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1년생 모태신앙입니다. '보통의 교회'에서 '보통 청년'으로 있으면서 고민했던 문제를 나누고 싶어 글을 연재하려 합니다. 함께 신앙생활한 분들, '평범한 성도'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점도 있습니다. 기도 제목 나누기, 간증, 청년의 비전, 선교, 셀 모임, 교회 봉사, 신학의 부재 등이 그 내용입니다. - 필자 주
무세베니는 믿음의 지도자인가

'한국교회 동성애 조장 반대 집회'에서 설교한 목사가 우간다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Kaguta Museveni) 대통령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무세베니는 일부 기독교인에게 '하나님 말씀을 지키기 위해 4억 달러 원조를 거부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은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면, 4억 달러의 원조를 하지 않겠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무세베니는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인권적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우간다에 필요한 것은 원조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다"라면서 미국의 원조를 거부했습니다. 무세베니는 그렇게 '미국의 힘 앞에서도 신앙을 지킨 대통령'으로 한국교회에서 미화가 됐습니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세베니는 30여 년 동안 독재를 한 독재자입니다. 거기다가 '인종 청소'라는 이름으로 학대와 학살을 자행했던 자입니다. 국제인권위원회는 현재 200만 명을 강제수용한 그를 재소했습니다. 이 수용소에서는 매년 1,500여 명의 어린아이가 죽고 있습니다.

여성 인권유린은 정말 심각합니다. 에이즈 양성 반응자와 에이즈 환자로 판명된 정부군 병사들을 시켜 여성들을 강간하게 하고 강제수용소로 끌고 가는 일이 끔찍한 일이 무세베니 통치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수용소 여성들은 빈번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킨다는 무세베니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학살, 학대, 강간, 인권유린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동성애 반대 하나로 신앙이 평가받는 한국교회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무세베니 대통령이 보인 동성애 관련 행보만 놓고 본받아야 할 지도자감이라고 하시는 분, 반성해야 합니다(이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면, 그만큼 설교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무세베니가 동성애자를 핑계로 원조를 거부한 것에도 정치적, 사회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신앙적 결단만으로 원조를 거부한 게 아닙니다.

이 사례는 극단적입니다. 그러나 무세베니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기독교 신자가 존재하는 게 두렵습니다. 단지 '교회에 다니니까', '하나님 믿는다고 하니까', '저 사람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을 하니까'라는 생각만으로 믿음이 '있다', '없다'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기준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저는 그 답이 예수님과 성경에 있다고 봅니다.

믿음의 기준, 예수

김진 목사가 쓴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위즈덤로드)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예수님'의' 신앙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단순히 믿는(believe) 차원을 넘은 신념(faith)으로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있다', '없다'를 믿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 가치를 자신의 몸으로 삼아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을 우리는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마 6:10) 역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먹고 마셨습니다.

우리 능과 힘 대신, 주님의 능력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님나라입니다. 그런 희망 없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보이셨습니다. 하나님나라 가치를 무너뜨리는 구조와 싸우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나라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실을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가 보여 주신 것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아파하는 이에 대한 공감, 인간에 대한 존엄이었습니다. 이 같은 믿음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잔인한 폭력으로 일관하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의 기준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 읽는 교회 되어야

우리 믿음의 기준은 또한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나라와 그 의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알기 위해서, 더 나아가 하나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봐야 합니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상황에 맞게 해석해 나가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복음이라는 진리를 우리 상황에 맞도록 적용하는 연습을 우리는 계속해야 합니다.

성경은 헌법과도 같습니다. 나라 안의 활동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습니다. 법 해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사회가 바뀜에 따라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수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법치국가에서는 법을 따라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성경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뜻이 성경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경 읽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나누는 것이 어려운 교회 구조도 문제입니다. 하나의 뜻을 놓고서도 신학자들마다 성경 해석이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무비판적으로 목사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 말이 다 맞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나누겠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교회가 더 열려야 합니다. 공동체가 머리를 모아서 진리와 상황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수직적 구조를 넘어서야 합니다. 교회 구성원은 일하기 급급하기보다 성경을 읽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 뜻을 교회가 함께 나눠 가야 합니다. 

'진퉁' 믿음을 위해

서두의 무세베니를 다시 떠올려 보겠습니다. 동성애 반대만으로 그 사람을 하나님나라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 말씀과 삶, 성경을 아무리 들춰 봐도 그런 사람은 결단코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단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입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교회에서 하라는 것 몇 가지 한다고 해서 믿음이 있다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선교 단체 잘 나오고, 기도 모임 잘 나온다고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에 위안을 갖는 사람인지, 진짜 기독교인인지 물어야 합니다(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을 비아냥거리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 좋아 보이는 '짝퉁 신앙인' 판별을 위해 성경과 예수님보다 좋은 기준은 없습니다. '짝퉁'은 사전적 의미로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성경과 예수 없는 믿음,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짝퉁' 믿음입니다.

'진퉁' 믿음은 예수님을 따르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준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믿음에 대한 기준이 똑바로 서 있는 교회라면, '교회를 잘 나온다', '교회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만으로 믿음을 평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짝퉁 기독교인' 대신 이런 사람을 본받으면 어떻습니까.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애통하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를 위해 박해받은 사람 말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은 성경과 예수가 삶의 중심이 된 '진퉁' 기독교인입니다.

*도움을 얻은 글

김진(2009), <왜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위즈덤로드
장동민(2009), <대화로 풀어보는 한국 교회사 2>, 부흥과개혁사
"4억 달러 원조도 싫다"…우간다 反동성애법 강행, <동아일보> 2014-02-26
교계 1만여 명 "동성애는 죄, 음란 문화 즉각 중단돼야"…서울 곳곳서 동성애 반대 집회, <국민일보> 2015-06-29
도 넘은 반동성애 기독교인들의 '사랑 없는 혐오', <뉴스앤조이> 2015-07-06
wikipedia, "Yoweri museveni", (검색일: Nov,14, 2016)
https://en.wikipedia.org/wiki/Yoweri_Museveni#cite_note-54

Joseph Oloka-Onyango. 2004. 
"New-breed Leadership, conflict and Reconstruction in the Great Lake Reion of Africa: Sociopolitical Biography of Uganda's Yoweir Kaguta Museveni",
Africa Today - Volume 50, Number 3, Spring pp. 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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