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툭하면 예수 팔아먹지 마라. 괜한 동성애와 신천지와 이슬람에 관심들을 돌려야지. 이미 찾아볼 수 없는 시대정신. 박근혜는 대통령이 돼 가지고 최순실한테 놀아나고 있고 한교연 한기총은 눈치 없이 개헌 지지나 하고 있고 그게 정치냐 그게 참된 종교냐." (오드볼 '시국선언' 중)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대로 떨어졌고, 하야를 외치는 목소리로 뜨겁다.

하야 요구는 사회·종교계를 넘어 문화계로까지 확산 중이다. 가수 이승환은 자기 회사 건물에 '박근혜 하야하라'가 적힌 거대 현수막을 내걸었고, 페이스북에는 '음악인 시국 선언' 페이지가 개설됐다. 음악으로 시국 선언 뜻을 내비친 래퍼 음악이 올라온다. 제리케이, 디템포 등의 랩이 업로드됐다.

킥과 스네어 위에 흐르는 라임을 감상하던 중 한기총 한교연이라는 말이 들린다. 오드볼(24)이 만든 음악은 지금까지 나왔던 시국 선언과 결이 다르다. 다른 래퍼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 위주로 디스했다면, 오드볼은 '정치에 편승한 기독교'를 디스한다. 표현이 거침없다. 당장 수소문해 11월 3일 저녁 숙명여대 근처에서 오드볼을 만났다.

▲ 아마추어 래퍼 오드볼.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추진을 지지한 한기총과 한교연을 디스하는 곡을 발표했다.

정치권력을 얻고자 하는 종교인 행태에 분노

'괴짜'를 의미하는 오드볼(Oddball)은 자신을 아마추어 래퍼라고 소개했다. 중학교 때부터 랩을 했지만 예명으로 활동한 건 1년 정도 됐다. 개인 사운드클라우드에 꾸준히 곡을 업로드했다. 일상생활하면서 생각하고 곱씹은 주제로 곡을 만든다. 오드볼이라는 이름으로 35곡을 발표했다.

'시국 선언'은 10월 29일 발표했다. 최순실 사태도 화가 났지만, 그보다 목사들 행태에 더 화가 났다. 개헌 추진을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한기총·한교연 성명서에 어이가 없었다. 현 정국에서 기독교가 개헌을 지지하는 건 하나님 뜻이 아닌 것 같았다. 종교가 자기 뱃속을 채우기 위해 지지를 선언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종교가 정치화하는 것에 화가 났다. 한기총·한교연이 비선 실세는 언급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의사만 지지했다. 종교인의 역할이 아니라 정치 활동에 가깝게 느껴졌다. 목사들이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왜곡된 권력의 하수인이 된 거 같았다. 분명 예수는 그런 종교를 말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너무 변질된 게 화가 났다."

시국 선언에는 "괜한 동성애와 신천지와 이슬람에 관심들을 돌려야지"라는 가사도 있다. 이 역시 오드볼이 기독교 단체를 보면서 항상 의문을 품던 부분이다. 언젠가부터 '교회가 정말 이 사안을 걱정하고 대처하고 있는 건가'란 물음이 생겼다.

지난 총선을 보면서 아니라는 답을 내렸다. 종교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지난 총선에서 기독교 정당들은 '동성애·이슬람 막아 내자'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수많은 기독교인이 기독 정당을 찍었고, 비례대표 1명을 낼 수 있는 투표율을 받았다.

종교 단체가 표 몰이를 위해 동성애·이슬람을 정치적 어젠다로 삼을 뿐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말 현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이슬람과 동성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했는데, 오드볼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기독 공동체 문제점도 디스

기독교를 디스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도 기독 공동체의 문제점을 짚은 곡을 발표했다. '기도', '선교 단체(C.C.C)'가 대표적이다. 오드볼이 이런 곡을 내는 이유는 그가 안티 크리스천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모태신앙 기독교인이다. 하나님을 찬양만 하는 기독 래퍼들의 행보를 벗어나 한국교회가 반성해야 할 지점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오드볼은 이름처럼 교회 안에서 괴짜 취급을 받았다.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에서 '우리'는 무엇을 뜻하는지, 기독교와 이슬람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같은 신인지 궁금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기독교를 폄하하려는 악의는 없었다. 하지만 교회는 정확한 설명 대신 그를 무신론자 취급했다.

배척은 대학에서 더 심해졌다. 선교 단체 CCC(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2년간 활동했다. 사람들과 함께 자취하고 예배를 드렸다. 오드볼은 이곳에서 종교의 폭력성을 느꼈다. 자기 관점에서 타인의 신앙을 판단하고 자신과 다르면 수용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겉모습만 보고 자신을 판단한다고 느꼈다. 한번은 오드볼이 지갑에서 아빠 명의 카드를 꺼내자 한 CCC 멤버가 "네가 고생 없이 살아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거구나. 그래서 신앙이 그랬구나"라고 말했다.

황당했다. 물론 그때 물질적으로 어렵지 않았지만, 그전에는 아버지 사업이 수차례 망했다. 이런 사실도 모르면서 현재 모습만 보고 신앙을 판단해 버리는 모습에 질색했다. 당시 느꼈던 감정을 랩으로 풀어냈다.

"진리를 무기로 삼아서 찌르고 틈만 나면 하는 말이 그건 옳지 않아. 가르쳐, 가르쳐, 가르쳐 누가 누굴 가르쳐. 두 번째 아빠의 기업 카드가 당시 나의 지갑에 나오니까 하는 말이 너는 고생 없이 살아서 신앙이 그랬구나. 이해할게." (선교 단체 C.C.C 중)

이뿐만 아니었다. 한번은 CCC를 만든 고 김준곤 목사를 검색하다가 그의 과거 이력을 알게 됐다. 유신을 찬양하고 국가조찬기도회를 주도했던 것. CCC 간사를 찾아가 이게 사실인지 물었다. 간사에게서 되돌아온 말은 "주의 종을 심판하지 말라"였다. 이때부터 종교가 정치화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민낯 드러내면서 위로 주는 곡 만들고파

오드볼은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소프트한 래퍼가 잘하는 낙관적이고 달달한 사랑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암울한 현 상황을 직시하는 게 많다. 사람들이 사이다처럼 느끼기도 하지만 회피하고 싶은 문제도 다룬다.

최근 낸 곡 '의경', '물'에도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겼다. 새벽에 찾은 시위 현장에서 사람들이 의경을 죄인 취급하고 있었다. 의경이 시위대에 맞아 실려 가는데도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는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오드볼은 사회적인 주제만 논하는 래퍼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 그는 이런 이야기를 주로 쓸까. 기자의 질문에 오드볼이 내린 답은 간단했다.

"자기 위로가 된다. 화나는 순간에 가사를 쓴다. 거리를 지나다니면서 음원을 계속 듣는다. 그러면 화가 풀린다.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의 모순이나 사회 모순, 부끄러워 보여 주기 싫은 걸 드러내면서 위로를 받는 거 같다. 소수겠지만 내 곡을 듣는 누군가도 위로받을 수도 있고, 생각이 전환되기도 할 거다. 그걸 위해 계속 노래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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