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금처럼 통치 행위를 해서는 안 되고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사자 박근혜 대통령이 또다시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국정 농단을 '최순실 사건'으로 언급한 박 대통령은 자신의 불찰로 생긴 일이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특검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하야'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외 여러 현안이 산적한 만큼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돼선 안 된다"며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날 의지가 없음을 시사했다.

대국민 담화와 관련해 2007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는, 박 대통령이 비정상적인 행보를 보인다며 비판했다. 인 목사는 11월 4일 <뉴스앤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현실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닌가, 정상적이라면 이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11월 4일 기준) 5%를 찍었다. 시민단체들은 하야와 탄핵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인 목사도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유지하기에는 신뢰를 잃고 권위가 실추됐다고 평가했다. 총리나 장관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원칙적으로 '하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만 인 목사는 하야나 탄핵은 국정을 소모할 일이 크다며 박 대통령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하야나 탄핵으로 인해 발생할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때문에 하야에 준하는 조처를 대통령이 해야 한다. 진솔하게 사과하고, 이선으로 물러나야 한다. 오늘 자신이 밝힌 것처럼 검찰 조사가 필요하면 받아야 한다. 다만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총리'에게 넘겨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면 타개책으로 3일,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교수(국민대)를 국무총리로 내정했다. 김 교수는 총리직을 수락했다. 인 목사는 이 역시 잘못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보여 준 셈이라고 했다.

"김병준 씨의 총리 자격 여부가 아니라, 프로세스가 문제다. (대통령) 본인이 지명해서는 안 된다. 특별히 야당이 총리를 추천하게 해야 한다. 야당 협력 없이 문제를 풀기 어렵다. 그런데 떡하니 총리를 세워 버렸다. 난 대통령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간다. 국민들이 '아직 정신 못 차렸다'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분노의 물결이 더욱 커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은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 박근혜 대통령은 11월 4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들끓자 열흘 만에 재차 사과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2007년 한나라당 경선 후보 청문회 때도 최태민 논란

인명진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씨 인연이 언젠가 짐으로 작용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인 목사는 2007년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 검증 청문회에 참여한 바 있다. 당시 최순실 씨는 몰랐지만, 그의 부친 최태민 씨와 박근혜 후보 사이에 루머가 상당했다고 기억했다.

박근혜 후보 검증 청문회 화두는 최태민이었다. "최 씨에 대해 국민이 혼란스럽게 생각할 것 같다"는 한 위원의 질문에 박 후보는 "실체가 없는 일에 대해 똑같은 얘기를 열 번 하면 실체가 있는 것으로 되냐"고 반문했다. 최 씨와 관련한 여러 의혹이 있지만, 실체가 없다는 식으로 빠져나갔다.

인 목사는 청문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비서관을 지낸 선우련 씨가 비망록에 '박 대통령이 최 씨를 거세하고 구국봉사단 해체를 지시했다'고 적었다"며 내용을 아는지 물었다. 박 후보는 "비서관이라도 사실에 입각한 증언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짧게 말했다.

"당시 청문회 말미에 박 후보께 '최 씨 가문과의 인연이 악연이 되지 않을까, 평생 짐이 될 것 같다, 걱정스럽다' 정도로 말했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박 후보가 정권을 잡으면 이 문제가 정권에 부담이 되겠다' 정도로 생각했다."

"박정희 동상 건립 추진, 타는 불에 기름 끼얹는 짓"

국정 농단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11월 2일, 박정희출생100년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정홍원 전 국무총리 등 친박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기념사업회는 광화문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인 목사는 "타는 불에 기름 끼얹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때가 어느 때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박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는 이때 왜 하필 그런 이야기를 꺼내 국민들 분노를 북돋는가. 동상 건립은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당장 안 하면 어떻게 될 만큼 급한 일도 아니다. 동상 건립은 타는 불에 기름 끼얹는 어리석은 짓이다.

차라리 동상 세울 돈으로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 쓰는 게 훨씬 낫다. 안 그래도 군사정권 출신이 청와대 요직을 차지하고, 역사 교과서도 국정화하는 등 유신 냄새가 나는 마당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를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판단력 없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보좌하니 나라에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 인 목사는 "박 대통령이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상'이라면 이렇게 못 한다"고 했다. (사진 출처 포커스뉴스)

"기독교인 예언자적 목소리 내야"

통화 말미 인명진 목사는 부끄럽다고 말했다.

"최태민이는 목사가 아닌데 (사람들이) 목사라고 해서 창피해 죽겠다. 주변에서 목사 가족이 나라를 말아먹었다고들 한다. 덩달아 기독교도 부끄러움의 대상이 됐다. 물론 교회도 잘못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불통으로 일관해 왔는데 교회는 예언자적 발언을 게을리했다. 지도자들 중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은가. 대통령을 위한 기도를 못 해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통령의 거듭된 사과에도 민심은 분노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럴 때일수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기도해야지 뭐 어떻게 하겠는가.(웃음) 원칙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고, 눈치 보지 말고 바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국민들 뜻이 무엇인지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한다. 제발 힘 좀 있는 사람들 눈치 살피지 말고, 혹세에 '아멘'하지 말고, 바른 말을 하자. 권력을 가진 사람이 듣기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교회 지도자와 기독교인들은 예언자적인 말씀을 해야 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