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시흥희망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시흥희망의료사협·이규진 이사장)은 큰 고민에 빠졌다. 내년부터 아동 진료를 위한 가정의학과를 설치할 계획인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시흥희망의료사협은 장애인 자활을 돕는 찾아가는 돌봄 서비스와 지역 내 어르신들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간호 서비스를 시행하는 등, 대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의료 협동조합이 생기자 주민들 반응은 뜨거웠다. 2009년 설립 당시 310명이었던 조합원은 1,900명으로 늘었고, 매출은 200만 원에서 17억 원으로 성장했다(2015년 말 기준).

시흥희망의료사협 민회선 전무는 신규 사업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시중 은행과 중소기업청을 찾았지만, 기관으로부터 대출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익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라 재무 건전성이 불안정하다는 게 이유였다. 금융기관 담당자는 사회적 기업 특례 보증 제도를 이용하라는 말만 했다.

이 제도는 지원하는 액수가 최대 2억 원뿐이다. 신규 사업에 필요한 14억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민 전무는 10억대 매출을 내는데도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유로 사업 자금을 대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며 한탄했다.

이전에 기사로 소개한 국내 자조 금융 단체들도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데 국내 제도가 이를 뒷받침해 주지 않아 어려움을 느낀다. 이들은 무담보·무보증 혹은 무이자(저이자) 등과 같이 대안 금융 모델을 제시한다. 초기 외부 지원으로 어느 정도 자본을 형성하면 적은 조합원으로도 안정적인 대출-상환 구조를 이룰 수 있는데, 정부가 이를 막고 있다. 금융 협동조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컨퍼런스에서 만난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관계자들은 국내 제도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금융기관의 지원 제도와 협동조합법 등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은행? 정부? 갈 곳 없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이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조합원 출자금 △ 금융기관 대출 △정부 지원금이다. 조합원 출자금은 대부분 운영비와 기존 사업비에 투입되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시중 금융기관 대출도 장벽이 높은 편이다. 일반 영리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신용 대출을 결정하기 때문에, 공익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이 재무 건전성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담보가 있지 않는 이상 대부분 대출 자격에서 누락된다.

경기협동조합협의회 주영덕 운영위원장은 "협동조합이 사업을 확장하거나 건물 임대비가 급등해 자금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금융기관에서 재원을 마련하려면, 경영진이 은행에 '개인신용(담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10월 25일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국내 제도 미흡을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정부는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소금융재단은 연이율 3%~4.5%로 최대 1억 원을 빌려주고, 2012년 '사회적 기업 특별 보증 제도'를 만든 중소기업청은, 전국 신용보증재단에서 3.7~4.6% 연이율로 최대 4억 원을 대출한다. 두 곳 모두 상환 기관은 5년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정책 자금 융자 제도는 다른 곳에 비해 가장 많은 액수를 지원한다. 최대 45억 원(비수도권 50억 원)이다. 금리는 중소기업진흥채권 조달 금리(2.47%, 2016년 4/4분기 기준)를 적용한다.

이처럼 정부 지원 제도가 있음에도,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실속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먼저 정보가 빈약하다. 경기도사회적기업협의회 주태규 사무국장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각종 지원 제도를 알리고 있는데, 대부분 정보가 잘못됐거나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요자가 어디로 어떻게 신청을 해야 하는지 정확한 정보가 없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대출금이 적고 상환 기관도 짧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 정부가 시행하는 대출금은 최대 1억 원, 상환 기간은 5년이다. 미국 CDFI 기금은 한 기업에 3년 간 최대 500만 달러(한화 57억 3,000만 원)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캐나다 샹티에신탁은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에 최저 5만에서 최대 150만 달러를 빌려 준다(한화 4,276만 원~12억 8,280만 원). 상환 기간은 15년이다.

물론, 한국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시행하는 정책 자금 융자 제도가 있다(최대 45억). 하지만 평가 방식에 문제가 있다. 이 제도가 지원하는 대상에는 중소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중소기업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혜택은 대부분 중소기업에게 돌아간다.

▲ 정부는 사회적 기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관계자들은 지원 정책이 더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20년 넘게 협동조합을 운영해 온 김보라 경기도의원은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에 맞는 평가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재 금융기관들은 사회적 기업을 일반 기업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그렇다 보니 지원 대상에서 일반 기업에게 밀리고, 사회적 기업 사이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단체에게만 지원금이 몰리는 것이다. 지원 규모를 늘리는 것도 문제지만, 이에 맞는 평가 제도도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2012년 12월 정부가 협동조합법을 제정한 이후, 오늘날까지 1만 200여 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사회적 기업 육성법도 내년이면 만들어진 지 10년째를 맞는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국내 사회적 경제는 걸음마 수준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을 지원해 온 경기신용보증재단 임채화 사업본부장은 "경기신용보증재단은 2012년부터 올해까지 2,061개 기업에 142억 원을 지원했다. 최근 2년 동안 우리 기관이 지원한 사회적 기업의 영업이익을 분석한 결과, 평균 3,100만 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무리 공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도 사업성이 떨어져 수익을 내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경영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자본 조달 방식 허용돼야

세계적 협동조합 몬드라곤그룹이 오늘날 스페인 재계 7위를 차지하기까지는 금융 협동조합 카하라보랄(현 라보랄쿠차) 지원이 컸다. 조합원들은 월급 일부를 정기적으로 카하라보랄에 예금했고, 이 자금은 협동조합에 재투자됐다. 몬드라곤그룹은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국내 협동조합법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보험, 금융 분야에 진출할 수 없다. 운영진이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손실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조혜경 전문위원은 "정부는 금융 협동조합은 물론, 단체가 조합원들에게 자금을 차입하는 것과 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모두 금지하고 있다.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거의 다 막은 것이다"고 지적했다.

아이쿱협동조합지원센터 김대훈 센터장도 "다른 나라 같은 경우에는 협동조합이 금융 진출, 증권 발행, 컨소시엄 구성, 출자금 차입 등 10여 개의 자금 조달 방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국내 협동조합은 다 막혀 있다. 다양한 자금 조달 방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보도한 것처럼 유럽과 미국은 협동조합을 장려하고 대폭 지원한다. 우리나라에서 금지하고 있는 금융 협동조합, 협동조합 연합체인 컨소시엄도 허가한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연사들은 한국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이 이 같은 제도를 기대하려면,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협동조합 연맹체 레가코프(Legacoop) 프란체스코 링구이티 책임경제연구원은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 성장하려면 구성원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제도 지원도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세제 혜택, 금융 진출 등 법률 지원이 갖춰질 수 있도록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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