재벌도 공범이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와 부당한 정경유착도 철저하게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하나, 검찰, 특검과 사법부는 권력에 아부하던 과오를 반성하고 철저하게 조사, 판단하라!
하나, 경찰은 국민적 분노를 직시하고 집회 시위권 및 평화 시위를 보장하라.

2016. 12. 1
감리교시국기도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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