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있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트럼프는 유세 도중 성경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힐러리를 두고 "그의 종교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으며, 복음주의 목사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은 기독교를 파멸시키고 있는 지도자 중 하나"라고 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국은 물론 국내 주류 기독교 진영은 기독교가 승리했다며 흥분했다.

힐러리는 어떤 신앙을 갖고 있을까. 그가 사탄 숭배자거나 무슬림, 불교도라도 된다는 것일까.

아니다. 그도 기독교인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신앙관

그는 십대 때부터 또래들의 임신, 마약, 범죄에 대해서 토론했다. 무신론자들과는 '하나님의 실존'에 대해서, 유대교 랍비와는 '이스라엘과 유대교'에 대해서 토론했다. 세라 에르만에 따르면, 예일대 재학 시절에도 그는 "항상 성경을 지참하고 다니며 읽은 말씀에 밑줄을 치고 브라운색 바지(코르덴), 브라운색 셔츠, 브라운색 안경, 브라운색 슈즈, 화장기 하나 없이 외모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던 진보적인 크리스천"이었다.

힐러리는 남편 빌 클린턴 성추행 사건으로 생애 가장 힘들었던 고통의 계절(The Longest Season)을 겪고 있을 당시, 존스 목사 권면으로 폴 틸리히의 명설교를 들었다. 로마서 5장 20절을 본문으로 한 'You are Accepted'라는 설교를 듣고 "죄와 은혜는 공존하는 것이며 은혜는 엄청난 고통과 불안 속에 찾아온다는 내용으로 실존적 가치를 설정하고 견딜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힐러리는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조직을 지원하고 헨리 포드(Henry Ford)를 비판했고, 기독교 신앙을 현실적인 현대 정치와 외교에 접목시켰다. "사회적 정의는 개인의 도덕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는 윤리가 아닌 정치에 의해 움직인다"라고 말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은 그의 정치철학, 특히 노동, 흑인, 이민 문제와 외교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그는 1950년대 흑인 빈민이 많이 살았던 '흑인 게토(Ghetto)'의 삶 개선에 힘쓴 사울 데이비드 알린스키(Saul David Alinsky)에게도 영향을 받아 시카고 흑인 빈민가를 답사하며 소수계 흑인과 함께하려 했다. 그리고 그를 민주당원으로 만든 마틴 루터 킹(Mantin Luthe King Jr) 목사였다. 킹 목사는 백인에게 멸시, 폭행당하는 아버지를 보고 차별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으며, 1960년대 흑인 해방과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암살당했다.

이쯤 되면 도대체 트럼프와 힐러리 중 누가 진짜 기독교인인가 헛갈리게 된다. 사실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다. 기독교에서 다양한 종파들이 경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트럼프와 힐러리를 지지하는 미국인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누가 진짜 기독교인인가

미국은 왕과 가톨릭교회 탄압을 피해 새로운 세상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이들이 세운 프로테스탄트 국가다. 이들은 근면하고 검소한 노동 윤리, 직업윤리에 충실했다. 교회와 사제, 라틴어 성경에서 벗어나 개인적 영성을 추구했다.

이들은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무장했고 투쟁했으며, 독립을 쟁취해 자신들의 대표자를 뽑아 국가를 건설했다. 이들이 바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다. 미국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가장 강한 국가가 되었으며, 시민 문명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길을 걸었다. 흑인 민권운동을 비롯해 노동운동, 여성운동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미국은 부강한 국가이자 민주적인 국가가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을 계승한 미국인들은 백인 중심, 남성 중심, 기독교 근본주의 중심의 미국을 염원했다. 반면 시민권 확대 운동에 앞장선 이들은 백인, 남성, 부자, 기존 시민뿐만 아닌 흑인, 여성, 노동자, 이주민 등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리면서 서로 사랑하는 미국을 염원했다.

그리고 이들은 격돌했다. 그 역사가 바로 1968 혁명이다. 젊은이들은 백인 인종주의와 베트남 파병에 반대했다. 아버지 세대의 금욕적이고 권위적인 프로테스탄티즘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섹스, 엘에스디(LSD), 마리화나, 록에 취했다. 정치 노선을 두고 분열했으며, 폭력적인 정치 행위로 대중에게서 고립되었다. 기존의 기독교에 반대하면서 나타난 뉴에이지 운동은 신비주의화되었다. 뉴에이지 운동은 심지어 사교(邪敎)화되어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하였다.

바로 이들이 힐러리 지지자들이다. 보보스(Bobos)는 미국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보헤미안(Bohemian)'과 '부르주아(Bourgeios)'의 합성어인데, 이들이 힐러리의 지지자들이었다.

전통적 부르주아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보헤미안이나 히피처럼 자유로운 정신과 정신적, 문화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스티브 잡스처럼 정장이 아니라 청바지에 편안한 니트 셔츠를 즐겨 입는다. 이들은 앤티크(antique)하거나 이국적인, 특히 동양 선 불교 젠(zen) 스타일을 즐긴다. 골프나 승마보다는 익스트림스포츠, 요가, 명상을 즐긴다.

이들은 대체의학과 동양적인 풍수, 음양오행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들은 소수 인종, 여성, 성소수자에 우호적이다. 이들 중에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벤처 사업가, 펀드매니저, 디자이너, 연예인, 스포츠 선수, 학자, 여행가, 저널리스트, 정치가가 많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할리우드는 물론 월스트리트, 워싱턴에 많이 분포해 있다.

민주당에는 유독 보보스가 많다. 잘생기고 학식이 뛰어나며 교양이 풍부한 앨 고어, 존 케리, 힐러리 클린턴이 그렇다. 이들은 소수 인종, 성소수자, 가난한 자를 대변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민중의 지도자'라는 말은 아니다. 사실 이들은 월스트리트와 백악관을 대변한다. 힐러리는 월스트리트 큰손들에게서 고액의 기부금을 받고 있다. 공개된 이메일을 보면,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리비아에서의 공격적 전쟁, 무인기를 사용한 암살, 파키스탄이나 예멘, 소말리아 등에서 감행한 여러 불법행위가 드러났다. 사실 힐러리는 전범 재판에 서는 게 정의였던 것이다.

트럼프로 대변되는 미국

미국 하층 백인들이다. 이들은 힐러리 지지자와 대척점에 있다.

이들은 남북전쟁 이후 수정헌법 14조 채택에 따라 시민권을 얻은 흑인을 비롯해 여성, 소수 인종, 성소수자, 청년 등이 미국을 나태, 방만, 성적 탐닉에 빠뜨렸다고 본다. 대신 가족과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중시한다. 이들은 복지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흑인 미혼모와 열심히 세금을 내는 백인 노동자계급을 대립시켜 세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적대감을 만들었다.

이들은 낙태나 동성애에 찬성하는 자들이 윤리적으로 타락했고, 에이즈로 나타난 신의 저주에 직면할 거라고 비판한다. 이들 눈에 흑인, 히스패닉, 미혼모, 성소수자 등은 '성적 타락'과 '나태'에 빠진 사회악, 기독교의 적이다. 할리우드의 성공한 흑인들,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여성들 또한 눈엣가시로 여긴다. 원래 자신들 것이었던 일등 시민 자리를 빼앗겼다고 본다. 일등 시민에서 이등 시민으로 내려앉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 근본주의로 무장했다. 기독교 근본주의(Christian fundamentalism)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고, 성서는 글자까지도 하나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 무오한 하나님 말씀이라고 본다. 이들에게 성서 기록은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이다. 이들은 진화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며, 진화론을 가르친 교사를 재판에 세워 벌금 100달러를 물리는 원숭이 재판이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급속히 정치화되었다. 이들 노선은 미국 중심주의, 제국주의, 반공주의, 반이슬람주의, 반유대주의였다.

이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제리 폴웰(Jerry Falwell) 목사다. 그는 "정부가 시행하는 인위적인 평등 정책과 복지 정책은 게으름과 의존심을 조장해 개인을 파멸시키고 국가를 부패시킨다"고 말했다. 가난한 유색인종들을 두고 "도넛 속을 꺼내 먹으면서도 '파이' 가게에서는 일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다시 말해 실업자 구호 사무소 앞에 길게 서 있는 게으르고 시시한 무리들을 우리가 먹여 살려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저 굶어 죽게 놓아두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낙태 반대, 동성애자들의 시민권 인정 반대, 학교 내 기도 부활, 당시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지지했다. 1999년 2월에는 '텔레토비' 보라돌이 캐릭터 색이 보라색이고, 머리에 역삼각형 모양이 달려 있으며, 핸드백을 들고 다닌다는 점을 증거로 보라돌이가 동성연애자를 상징하기에 아이들에게 해롭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1983년 11월 래리 플린트의 성인 잡지 <허슬러>에는 폴웰 가짜 인터뷰가 실렸다. 여기서 가상의 폴웰은 자기 첫 경험이 헛간에서 어머니와 가진 근친상간이었다고 고백한다. 폴웰은 사생활 침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고의적인 정신적 가해행위 등을 내세워 고소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이와 같은 테러가 미국에 일어난 것은 이교도, 낙태, 페미니스트, 동성연애, 포르노들 때문이라는 발언과 함께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해 하나님이 보호하는 손길을 거두셨다는 주장도 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미국인들

이들은 또한 그리스도가 재림한 뒤에는 선과 악의 싸움인 아마겟돈이 일어나고, 천년왕국이 세워진다고 보고 종말론과 휴거론을 퍼뜨렸다. 그 역사는 오래되었는데, 19세기 중반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는 예수 재림 연도를 선언하고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모아 종말 운동을 펼쳤다.

뉴욕 오나이다(Oneida) 공동체는 마지막 시대에 결혼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성관계를 허용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여호와의증인과 안식교 같은 환란과 아마겟돈, 예수 재림을 주장하는 종교 공동체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 대상으로 아마겟돈 성전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70년 할 린지(Hal Lindsey)의 책을 통해 드러났다. 수천만 권이 팔린 그 책은 휴거와 환란과 적그리스도와 아마겟돈의 예언이 곧 이루어질 것이란 경고가 담겨 있다. 냉전 시대에 걸맞게 이스라엘과 소련은 마지막 날 예언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에도 유사한 종말론이 등장한다. 아쉽게도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바람에 이들은 새로운 사탄을 찾아 나서는데 그들은 바로 여성, 흑인, 소수 인종, 성소수자, 유대인, 이슬람 등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뿌리로, 신의 군대라 하는 백인 민병대가 산속에서 군사훈련하며 아마겟돈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트럼프가 출마하고 나서 경찰 총격에 흑인이 사망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한 시골 마을 농장주가 과거 흑인 노예를 다룰 때 썼던 올가미를 집 앞에 경고용으로 내걸며 '그들의 아마겟돈'을 예고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KKK 노스캐롤라이나 지부인 '로열화이트나이츠'는 "트럼프는 인종으로 사람들을 통합시켰다"고 환호했고, 당선 축하 퍼레이드를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제, 미국에서는 씨앗, 닭, 총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남부 극우 백인들 이야기가 아니다. 대도시, 그리고, 백인이 아닌 소수 인종 시민들 이야기다. LA에서는 닭 우는 소리가 심해 시의회에서 한 가정당 키울 수 있는 수탉을 한 마리로 제한하라는 조례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민들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들의 아마겟돈'을. 이제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선택해야 한다. 누구의 아마겟돈에 참여할 것인지. 이 문제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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