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육부는 11월 28일 역사 국정교과서를 발표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이준식 교육부장관은 대국민 담화문을 함께 발표했다. 그는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심혈을 기해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날 발표한 검토본이 완성본이 아니며 다음 달 23일까지 국민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역사 국정교과서 공식 명칭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고 불린다. 2015년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함과 동시에 사회 각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는 대부분 국정화에 반대했다. 특히 그동안 비공개였던 집필진 명단이 공개되면서, 집필진 중 역사 전공자가 없다는 사실이 빈축을 샀다.

교육부는 11월 28일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했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기독교 분량 증가 이유로 국정화 찬성한 보수 기독교

보수 기독교계는 국정교과서 제작을 지지해 왔다. 서울신학대학교 박명수 교수, 총신대 신학대학원 박용규 교수, 성결대학교 신학대학 배본철 교수, 서울기독대학교 백종구 교수, 안양대학교 이은선 교수 등은 현 검인정교과서에 기독교 서술 분량이 적다는 이유로 국정교과서를 찬성했다.

이들은 당시 <뉴스앤조이>와 통화에서 검인정교과서가 좌편향된 교과서이고 교과서 전체를 놓고 볼 때 기독교 서술 분량이 다른 종교에 비해 너무 적다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개항 이후 혹은 독립운동 당시 기독교가 한반도에 기여한 바가 큰 데도 타종교에 비해 적은 분량만 할애하고 있다고 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한 교수들은 국정교과서에서는 기독교 서술 분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수들 바람처럼 기독교 서술 분량이 늘어났을까. 고등학교 교과 역사 교과서에는 '기독교' 세 차례, '개신교'도 세 차례 언급됐다. 타 종교와 비교해 보면 많은 분량은 아니다. 불교는 한반도에서 역사가 깊어 고대 문화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설명이 더 많다. 천주교는 조선에 들어오면서 퍼져 나간 과정, 신유박해 등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기술됐다.

개신교 관련 언급 중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 운동이다. 국정교과서 237쪽에는 "개신교는 교육 운동과 각종 문화 사업에 앞장섰고,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련된 교회와 학교가 폐쇄되었고 주기철 등이 투옥되어 목숨을 잃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주기철'이라는 이름이 교과서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교과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박정희 정부 미화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선교사 활약 기술 성과…개신교 단독 소개 없는 점 아쉬워"

국정화 지지에 앞장섰던 신학교 교수들은 국정교과서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들에게 공개된 현장 검토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기독교 서술 분량에 만족하는지, 전체적인 평가를 부탁했다.

박명수 교수는 기독교 분량이 조금 늘어난 것에는 만족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남는다고 평했다. 그는 "기독교가 근대사에서 교육·의료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을 따로 언급한 점은 긍정적이다. 기독교계에서 타 종교와 공정하게 서술해 달라고 주문한 것을 정부가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개신교 활약상을 따로 서술한 점은 좋지만 아쉬운 점도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천주교 등은 별도로 단락을 할애해 이 종교들이 한반도에서 어떻게 시작됐고 발전했는지 서술했는데 개신교는 그런 점이 없다. 여러 주제에 덧붙여 개신교의 활동 정도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은선 교수는 "과거 검인정교과서 체제에서는 개항 이후 개신교 활약상이 산발적으로 기술돼 있었다. 이번 국정교과서에는 교육·의료 분야를 하나로 묶어 선교사가 활약한 점을 종합적으로 서술하고 이 과정에서 개신교가 확산됐다고 언급했다"며 높게 평가했다.

이은선 교수는 근대화 이후 종교 편향성 우려 때문에 기독교 서술이 크게 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학이나 천주교 등은 개항 이전 조선에 끼친 영향 등을 설명하며 별도로 언급하고 있는데, 개신교는 나중에 전파됐기 때문에 그런 과정이 없다. 전체적인 분량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외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한 배본철 교수(성결대), 백종구 교수(서울기독대)는 아직 교과서를 검토해 보지 않았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현대사 집필진 중 현대사를 전공한 학자는 한 명도 없었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근현대사 전체 분량 줄어…팩트도 문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한 기독인들도 있었지만 역사계에 몸담고 있는 기독교인 많은 수가 국정화에 반대했다. 역사계 원로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숙명여대 명예)을 비롯한 역사학계, 현장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대다수가 국정교과서 집필을 반대했다.

검인정교과서 체제에서 천재교육 출판사 역사 교과서 집필을 맡았던 주진오 교수(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는 기독교 분량이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검인정교과서가 8종인데, 교과서마다 분량 차이는 있지만 공개된 국정교과서보다 오히려 기독교 서술 분량이 많았던 교과서도 있었다고 했다.

주 교수는 "(국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모든 교과서가 좌편향이고 기독교 분량이 적은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천재교육 교과서 같은 경우 제암리교회 사건도 기술했는데, 이번 국정교과서에는 빠졌다. 국정화 지지 교수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모든 교과서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며 국정화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주진오 교수는 기독교 관련 서술 분야에 문제점도 지적했다. 교육·의료 분야에서 선교사 활동이 집중됐다는 단락을 놓고 "선교사 역할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당시 정부 그러니까 왕실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개신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했다는 표현도, 소수가 했던 것을 가지고 전체가 한 것처럼 기술한 점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김영식 교사(덕양중학교·좋은교사운동 기독역사교사모임)는 기독교 분량 증가 여부가 국정교과서를 지지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기독교 분량을 많이 넣는다고 해도 전체 분량상 한두 줄 정도가 전부다.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영식 선생은 공개된 국정교과서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공은 확대 포장하고, 과는 삭제하는 데 치중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균형 있고 사실 위주로 썼다고 했지만, 어떤 사실을 선택해 얼마만큼의 양으로 쓰는지가 문제라며 국정교과서는 균형을 잃은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정작 기독교에 대한 서술마저 줄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앞장서서 국정화에 반대했던 심용환 소장(역사N교육연구소)은 기독교 기술이 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심 소장은 "국정교과서는 일부러 근현대사 분량을 줄였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근현대에 활동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분량이 줄 수밖에 없다. 민족운동, 여권신장운동에 대한 분량이 줄었기 때문에 덩달아 기독교도 언급 횟수가 줄었다"고 지적했다.

심용환 소장은 "'주기철' 이름 석 자 들어간 것, 알렌 외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이름이 추가된 것을 빼면 그리 달라진 게 없다. 모두가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만 분량 문제로 찬성했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내용 면에서 별로 달라진 것도 없고 오히려 기독교 분량이 줄어든 국정교과서에 찬성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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