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1년생 모태신앙입니다. '보통의 교회'에서 '보통 청년'으로 있으며 고민한 문제를 나누고 싶어 글을 연재하려 합니다. 함께 신앙생활한 분들, '평범한 성도'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점도 있습니다. 기도 제목 나누기, 간증, 청년의 비전, 선교, 셀 모임, 교회 봉사, 신학의 부재 등이 그 내용입니다. - 필자 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

청소년부터 청년인 현재까지, 가장 많이 들은 말 하나가 '영향력 있는 비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수련회 때만 되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10대 교회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원 베네딕트 선교사가 얘기했던 "10대에는 꿈꾸고, 20대에는 준비하며, 30대에는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입니다.

저 역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 제 꿈을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용하려고 적절하게 제 비전과 하나님 영광을 분배(?)했습니다. 이 영향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가 되라는 비전은 청년·청소년 수련회나 설교 때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입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논지를 거칠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큰 영향력을 얻으면 더 많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예인이 상을 받은 후에 눈물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면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크겠냐는 식입니다. 정·재계 지도자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더 잘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전'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전을 이루려면 기본적으로 '좋은 대학 입학'과 '좋은 직장 취직'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청소년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청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얻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에 영향을 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향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 영광을 돌리겠다는 비전이 나누어질 때면 모두 가슴 설레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 영광과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영향력'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속적으로 성공을 거두거나 멋진 비전을 성취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몇 가지 묻고 싶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분들, 혹시 매년 서울대학교 수석의 이름을 외우고 다니십니까. 당시 수석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직업적 영향력도 다르지 않습니다. 영향력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크게 성공하도록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성공과 시험 합격 등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논리는 신성모독적인 가치입니다. 영향력을 논하기 전에 하나님 영광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영향력'이라는 말로 포장된 욕망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영광은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영향력으로 드러나고 말고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중보 사역에서 나타났다는 것이 신약성경 주제입니다.

존 파이퍼는 <하나님이 복음이다>(IVP)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에 그 영광이 드러난 것입니다. 두란노 성경 주석에서 '영광'을 찾아보면 "성령이 거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적혀 있습니다.

좋은 직업, 좋은 학교에 들어간 사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게 아니란 얘깁니다. 한국교회가 말하는 대로 '우리가 가진 영향력'으로 하나님 영광을 드러낸다는 논리는 옳지 못합니다. 예수를 닮은 삶과 행동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세속적 성공과 하나님나라를 빛내는 일을 같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성장 과정에서 생긴 신앙 담론과 제도가 만들어 낸 현상입니다. 김진호 연구실장(제3시대그리스도교)이 쓴 <시민 K, 교회를 나가다>(현암사)에는, 우리 욕망을 그대로 담고 있는 종교를 '개신교'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성공 지상주의와 욕망을 한국교회가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나님 축복은 세속적인 성공과 직결되고, 성령은 성공 지상주의와 연결됐습니다. 크기와 성장만 추구하는 신앙 담론과 제도가 발전했다는 게 김진호 연구실장의 설명입니다. 이러한 교회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 축복, 하나님 영광까지도 개인의 세속적 성공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 영광과 상관없는 세속적 욕망을 '영향력'과 '비전'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지 않는지 물어야 합니다. 목숨 걸고 영광 돌리겠다며 이루어 달라는 간구가 정말 하나님나라 영광만을 위한 것인지 되물어야 합니다.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비전이 꼭 세속적인 것과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에세네파처럼 산 구석에서 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 걱정은 이렇습니다. 영향력을 핑계대면서 세속적 성공이 교회 비전이 되고, 우리 신앙 목표가 되어 버린 현실이 우려스럽습니다.

노예 민족, 민중들에게서 퍼져 나간 복음

세상 속 예수님의 영향력은 형편없었습니다.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유대인 목수의 아들입니다. 3년간 길거리에서 하나님나라 전하다 죽은 것이 끝입니다. 한국교회식 '영향력' 논리대로라면 예수님은 이스라엘 왕이 되셔야 했습니다. 제국의 황제가 되셨어야 했습니다. 황제의 영향력이 유대인 목수의 삶보다 클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그 길을 걷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 외 성경 속 인물들 역시 세계사적으로 영향력이 크지 않았습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 등 이스라엘 지도자의 영향력은 징기스칸이나 진시황제 같은 지도자의 영향력과 비교하면 명함도 못 내밉니다. 성경 인물이 세계사를 움직일 만한 학설을 만들거나, 발명품을 개발한 적 있습니까?

한국교회의 영향력 논리대로라면, 징기스칸이나 진시황제 같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후, 그들의 영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근동 지방 구석에 있는 소국의 영향력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증언하겠습니까. 근동의 소국 이스라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세상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애초에 성경은 위대한 민족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국 이집트가 아니라, 이집트에서 죽기 살기로 도망 나온 노예 민족인 히브리 민족을 통해 구약을 기록하셨습니다. 故 안병무 한신대 교수에 의하면, 마가복음에 나오는 민중은 '오클로스(Okhlos)'입니다. 백성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제국 로마가 아니라, 유대계 백성에도 포함되지 못한 '오클로스'에게서 예수가 전해졌습니다. 이렇게 못난 사람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한국교회식 '영향력' 논리에 의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영광을 알리셨습니다.

힘없는 이 변호한 예수 닮기를

나의 영광과 하나님 영광을 동일시하는 풍조가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세속적인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이 땅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 영광이 드러났다면,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평화주의자 예수>(산티)는 예수님의 삶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예수는 정치범으로 처형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로마제국의 악에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탐욕에, 그리고 당시의 죄악과 부정에 맞서서 싸웠기 때문이다. 예수는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 병든 자와 억압받는 자를 변호했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는 죄악과 부정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힘없고 소외받은 사람을 변호하셨습니다. 세속적 성공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삶과 거꾸로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삶과 거꾸로 살아 놓고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았을 때,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 보일지라도 스스로 영광을 드러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한국교회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영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하나님 영광을 가립니다.

* 도움 얻은 글
김진호(2012), <시민 K, 교회를 나가다>(현암사)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2006), <평화주의자 예수>(산티)
정승원(2012), "하나님은 영이시니! -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조직신학적 고찰", <헤르메네이아 투데이> 54권, 11-30쪽
존 파이퍼(2006), <하나님의 복음이다>(IVP)

두란노, <성경 주석 사전>, http://www.duranno.com/bdictionary/
아가페(2001), <아가페 신학사전>(아가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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