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과학은 자연현상을 탐구해 그 인과관계를 밝힌다. 과학은 신앙에 도전을 주기도 한다. 초월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통념과 이해를 흔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뇌과학'이다. 오늘날 이 분야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 마음, 자아, 가치 등이 뇌가 만들어 낸 부산물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개신교가 말하는 영혼, 자유의지가 뇌가 만들어 낸 허상이라는 걸까.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11월 7일, '뇌과학과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21세기 기독교는 영혼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기독교인 신학자(김기현 박사)·신경학자(허균 교수)·철학자(김남호 교수)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포럼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강당에서 열렸다. 주제가 흥미로워서인지 200여 명이 좌석을 가득 채웠다. 저녁 7시 시작한 포럼은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청중들은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며 세 연사의 강연에 집중했다.

허균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하나의 컴퓨터

허균 교수(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신경학과)는 뇌를 하나의 컴퓨터로 비유했다. 사람이 태어날 때 뇌는 이미 컴퓨터처럼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했다. 욕망, 가치 판단, 선택, 행동, 수행 평가, 학습 등 뇌 안에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은 이러한 프로그래밍의 결과다.

한 예로 '욕망'을 살펴보자.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뇌에 공급되지 않으면, 인간은 어떤 것도 욕망할 수 없다. 단순히 멍한 상태가 된다. 청중들이 늦은 저녁 비가 내리는 신촌 거리를 뚫고 연세대학교 의대 강당에 찾아와 강의를 듣는 것도, 도파민이 뇌에 공급됐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는 뇌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적인 예로 착시 효과가 있다. 아래 그림에 빨간 선은 직선이다. 그런데 육안으로 볼 때에는 두 선이 굽어보인다. 이는 주변에 있는 다른 선의 영향을 받아 뇌가 작용한 결과다. 이처럼 뇌는 사물을 인지할 때 의미를 부여한다. 눈, 코, 입, 귀 등의 감각기관으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뇌는 머릿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구현한다.

두 빨간 선이 어떻게 보이나.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독교 신앙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뇌과학'이 아니라 '뇌과학주의'라고 허 교수는 말했다. 뇌과학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 자아, 자유의지, 윤리와 가치 등의 개념이 모두 다 실체가 아닌 환상적 부산물이며, 인간의 진정한 실체는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뇌에 의해 작동되는 불확실성의 정보 처리 기계"라고 본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는 기독교 인간관을 흔드는 주장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실체가 무엇일까. 허 교수는 과학만으로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신학·철학 등 여러 분야 지식인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몸과 영혼, 다른 개념이 아냐

김기현 박사(침례신학대학교 종교철학·현대영미신학)는 "인간에게 영혼은 없다"고 말했다. 성경에는 '영', '영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김 박사가 잘못 말한 걸까. 김 박사는 이 단어 의미를 살펴보며 강연을 시작했다.

김기현 목사는 "인간은 영혼이 없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성경에 나오는 영, 영혼을 원문으로 번역하면 '네페쉬(히브리어)'다. 네페쉬는 구약에 755회 등장한다. 영어로 soul, 한국어로는 영혼이라고 번역된다. 김 박사는 한스 발터 볼프(Hans Walter Wolff)의 해석을 인용하면서 네페쉬를 해석했다.

"네페쉬가 의미하는 것은 '영혼'이 아니다. 네페쉬는 인간 모습 전체와 특히 인간의 호흡을 총망라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인간은 네페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인간)가 곧 네페쉬이다." <구약성서의 인간학>(분도출판사) 29쪽.

네페쉬 자체가 신체이자 영혼이고, 감정이자 의지라는 의미다.

김 박사는 영국 IVP가 출간한 <새성경사전>에 실린 '영혼'의 뜻도 소개했다. "대개 네페쉬는 죽으면서 떠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결코 죽은 자의 영혼으로 사용된 적은 없다." 김 박사는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구성됐다는 이원론에 사로잡혀 육체가 죽으면 영혼은 곧바로 천국으로 간다는 전통적 이해는 성경의 해석과 상당히 어긋난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가 강연에 집중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인간이 물질인 육체와 비물질인 영혼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원론은 플라톤적 해석이다. 김 박사는 이를 지적하며, 예수와 소크라테스가 죽음 앞에서 보인 태도를 비교했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다."(히 5:7) 소크라테스가 보인 태도는 달랐다. 그는 평온했다.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제자들을 꾸짖고, 숙연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영혼이 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으로 봤다고 김 박사가 말했다. 그는 "죽음이라 일컬어지는 것으로서 몸에서의 혼의 풀려남과 분리가 아니겠는가(<플라톤의 네 대화편>(서광사))"를 인용했다. 예수는 달랐다. 김 박사는 예수가 죽음을 철저한 단절과 파괴로 인식했다고 했다. 더 이상 아버지의 몸을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으며, 어떤 교류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태로 인식했다는 것.

김 박사가 발제를 시작하며 언급한 "인간에게 영혼은 없다"고 한 의미는 플라톤적 영혼을 가리킨다. 몸을 감옥으로 여기는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달리 예수는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봤다. 기독교는 몸의 제자도다. 김 박사는 <사람을 위한 영성>에 쓴 추천사를 인용하며 그의 인간론을 소개했다.

"기독교 영성의 요체는 육화에 있다. 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현존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성전이다. 영지주의는 몸을 부정하고, 세속주의는 몸을 숭배한다. 기독교는 몸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예배한다. 몸을 떠난 구원과 부활, 영성은 없다."

김남호 교수는 '구성 관점'에서 인간론을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원론 vs 일원론, 우리가 채택해야 할 인간론은?

주요 인간론을 거칠게 나누면, 실체 이원론과 동물주의(일원론)로 구분할 수 있다. 실체 이원론은 인간이 정신적 실체(영혼)와 물질적 실체(신체)로 결합되어 있다는 입장이다. 동물주의는 말 그대로 인간이 하나의 유기체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김남호 교수(울산대 철학과)는 두 이론 모두 기독교의 부활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각 이론이 갖는 난점을 설명하며 그 대안으로 '구성 관점'을 제시했다.

실체 이원론은 인간을 두 실체(물질적 실체, 정신적 실체)의 결합체로 본다. 김 교수는 두 실체가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론적 자족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서로 다른 두 실체가 인과적 상호작용이 가능한지 근거가 부족하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동물주의(일원론)도 부활 관점에서 비판했다. 성경에는 사람이 부활하면 자연의 몸을 버리고 신령한 몸을 취한다고 나와 있다(고전 15:44). 부활 전 육체는 죽으면 부패하는 몸이다. 부활 후 몸은 신령한 몸으로 부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활 전 육체와 부활 후 몸은 동일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온다. 동물주의가 옳다면 부활 전과 부활 후 신체가 같아야 한다. 따라서 동물주의 해석은 잘못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주제가 흥미로워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포럼에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남호 교수는 대안으로 구성 관점을 제시했다. 구성 관점에서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인간 인격'으로 본다. 구성 관점에는 세 개념이 등장한다. 김 교수는 베이커 이론을 인용해, '인격', '인간 유기체', '인간 인격' 개념을 소개했다. 인격은 일인칭 시점을 본질적으로 가진 존재, 인간 유기체는 생물학적 종, 즉 호모사피엔스를 가리킨다. 인간 인격은 인간 유기체에 의해 구성된 인격이다.

인간 인격은 존재론적으로는 일원적이다. 인간 유기체가 인간 인격을 구성할 때 인간 인격만 존재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즉 인간 유기체와 인간 인격이 동시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인간인격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주의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김 교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구성 관점에 따르면, 인간 인격은 인간 유기체에 의해 구성된 인격이다. 부활 전과 후 인간 인격이 같다는 건 동일한 일인칭 시점을 갖는 걸 의미한다. 인간 유기체는 변화할 수 있다. 완전하게 교체될 수도 있다. 즉, 구성 관점은 신체나 신체 이외의 물질적 조건들을 인간 인격의 핵심적인 요소로 보지만, 동일성을 인간 유기체의 동일성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동물주의가 직면하는 난점을 피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인간 인격은 하나의 통합체를 이루는 구성 관계에 의해 형성되므로, 영혼과 같은 비물질적 부분이나 요소를 끌어 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인칭 시점을 인격의 필요충분조건으로 보기 때문에, 내적 체험의 고유함과 풍요로움을 확보해 줄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고 말했다.

과학의 발전은 기독교인이 갖는 통념에 도전을 준다. 뇌과학뿐 아니라, 진화생물학·천문물리학·프랜스휴머니즘 등의 분야에서 신선한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번 과신대 포럼에서 발제자들은 이를 대비해 참석자들에게 여러 서적을 접할 것을 권했다. 추천 도서로,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IVP), <과학과 성경의 대화>(IVP), <오리진>(IVP),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 <자유의지는 없다>(시공사), <자유의지 논쟁>(생명의말씀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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