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아기일 때 무척 예민했어요. 아빠도 얼굴을 들이대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새벽마다 우는 아이를 업고 밤을 지새웠어요. 아이가 왜 이렇게 예민할까. 생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하더군요.

생모가 처한 환경이 좋지 않았어요. 남자 친구 반대에도 아기를 낳으려고 쉼터를 찾았어요. 생모는 쉼터에서 누구와도 어울리려 하지 않았어요. 혼자 떨어진 채 십자수만 했대요. 십자수를 한 건, 아이가 영리해지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아기 이름도 지었대요, 세리라고…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의미예요. 얘기를 듣고 생모가 굉장히 힘들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미혼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10월 24일 상암교회(김봉수 목사)에서 만난 유지숙 집사(49) 얘기다. 그는 공개 입양한 두 딸의 엄마다. 아이를 키우면서 미혼모에 관심을 갖게 된 유 집사는 주변 입양 부모들과 함께 6년 동안 미혼모 쉼터를 찾았다.

이날 유지숙 집사와 함께, 또 다른 입양 부모 이서경 집사(35)를 만났다. 이 집사도 3년 전 딸을 입양했다. 동방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입양 가정 자조 모임에서 유 집사와 만나 인연을 쌓았다. 지난해부터 유 집사를 따라 상암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은 해외 입양 의존도가 높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국내 입양 비율이 해외 입양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내 입양은 전체 입양에서 64.6%를 차지했다. 그만큼 국내에서 입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입양 가정 부모들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 입양에 대한 편견이 많다고 한다. 유지숙 집사와 이서경 집사를 만나 입양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들이 자연스럽게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과정도 들을 수 있었다. 이들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자식 문제는 부부가 결정하는 것

- 입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유지숙 집사(유):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막연히 입양을 생각한 적이 있어요. 동네에 YMCA와 구세군이 운영하는 고아원이 있었어요. 고아원 아이들이 주일학교에 나왔어요. 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특별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아빠의 손길을 느끼고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가정이요. 그런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한 뒤 몇 년 동안 아이가 안 생겼어요. 입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막상 입양을 하겠다고 생각하니 제 안에 있던 편견과 두려움에 부딪히게 되더라고요. 시부모에게 죄송한 마음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요. 차일피일 미루다 같이 입양을 위해 기도했던 동료 교인이 입양하는 걸 보면서, 입양을 신청했어요.

이서경 집사(이): 아이를 너무 좋아해 결혼한 뒤 바로 아이를 가지려 했어요. 그런데 난임이었어요. 난소에 혹이 있어 두 차례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잘 안 됐거든요. 그래도 불임은 아니었어요. 온갖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하며 비싼 약도 복용했어요. 그러던 중 갑상선에 암이 발견됐어요.

목에 있는 신경세포로 수백 개 암세포가 전이될 정도로 중증이었어요. 항암 치료를 받으면 2년 동안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의사가 경고했어요. 치료 때문에 직장도 그만둬야 했고요.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니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9일 만에 목소리가 돌아왔어요. 몸이 회복되는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이때부터 입양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고, 꼭 직접 안 낳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입양도 안 했는데, 동방사회복지회에서 하는 입양 가정 자조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어요.

- 시댁이나 친정 어른이 반대하지는 않았나요.

: 시댁 어른과 시누이는 나이가 아직 어리고 가능성이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했어요. 그런데 자조 모임에서 만난 멘토 유지숙 집사가 제게 조언해 줬어요. 자녀 문제만큼은 부부가 결정하라고. 시댁 허락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저질러 버렸죠. 지금은 다들 아이를 너무 좋아하세요.

: 저 같은 경우에는 친정어머니가 생각이 열려 있었어요. 아이가 안 생기니 어머니께서 동방사회복지회 행사 소책자를 보여 주며 참석을 권하기도 했어요. 동생들이 목사이고, 어머니도 기독교인이라 입양에 긍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 입양은 결혼, 출산처럼 가족이 되는 방법 중 하나다. 이서경 집사 가족(위)과 유지숙 집사와 두 딸(아래)이다. (사진 제공 이서경, 유지숙)

"날 낳은 엄마라면 사 줬을 거야"

- 공개 입양이 요새는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많지 않았던 거 같아요.

: 2005년에 큰딸을 입양했는데, 이왕 입양을 하기로 한 거 크게 터뜨리고 싶었어요. 방송국에 제보를 해서 방송에 나오기도 했어요. 목사와 교인들에게도 알렸고요. 

: 입양 자조 모임에서 공개 입양 가정 사례를 들으면서, 공개 입양을 결심했어요. 무엇보다 건강해 보였어요. 사실, 입양을 공개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거 같아요. 출산, 결혼처럼 입양도 가족이 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거든요.

- 아이들이 자신이 입양아라고 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나요.

: 저는 큰딸이 갓난아기일 때부터 말했어요. 비록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엄마가 너를 낳지 않았어. 그래도 넌 내 딸이야 하나님이 너를 내 딸로 주셨어. 우린 가족이야' 하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어요. 그 이유는, 부모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거든요. 막상 아이들이 말을 알아들을 나이가 되면, 엄마가 준비되어 있지 못해 말을 못 하는 경우가 있어요.

: 저도 지금 아이가 세 살인데, 벌써부터 말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대개 입양을 얘기할 때가 되면, 부모가 울면서 고백하고 아이는 상처받는 장면을 연상해요. 전혀 안 그래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입양은 축복이고 좋은 일이에요. 아이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아이가 즐겁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요.

: 아이들은 입양이 부정적이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해요. 여기에 큰 영향을 끼친 게 자조 모임이에요. 모임에 참석하면 다들 입양 가족들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죠. 물론, 학교에 처음 갔을 때 자기처럼 입양 가정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고립감을 느낄 수 있어요. 이때, 자조 모임이 큰 힘이 되요.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요. 우리 교회도 입양을 한 가정이 여럿 있어서 다른 가정이 입양하기에 좋은 여건이에요.

두 아이가 모두 입양아다 보니, 아이들이 이를 이용하기도 해요. 마트에서 아이들이 사 달라는 물건을 안 사 줄 때 아이들이 이렇게 말해요. 우릴 낳은 엄마라면 사 줬을 거라고. 또, 아이들이 잘못한 일이 있어 벌세우면 아이들이 이렇게 대꾸도 해요. 친엄마라면 벌세우지 않을 거라고.(웃음) 아이들이 편하게 농담을 하는 거죠. 건강하다고 봐요. 가정에서 입양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양은 엄마가 된다는 것, 편견과 싸울 용기를 갖게 돼"

-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부분은 전혀 없었나요.

: 힘들 거라는 질문은 입양이라는 독특성을 기반한 거 같아요. 입양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자녀 양육이 힘든 거 같아요. 어느 부모든지 다 갖는 어려움이요. 우리 큰애가 사춘기를 보내고 있어요. 사람들은 아이가 입양아기 때문에 생모를 찾아간다거나 피가 달라서 더 갈등이 있다고 착각해요. 잘못된 인식이에요.

부부도 서로 피가 안 통하는데 잘 지내요. 우리 가족은 네 명의 가족이 모두 피가 안 통해요. 가족은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사랑 공동체예요. 사랑으로 묶여 있어요. 살아가면서 함께 사랑을 나누고 정을 쌓고 같은 시간을 보내며 한 밥상에서 밥을 먹는 가족이에요.

제가 겪는 어려움은 입양이 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아이의 기질에 맞는 맞춤형 부모이고, 아이의 꿈을 지지하는 서포터 엄마인지, 사춘기를 겪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등이 고민이에요.

: 저는 아직까지 힘든 게 없어요. 아이가 아직 어리고 진짜 사회로 들어가지 않았거든요. 아이가 입양이 무엇인지 인식하기 시작하고 학교에 들어가면 힘든 일도 생길 것 같아요.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게 제 꿈이에요.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리 사회 안에 있는 잘못된 편견과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동방사회복지회에서 하는 입양 인식 개선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어요. 초·중·고를 돌며 '다르지 않은 가까운 가족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어요.

: 입양을 한다는 건 엄마가 된다는 거예요. 아이에 대한 책임과 용기가 생겨요. 입양 부모들을 보면 모두 아이를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이 땅에 입양에 대한 잘못된 시선, 걱정을 헤쳐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갖는 거 같아요.

▲ '우리 딸 생모는 누구였을까' 하는 고민에서 유지숙 집사와 이서경 집사는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진 제공 이서경, 유지숙)

입양하면서 깨진 사회적 편견들

- 미혼모에 관심을 갖고 쉼터에도 봉사 활동을 간다고 들었어요.

: 큰딸 생모 얘기를 듣고 동방사회복지회 자조 모임 방향을 이쪽으로 틀었어요. 우리끼리 즐겁고 신날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한 달에 한 번 미혼모 쉼터에 찾아가 고기도 구워 먹고 맛있는 음식을 지어먹었어요. 어린이도서연구회 강사를 초빙해 동화를 읽고 얘기하는 시간도 가졌어요. 지금은 교회가 이 일을 일부 맡아서 진행하고 있어요.

 : 지난해 교회에 등록하고 나서 처음 미혼모 쉼터를 찾았어요. 특별히 한 건 없고, 키즈 카페 가서 아기들과 시간 보내고 같이 차 마시며 얘기했어요. 그런데도, 다들 그렇게 좋아했어요.

 : 미혼모를 만나면서 굉장히 많은 사고가 깨졌어요.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입양 가정보다 더 심해요. 사회는 미혼모들에게만 주홍글씨를 덧씌우고 있어요. 남자들도 책임이 있는데, 남자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아요.

두세 번 쉼터를 찾아오는 이들도 있어요. 미혼모들은 아이를 낳고 입양을 보내면 한 달 후 쉼터에 나와야 해요.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어요. 그러면 남자를 의지하게 되는데, 남자들은 그 사랑을 이용하고 배신해요. 미혼모는 사회가 편견으로 보는 그런 여성들이 아니에요. 누구든지 이런 경우에 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회가 정작 보호해 줘야 할 미혼모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어요.

- 입양을 통해 시각이 많이 바뀌었을 거 같아요.

: 딸들로 인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어두운 부분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그늘지고 소외된 곳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아이를 통해 두 가지를 얻었어요. 첫째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에요. 아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에요. 입양을 결정하기 전, 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자녀로 삼을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걱정했어요. 생명은 대단한 힘이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미혼모의 자녀라고 하지만 막상 아이를 만나니 이 아이는 하나님이 준 생명이고 거룩하고 존귀한 자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아는 사회적 편견도 깨졌어요. 내가 입양하지 않았더라면, 입양아와 미혼모를 향한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저 역시 편견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니까. 다른 소외된 이들도 편견 어린 시각으로 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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