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며칠 남지 않았다. 교육부는 중·고등학교 역사 국정교과서를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정대로라면 11월 28일 국정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낸다.

국정교과서는 한 달간 의견 수렴을 거쳐 2017년 3월 중·고등학교 현장에 투입된다. 현재 집필 중인 다른 교과목 교과서가 2018년 현장 투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역사 교과서는 내년부터 바로 학생들이 받아 보게 됐다.

국정교과서 사용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포럼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국정교과서, 친일 세력 및 박정희 왜곡 부추길 것

11월 22일 국정교과서 사용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긴급 포럼을 열었다. 포럼에는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 전 국사편찬위원장), 김준용 씨(한성여고 학부모회 회장), 주진오 교수(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심용환 소장(역사N교육연구소)이 참석했다.

역사학계 원로 이만열 교수는 국정교과서가 건국절 논란에 이어 친일파에게 '건국 공로자'라는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봤다. 이만열 교수는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썼고,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한 사실을 지적했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를 승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행동이었다. 이 교수는 이제 와서 '건국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역사적으로 맞지 않다고 했다.

이만열 교수는 과거 황우여 교육부장관 시절 '건국 공로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발의될 뻔했다고 전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일제강점기 친일했던 사람 중 일부도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기준으로 건국 공로자 명단에 포함될 여지가 있었다. 이 교수는 그렇게 되면 친일파가 건국 공로자로 둔갑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만열 교수는 국정교과서에서 '건국절' 용어를 굳히게 되면 발생할 문제들을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건국절 논란만큼 심각한 건 박정희 대통령 미화다. 심용환 소장은 건국절 왜곡보다 박정희 미화가 노골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 소장은 현행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현대사 부분이 어떻게 기술돼 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초등학생은 이미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운다. 올해 개정된 교과서에는 과거와 비교해 현대사 부분이 많아졌다. 심용환 씨는 이승만·전두환 정권을 '독재 정권'이라고 표현하는 데 비해 박정희 정권은 '장기 집권'이라고 칭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박정희에 대해서는 독재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장기 집권이라고 표현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때 건국절 논쟁을 격렬하게 했는데 진짜 바꾸고 싶었던 것은 박정희에 대한 평가다. 교과서로 조직적으로 박정희를 우상화하고 있다. 박정희가 가장 노골적이고 집요하다. 이런 작업에 더해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운다는 것을 보면, 북한에 버금가는 특정 인물 우상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대학 입시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쳤던 심용환 소장은 국정교과서가 발표되면 당장 수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고등학생은 문과·이과 가리지 않고 한국사를 배워야 한다. EBS가 발간한 <수능특강> 중 '민주주의 실현과 발전'이라는 부분은 여지껏 단 한 번도 내용이 바뀐 적이 없었다. 현대사에서 민주화에 기여한 부마항쟁, 6·3항쟁,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을 배운다.

심용환 소장은 초등 역사 과정에서 이미 박정희 미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올해 들어 세부 내용이 조금 변화를 맞았다. 심용환 소장은 "'민주주의 실현과 발전' 부분에 5·16 군사 정변이 들어가 있다. 5·16이 민주주의를 위한 과정이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교과서 내용을 보면 5·16과 유신 선포 모두 국내 사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한 행위였다고 묘사한다"고 말했다. 심 소장은 수능 시험에 나오는 부분은 아무리 편향·왜곡됐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외울 수밖에 없다며 문제점을 짚었다.

"최대 피해자는 학생과 학부모"

검인정교과서 체제에서 역사 교과서를 집필해 온 주진오 교수는 국정교과서 최대 피해자는 학생과 학부모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역사학자와 역사 교사 대다수가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국정교과서가 현장에 배포된다 하더라도 역사 교사들이 이의 없이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럴 경우 결국 학생들만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주 교수는 현재 국정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는 동료 학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직 역사 국정교과서 집필 기준과 집필진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제했다. 주 교수는 현재 집필을 맡고 있는 역사학자들 특히 역사 교사들이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 국정교과서 집필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진오 교수는 국정교과서를 집필 중인 동료 역사학자들을 향해 조언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날 포럼은 국정교과서 사용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개최한 모임이었다. 학부모 대표로 참석한 김준용 씨는 국정교과서가 민주주의 핵심인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씨는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그 의식이 문제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역사 속에서 살았던 다양한 인물을 소개하면서 당시에는 비주류였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 사용 반대안에 서명한 학부모들은 3만 5,000명을 훌쩍 넘겼다. 11월 5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기도 전에 수많은 학부모가 뜻을 같이했다. 이들은 만약 정부가 국정교과서 사용을 강행한다면 또 다른 형태의 시민 불복종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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