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태생의 문제

한 국가의 권력을 장악한 통치 집단은 최고의 정치 전문가 집단이어야 한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국민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가치와 희망의 지평을 열어 나가야 할 막중한 책임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중차대한 직무를 맡기기 위하여 국민은 헌법이 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에게 5년 단임의 책임을 맡긴다. 민주 사회에서 대통령은 하나님이 세우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공정한 절차로서 선거를 통해 국민들 투표로 선출한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에게 헌법을 수호하고 국군의 최고 통수권자가 되는 막중한 권력을 맡기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태생부터 민주적 절차에 의심이 가는 다양한 사건으로 얼룩져 있었다. 국정원, 군사이버사령부와 같은 국가기관만이 아니라, 불법적인 비선 선거 기관 등이 판을 친 지난 대선의 불법성은 선거 후 대법원과 선관위, 검찰의 묵인을 받았다. 대법원은 선거무효 소송을 묵살했고, 검찰은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권력 집단은 자신들의 부정선거 행위를 수사할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검찰총장을 사생활 의혹을 폭로하며 졸렬한 방식으로 축출했다. 이러한 행위는 오늘의 정황에서 볼 때 그 위선 정도에 대하여 모든 이가 경악할 정도다. 당시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들추어내는 정권을 바라보며 사람들 중엔 도덕적으로 무결한 깨끗한 정부의 자기 정화를 위한 노력으로 이해하는 이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권의 태생 과정을 살펴보면 이미 우리는 낙관적인 기대를 할 수 없는 정황에 처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보수 집단과 결탁한 보수 기독교 집단이 맹목적으로 지지했고, 영남의 한결같은 끈끈한 지원, 이명박 정부의 불법적인 막후 지원이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박정희-육영수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막연한 측은지심으로 박근혜를 "우리 박근혜"라 부르며 몰표를 던져 주었다. 이에 더하여 비열한 종북 몰이는 일부 국민들의 뿌리 깊은 색깔론을 자극했다. 이런 과정은 후보의 통치능력에 대한 합리적 평가나 객관적인 정보에 바탕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합리적인 민주적 절차가 아니었다.

지역민들의 연고성 편들기, 정의에 대하여 질문할 줄 모르는 순진한 기독교 신자들을 몰아가는 대형 교회 목사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여전히 선거판에 다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성이 여전히 우중 민주주의를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부실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 정권의 태생 과정에서 민주적 투명성이 결여되어 그 검증 과정이 혼탁했다는 점은 오늘의 문제를 이미 잉태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후안무치한 비정상의 정상화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직후부터 이 정권을 향한 국민들의 의구심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어 왔다.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다 선거 기간 그녀가 약속했던 무수한 공약이 대부분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 후보시절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혈점들을 찾아다니며 국민 통합을 호소했던 그녀는 대통령이 된 후 나 몰라 하는 표리부동한 행각을 보였다. 측근의 대다수를 군 출신, 검찰 출신, 영남 인사로 채우더니 심지어 국민 90% 이상이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만들기 위하여 무슨 첩보 작전하듯 집필자 명단을 비밀에 부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이는 국민의 평가는 안중에 두지 않는 비상식의 일상화, 표리부동한 태도였다. 어느 교육부 고위관리가 한 "국민은 개돼지"라는 발언은 이 정부의 국민 무시 태도의 무의식적 표현이었으리라.

박근혜 정권의 상식을 버린 기이한 행적은 끝없이 이어졌다.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기본적 책무조차 망각한 해경이 세월호 곁을 어슬렁거리는 동안 무수한 꽃다운 어린 생명들이 세월호와 더불어 바다에 수장되는 참사를 전 국민이 속수무책 지켜보아야 했다. 절대절명의 순간에 생명들을 지켜 낼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대하는 대통령의 처신에서 국민들을 다시 한 번 놀랐다.

국가기관의 무능으로 애지중지해 온 자식의 생명을 비참하게 잃어야 했던 이들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는 무책임을 넘어 차라리 무자비하고 비정한 것이었다. 지난 8월 내가 진도항을 찾았을 때 그 차가운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에 자기 자식이 숨져 있다는 것을 하루도 잊지 못하고 지내 온 어미 아비의 심정을 어찌 몇 마디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하여 나는 그저 침묵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처연한 분노를 누가 씻어 줄 수 있을까.

국민들은 대통령이 공적인 자리에 나타날 때마다 그녀의 어눌함에 당황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죽하면 수첩 공주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누군가가 메모를 해 주지 않으면 자기 소신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대통령, 메모 없이 말할 때에는 국어 어법에 맞지 않는 모호하고도 뒤엉킨 화법으로 일관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민주적 의식을 가진 상식인들은 내심 이 나라의 국정 운영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의 약점을 그리도 잘 알던 이명박은 자신의 실정을 덮고 자기 집단의 안위를 지키기 위하여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무능한 박근혜의 당선을 도왔다. 그러니 국정원과 군이 움직인 것이 아닌가. 우리는 과연 자기 집단이나 자신의 안위보다 국가를 위하여 진정 헌신하는 지도자를 아직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숨겨진 것은 드러난다

하지만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제 드러나기 시작한 박근혜의 진면목은 자기 주체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채,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평소의 성품으로 자리 잡아야 할 정치 지도자의 요건, 즉 확고한 도덕적 신념, 국가를 경영할 만한 비전, 스스로 사고할 능력, 공동선을 위한 명료한 판단력을 국민들은 이제 그녀에게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의 정치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철저하게 결여하고 있는 그녀에게 우리 국민들은 이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그녀는 이제 이 나라의 통치자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미국의 37대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자신이 도청을 지시했던 사실을 감춘 채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자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하야를 선택했다. 그러나 말과 행위의 진실성이 바닥난 박근혜 대통령은 그와 같은 결단을 내릴 만한 도덕적 능력이 없어 보인다.

JTBC의 연이은 보도로 청와대의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공인의 지위를 지킨 것이 아니라 사사로운 관계를 통하여 국정을 자문받아 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놀랍게도 박대통령이 이름을 일곱 개나 가지고 있었던 사이비 종교인 최태민의 딸 최순실과 비밀스럽게 국가 기밀문건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이제 막연한 추정이 아니다.

국가의 외교문서, 대통령의 공식 행사 일정, 대통령의 연설문, 그리고 비서진과 각료들 리스트, 중차대한 회의 참석 후보 리스트 등 사사로운 관계에 넘겨서는 안 될 문건들이 공적 절차가 아닌 비밀리에 최순실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대통령 안방까지 최순실이 드나들었다는 의미다. 비록 대통령이 공개 사과했다 할지라도 이 사안은 단순한 사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오리려 이런 함량 미달 대통령을 우리 국민들이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이 이제 십여 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그동안 미국에서 전통적인 보수 진영에 속하여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던 신문, 방송들조차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그가 함량 미달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심지어 공화당 일부 의원들조차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연일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공화당을 사랑하지만 미국을 더 사랑한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당이나 그 정당이 세운 대통령의 존재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기에, 국가를 위하여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자파라 할지라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처신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보수 집단도 허탈함을 감출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집단은 미국의 양심적 보수들에 비하여 국가나 국민보다는 자파의 이해관계에 여전히 천작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이야말로 양심적 보수의 합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참담하게 숨진 박정희-육영수의 죽음을 연관시켜 제 아무리 동정론을 펼친다 하여도 한 국가 수장의 함량 미달 무능을 사사로운 동정론으로 덮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한 가지 명료한 사실은 박근혜라는 한 인물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의 지위를 지킬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가 최태민의 딸 최순실과 사사로이 국정을 의논하며 지내온 지난날을 살펴보면 국민들은 이제 그녀가 대통령의 막중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격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그녀의 남은 임기는 국정의 공백 사태가 될 우려가 매우 크다.

앞으로 남은 그녀의 임기 동안 나라의 기강은 더욱 무너지고 사사로운 권력 집단이 더욱 활개 치게 될 것이다. 그간 검찰과 대법원의 비호를 받아 온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카르텔은 결국 함께 몰락할 때까지 버티려 할 것이다.

민주 사회와 기독교인의 정치적 책무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민주 사회는 법치 사회다. 민주 사회는 사사로운 관계보다 법이 통치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적 법치는 전근대 왕조시대의 법치와는 많이 다르다. 왕조시대의 법치는 왕이 그 통치권을 행사하는 수단이었지만 민주 사회의 법치는 국민들의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세운 대표에 의하여 법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민주 사회에서의 법치는 통치자의 기호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이익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내면의 정치철학이나 정의와 평화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면서 권위주의적인 전근대적 권력 통치 방식을 행사해 왔다. 여기에 부정과 부패가 자석에 쇳가루가 들러붙는 것 같은 정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권의 편의를 지켜 주는 법치는 국민을 지키는 법치가 아니다. 그것은 검찰과 법원이 권력과 결탁하여 타락했다는 증표일 뿐이다. 이런 법치는 성경이 요구하는 공의를 실현하기는커녕 오히려 짓밟는다.

나는 박근혜–최순실의 관계가 투명한 법적 권한과 책임에서 이탈하여 이 나라의 최고 통치 행위에 미친 불법 행위에 대하여 조속히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계 고리를 돕고 조장해온 측근 권력 구조도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지연과 이해관계에 얽힌 보수 집단들의 맹목적인 지지가 이렇듯 참담한 "바보 대통령 만들기"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에 우리가 스스로 경악해하며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수 정권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지지하던 조중동 기자들이 지지해 온 대통령이 과연 이런 박근혜였는지 우리는 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보수 기독교인들에게도 "그대들이 하나님이 세운 통치자라고 믿고 싶어했던 이가 바로 이런 박근혜였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일부 기독교 목사의 철면피한 선동 행위는 이 시제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주로 다수 신자들의 세력을 등에 업고 여전히 박근혜 정권을 지지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적 선동을 일삼는 목사 무리들이 있다. 이들의 얼굴은 매우 이중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지키려는 고난의 자리는 교묘하게 피해 온 이들이다. 그러나 돈과 권력의 편에 서서 종교와 정치의 야합을 일삼는 일에는 이골이 난 이들이다. 이 무리들이 이번에도 놓치지 않고 "개헌 지지 선언"을 하고 나섰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이들이 한국 기독교의 꼴뚜기 노릇하는 습성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정상이 아닌 대통령이 여전히 정상으로 보인다면 그들 역시 비정상적 행태를 일상화하는 동종 아류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교회의 신자들에게는 지금이 꼴뚜기 놀음에서 벗어나 정신 차려야 할 때다. 그래야 한국 기독교인들이 보다 민주적으로 정치적 책임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나라를 견고하게 지키는 정의롭고 민주적인 양심 세력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은 함량 미달의 타락한 정권을 지키고 옹호하는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신앙 양심을 가지고 이 나라 정의와 평화를 지키는 민주 세력의 일부가 되어야 옳다.

박충구 / 전 감신대 교수, 생명과평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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