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대부분의 사제와 수녀 연봉은 1,000만 원도 채 안된다. 사역지가 큰 성당이든 작은 성당이든 차별이 없다. 주임신부라 해도 1,500만 원 정도다. 심지어 주교나 추기경조차 그 흔한 동네의 아담한 교회 담임목사보다 적게 받는다. 시작부터 그 사역에 임하는 기초적 토양이 개신교와 많이 다르다.

그들이 독신임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런 심한 차이는 자조감마저 들게 한다. 신부를 해서 부자가 된 사제는 별로 없지만, 목사로 부자가 된 사람은 제법 널렸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히 제도에 책임이 있다.

고액 연봉은 헌금 남용

몇 해 전 가까운 지인이 한 세계적인 구호단체에 지원서를 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신청 서류에는 매우 특이한 조항이 하나 있었다. "당신이 원하는 연봉액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연봉을 미리 정해 놓고 적임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지원자가 필요한 적정 수준의 연봉을 먼저 말하라고 한다.

추가 설명을 들어 보니 이는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느꼈다. 후원자들의 성금을 최대한 성실하게 구호지에 전달하려면 관리와 행정에 사용하는 기본 경비를 최적화해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원자들 역시 그 단체의 기본 정신을 잘 이해하고 자신이 꼭 필요로 하는 만큼의 연봉만 스스로 산정하여 신청하는 것이다.

이건 결코 '열정 페이'를 유도하려는 게 아니다. 구호단체 입장에서는 지원자의 자질과 경력 등 적합성을 먼저 심사하여 복수의 후보자를 선정하고 그중 합리적인 연봉을 제시하는 사람을 선정하면 된다. 과도한 연봉을 요구하는 지원자는 당연히 탈락된다. 물론 저액의 연봉을 제시한다고 무조건 선택되는 건 아니다.

현재 대부분 교회들은 목회자 청빙 시 교회 형편에 따라 미리 연봉을 정해 놓고 지원자를 심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지원자에게는 그 연봉이 다소 부족할 수 있고, 반대로 다른 지원자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연봉이 너무 많으니 그걸 삭감해 달라고 요구하는 목회자는 거의 보기 힘들다. 특히 대형 교회 대다수 담임목사는 그저 교회에서 주는 대로 고액의 연봉을 넙죽넙죽 잘 받아 가고 있다. 부양가족이 달랑 한두 명밖에 없어도 교회 규정에 따라 무려 1~2억이나 받는 목회자가 있고 심지어 그 이상 받아 가는 목사도 있다. 이는 분명히 헌금 남용이다.

현재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 이상이 연봉 3,000만 원 이하다. 따라서 대략 6,000만 원 정도의 연봉이면 충분할 것 같은 어떤 목회자들이 1억 이상 받는 것을 보면 그게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이 대형 교회인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가 월 450만 원 생활비로 사역하는 것에 우리가 큰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이유다.

'연봉 분산'은 상투적인 악습

그동안 목사 연봉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목사 역시 교사의 직분이니 일반 교사 수준에서 조정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다. 또는 교인의 '평균이나 조금 웃도는 수준'을 말하기도 한다. 반대로 일부에서는 목회자를 무슨 제사장이나 교주로 착각해서 최고 예우를 하며 기업의 사장처럼 많이 주자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연봉 자율 신청제'는 매우 바람직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특정 사역자 개인의 경제적 사정을 정확히 알기란 그리 쉽지 않다. 너무 적게 주어도 부당하고, 너무 많이 주어도 잘못이다. 공교회는 신도들 헌금을 정의롭고 투명하게 집행해야 마땅하다.

대부분의 작은 교회들은 부족한 연봉을 조금이라도 더 올려 주고 싶어도 재정 형편 때문에 제대로 못 올려 준다. '한국목회자협의회'의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2/3 이상이 교인 수 50명 미만으로 1년 예산이 5,000만 원 이하의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재정이 풍부한 중대형 교회들이 사활적으로 돕지 않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특별한 묘책이 없다.

반면에 한국 전체 교인의 무려 80%가 출석하고 있는 중대형 교회들은 목회 지원비, 사택 관리비, 차량 유지비, 의료비, 도서비, 자녀 유학비, 그리고 교육비 등의 명목으로 연봉을 분산 처리하여 실제로는 너무 많이 주어서 헌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주변의 미자립 교회는 제대로 못 돕지만 그래도 자기 먹을 건 아주 성실하게 잘 챙기고 있다. 모든 지출을 통합하여 지급하는 '총액 연봉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경기도 P교회가 2014년 의료비로 집행한 금액은 3,444만 4,490원이었다. 이 금액은 전 교역자와 교회 직원을 모두 포함한 지출액이다. 이 중 심방권사를 포함 28명의 직원이 사용한 의료비는 고작 2건으로 326,620원(1%)에 불과했다. 반면에 담임목사 부부가 사용한 의료비는 3,411만 7,830원(99%)이었다. 그 내역은 더욱 가관이다. 진료비, 황토방비, 황토방 식대, 방문자 접대, 마데카솔같은 사소한 의약품비, 간병인 비용, 의료진 및 간호사 사례비 등을 모두 교회 돈으로 처리했다.

게다가 같은 해 목사 아들 결혼식 비용으로 교회는 식사비 3,360만 원, 꽃 장식비 410만 원, 본당 바닥 공사비에 110만 원을 지출했고 청첩장 발송비와 답례품 배달도 모두 다 교회 재정으로 집행했다. 그 외에도 여행비, 차량비, 도서비, 출판비, 그리고 관리비 등을 다 논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다. 억대의 연봉을 받는 목사가 추가로 교회 돈을 저렇게 물 쓰듯 한다. 담임목사가 황제다.

연봉 양극화와 목회 윤리

요즘 유독 중대형 교회 목회자들 자녀의 유학이 많은 이유도 연봉 분산 처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출국에서부터 귀국까지 일체의 경비를 모두 교회 돈으로 충당한다. 전술한 P교회 목사 아들은 런던에서 인천까지 유학길을 일등석으로 왕래했다. 이러니 자녀 유학 안 보낸 목사가 기특할 정도다.

일부 교인들은 반찬값과 아이들 학원비까지 줄이며 힘들게 헌금을 바치지만, 어떤 목사의 자녀들은 명품으로 휘감으며 유학은 기본이다. 이런 교회 공동체의 경제 정의는 동네 반상회만도 못하다.

결국 바람직한 대안 중에 하나는 목사 청빙 시 지원자들 자신이 필요한 연봉 총액을 스스로 판단하여 신청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누구라도 나중에 연봉이 너무 적거나 또는 지나치게 많다고 반발할 이유가 없다. 무리한 연봉을 요구하는 지원자는 심사 과정에서 탈락시키면 된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연봉으로 인한 양극화와 윤리적 논란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국의 목사직만큼 임금 격차가 큰 전문직이 드물다. 동일한 직분의 사역자에게 연봉 600만 원과 연봉 6억 원을 공존케 하는 교회는 분명히 성경적 상식을 벗어난 교회다. 무려 100배 차이다. 이는 사실상 교회가 공공연히 '삯꾼 목사'를 양성하고 있는 셈이다. 제 아무리 정통이란 간판에 열심히 금칠을 해도 진짜 사이비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목사로서 매년 억대 이상의 교회 돈을 태연히 받는 사람들은 일단 삯꾼 반열에 설 자질이 매우 뛰어난 위인들이다. 그렇게 돈 밝히는 목회자들을 사육하고 있는 집단은 결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그것은 '강도의 소굴'(마21:13)이다.

오늘날 적그리스도는 화려한 정치판이나 소란한 시장판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배도한 바리새인의 성전처럼 거룩함으로 위장한 정통 교회 안에서 승승장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건 무슨 복잡한 신학이 아니다. 성경의 상식을 대적하는 가르침은 모두 거짓된 교리다.

교부 폴리갑(Polycarpus)은 "거짓된 교리로 교회에서 설교하는 무리가 적그리스도다"고 말했다.

"교회는 섬기는 곳이지 돈을 벌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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