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청와대로 가자고 외치는 패기 넘치는 신학생들 곁을 지킨 두 어른이 있다. 박득훈 목사(새맘교회)와 이정배 교수(전 감리교신학대학교)다. 박득훈 목사는 설교자로, 이정배 교수는 성찬 집례자로 신학생들과 함께했다. 후배들의 결기를 묵묵히 지지해 주고, 자신이 맡은 부분에서는 청년보다 뜨거운 열정을 토해 냈다.

박득훈 목사는 아모스 5:21-24를 본문으로 설교했다.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 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친교 제물로 바치는 살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 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설교 제목은 '꿈을 품고 저항하라'. 박득훈 목사는 신학생들이 꿈을 품기 전에 과거 한국교회가 반복적으로 행했던 거짓 종교 행위와 절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본문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너희들의 모든 종교 행위, 제사드리는 것도 살찐 짐승도 역겹다. 보기 싫다. 듣기 싫다. 집어쳐라. 제발 좀 그만하라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박득훈 목사는 '꿈을 품고 저항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과거 불의한 사회를 보면서도 그것을 덮기 위해 거룩한 종교 행위로 포장해 왔던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행위를 반복하면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던 김삼환·김장환 목사를 가리키며 "이런 때 대형 교회 목사들은 그런 데 가면 안 된다. 이 광장에 나와 외쳐야 한다"고 말했다.

박득훈 목사가 한 문장씩 외칠 때마다 객석에서는 굵은 목소리의 '아멘!'이 터져 나왔다. 정의와 공의를 강물처럼 흘려보내라고 말할 때는 더 큰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박득훈 목사는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와 공의는 차가운 것이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다.

"정의란 무엇이고 공의란 무엇인가. 아픈 사람, 눈물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너무 사는 것이 힘들어서 집주인에게 죄송하다며 남은 돈을 남겨 놓고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울 때 나도 같이 우는 것이다. 그들이 부르짖을 때 같이 부르짖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와 공의 핵심이다."

박득훈 목사의 설교에 신학생들이 귀를 기울였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객석이 숙연해졌다. 작은 체구의 박득훈 목사지만 목소리는 대한문 광장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당연히 끌어내려야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외쳤다. 이 땅에 정의를 가로막는 세력을 정의의 강물로 쓸어내리는 것이야말로 저항이고 그 길을 힘차게 걸어 나가 달라고 당부했다.

성찬을 마치고 간절히 기도하는 이정배 교수(오른쪽). 뉴스앤조이 최유리

성찬 집례자 이정배 교수는 '거리의 신학자'라 불린다. 그는 성찬을 시작하며 "이렇게 오늘 여러 신학생들이 함께 모였다는 것은 엄청난 기적이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또 한 번 기록해야 할 아주 중대한 날이다. 추운날 몸과 마음을 다해, 예수께서 죽으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그 목요일 밤을 생각하며 우리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 성만찬을 거행하자"고 외쳤다.

이정배 교수는 거리를 메운 신학생들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했다.

"하나님 여기 이 깃발을 보십니까. 생전 만날 수 없었던 우리들이 당신을 따르겠노라고 신학교에 들어갔던 그 신학교의 깃발을 가지고 우리 이렇게 모였습니다. 오늘 이 기막힌 자리에서 우리는 당신의 살과 피를 몸에 모셨습니다. 우리 속에 모신 당신의 살과 피로 우리 조국을 구하게 하시고 조국의 앞날을 저희가 감당하게 하소서."

이정배 교수와 박득훈 목사는 기도회부터 행진, 성찬 끝까지 신학생들과 함께했다. 공식 행사를 마치고도, 경찰과 몸싸움으로 연행된 학생들이 석방됐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현장을 뜨지 않았다.

다음은 박득훈 목사 설교 전문이다.

꿈을 품고 저항하라

추운 날씨에 많이들 나와 주셔서 정말 고맙다. 이 자리로 오면서 이 엄중한 시기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많이 두려웠다. 와 보니까 우리 세월호 합창단이 있었다. 그 순간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 없었다. 오늘 말씀을 잘 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동안 세월호 유족을 위로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 위로받은 사람은 우리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어두운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불의의 세력이 아무리 견고해도 저렇게 끝까지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큰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도 정말 감사하다. 저는 우리 신학도들에게 좀 더 멋진 교회와 좀 더 아름다운 나라를 물려줬어야 할 선배다. 이 못난 선배로서 한편으로 여러분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맙고 한편으로 많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이 귀중한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을 증언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 가슴을 다하여 말씀을 나누겠다.

오늘 읽어 드린 말씀을 통해 저는 '꿈을 품고 저항하라' 이 한마디 하고 싶어 이 자리에 왔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 교인·목사·신학생들은 꿈을 품고 저항하기 전 먼저 청산할 게 있다. 여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먼저 청산하자고, 교회를 향하여 나부터 청산하자고 외쳐야 한다. 거짓 종교 행위와 절연하자는 외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당시 이스라엘 종교인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지도자·사람들을 향해 답답한 심령을 토로하고 있다. 너희들의 모든 종교 행위가, 제사드리는 것도 살찐 짐승도 역겹다, 보기 싫다, 듣기 싫다, 집어 쳐라, 제발 좀 그만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가. 그런데 하나님이 얼마나 속상했으면 이렇게까지 말씀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악행을, 어마어마한 악행을 종교적인 행위로 덮어 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범죄행위는 정의를 소태처럼 쓰게 했다.

정의는 원래 맛이 달고 또 달아야 한다. 정의는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그들의 아픈 모습을 위로하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정의는 달고 단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소태처럼 쓴 맛이다.

대한민국 정의가 얼마나 소태처럼 쓴지 알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이 진실을 밝혀 달라고,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그렇게 그렇게 부르짖고 외쳤다. 그런데 형사 책임 수사권, 조사권 안 주고 쓰레기 같은 특별법을 겨우 허락했다. 그런데 우리 유족들은 참으로 눈물 난다. 그 엉터리 같은 특별법이라도 있어야 진실을 캘 수 있는 실마리가 있지 않겠나 해서 특별법을 받았다. 그런데 특조위 활동을 그렇게 방해하더니 결국 지난 여름에 끝내 버리고 말았다.

모든 것이 빌어먹을, 합법적이어야 한다. 그놈의 합법. 너무나 듣기 싫다. 그 합법에 의해 보장된다고 하는 정의, 그 빌어먹을 정의는 우리에게 소태처럼 쓰고 쓴 거다. 이 종교 지도자들이 그 못된 행위를 덮으려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제사드리고 열심히 노래 부르고 열심히 예배드렸던 것이다.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이 바로 그런 짓을 하고 있지 않나.

청와대에서 부르니까 대형 교회 목사들이 날름 달려가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때 대형 교회 목사들은 그런 데 가면 안 된다. 이 광장에 나와서 외쳐야 한다. 먼저 회개하고 자복하고 내가 잘못했노라고, 당신을 지지한 것 잘못했노라고, 석고대죄한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엎드려 회개하고, 이제라도 내가 당신에게 외칩니다, 당장 내려오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른다고 들어가는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신학도들 이제 이런 짓과 결별하겠나. (아멘!) 그런 과거를 청산하는 데 앞장서겠는가. (아멘!) 그런 자들이 교회 지도자 행세하는 것 더 이상 놔둬서는 안 된다. 결의하자. 그들을 향해 물러가라고 외치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두 번째 꿈을 품고 저항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정의를 강물처럼 흘려라. 공의를 멈추지 않는 물처럼 흐르게 하라. 서로 아끼는 마음이 개울처럼 흐르게 하라.

성경에서 정의와 공의는 차가운 것이 아니다. 정의란 무엇이고 공의란 무엇인가. 아픈 사람, 눈물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너무 사는 것이 힘들어서 집주인에게 죄송하다며 남은 돈을 남겨 놓고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울 때 나도 같이 우는 것이다. 그들이 부르짖을 때 같이 부르짖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와 공의의 핵심이다.

그런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 강물처럼 그 어느 것에 의해 막히지 않고 도도하게 흐르게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꿈을 품으라는 얘기다. 오늘 우리는 꿈을 분명히 하자. 박근혜 한 사람을 물리치는 것으로 이 혁명은 완성되지 않는다. 지금은 새누리당, <조선일보>, <동아일보>도 다 박근혜 욕을 한다.

나는 솔직히 박근혜보다 그런 사람이 더 밉다. 하나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그런 놈들을… 아! 제가 참겠다. 더 사악한 놈들이다. 더 악질적인 놈들이다. 우리 국민은 그런 사람들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이제 박근혜를 밀치고 또다시 자기 세계를 만들려고 음흉한 수작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김병준 지명을 철회한다고 우리가 안심하면 안 된다. 이 사람들은 절대로 회개할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든 자기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이다.

복장이 터질 것 같다. 304명이 죽었을 때는, 그 아까운 생명들이 찬물에 빠져 괴로워할 때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었지만, 자기 생명을 구하겠다고 모두가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 노력의 100분의 1, 1,000분의 1만 했어도 우리 아이들은 살았을 거다. 가슴 아프지 않나. 지금 이 시점에 살아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놔두고 안전할 수 있나. 안 된다.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놔둘 수 있다? 안 된다 끌어내려야 한다. 퇴진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마음속에 꿈이 분명해야 한다. 박근혜 한 사람을 물리치는 것이 우리 꿈이 아니다. 왜 그가 내려와야 하는가. 우리 꿈은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 꿈을 오늘 확실히 하겠나. 가난한 자들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아니하고, 슬퍼하지 아니하고, 개돼지 취급이 아닌 사람 취급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대우받는 그런 놀라운 세상. 그게 우리 꿈이다.

여러분 꿈에는 당연히 실천이 따라야 한다. 가만있는다고 그 꿈이 하늘에서 떨어져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게 아니다. 그 꿈을 실행하는 것을 막는 불의의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한다.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이다.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게 하라. 이 땅에 정의를 가로막는 세력을 강물로 쓸어버려라 하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저항이다. 우리 저항의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다. 그제와 어제, 사회운동가들과 함께 제주도에 갔다 왔다. 제주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저녁 5시 만종 기도를 하면서 설교할 때 두 사람을 봤다. 한 사람은 거의 70에 가까운 노인이 이 땅에 평화를 달라고 삼보일배를 하러 내려온 분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미국의 한 자매가 강정마을 평화 지키겠다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그들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할아버지는 함석헌 선생을 얘기하면서 역사를 궁극적으로 이끄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역사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여러분, 오늘 여기 있는 여러분이 역사의 주인공이다. 여러분이 침묵하면 이 나라 역사는 한 걸음도 앞서갈 수 없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 어둡고 캄캄한 시대, 여기 어디 한 사람 없느냐, 어디 한 사람 없느냐, 딱 한 사람만 남아도 내가 너희들 용서하겠다고 하셨다. 왜 하나님에게는 그 한 사람이 절박하게 필요한 것인가. 하나님은 한 사람만 남아도 그 한 사람 통해서 이 땅에 정의의 역사를 이루실 분이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마저 없다면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절망이다. 여러분이 역사의 주인공이다. 뜨거운 맘, 담대한 마음으로 용기 있게 정의를 가로막고 있는 저 불의의 세력을 향해 담대하게 용감하게 전진하며 저항하자.

그것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요 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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