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님,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의 일원으로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대통령직을 내려놓아 주십시오. 온 국민은 지금 패닉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직을 사유화하고, 국가의 공적 질서를 유린한 것에 충격을 넘어 허탈해하고 있습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총체적 분노와 나라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인 저는 이 일이 터지기 전, 백남기 씨의 죽음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 즉 그분의 죽음을 병사로 기록한 것과 사인을 명확히 하기 위해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영장을 청구하고 강제집행하려 한 경찰의 억지 난장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비애를 느꼈습니다. 최소한의 상식조차 무시해 버리는 정부의 몰상식과 공권력의 폭력에 짓밟힌 주검을 능멸하는 무례와 치졸함의 극치를 보면서 대통령님이 운영하는 정부에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경찰이 백남기 씨의 시신 부검을 강제집행한다면 국민의 분노와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대통령님께서는 청와대를 걸어 나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원칙을 지킨 백남기투쟁본부와 뜻있는 국민들의 항거에 막혀 강제집행을 하지 못했습니다만, 백남기 씨의 죽음이 박근혜 정부의 운명을 좌우하는 불씨가 될 거라는 예측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그간 소문이 횡행했지만 이 정도는 아닐 거라고들 생각하며 아픈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했는데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원종 비서실장이 토로한 대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여기서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의 실상을 시시콜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궁극적 진실 하나만 말하려 합니다.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이 말하는 최고의 진실은 대통령님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과 자질이 애당초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가 이번 사안이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하느냐 안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차원으로 보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것들이야 법의 잣대를 들이대어 엄정하게 조치하면 되겠지만 대통령님에 관한 부분은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 차원에서가 아니라 능력과 자질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과의 소통과 신뢰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대통령님은 이번 일이 터지기 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단지 이번 일로 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뿐이지요.

박근혜 대통령님, 대통령님은 이미 국민의 탄핵을 받았습니다. 절대다수의 국민은 대통령님의 국정 운영 능력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하고 있습니다. 오늘(10월 27일) 아침에 발표된 26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님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76%, 대통령님이 책임을 지는 방식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2.3%가 '하야' 또는 '탄핵'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아니하겠습니까. 대통령님이 그토록 강조했던 원칙을 대통령님 스스로가 어겼습니다. 그것도 대통령 직무의 첫 번째 원칙을 어겼습니다. 온 국민의 가슴을 짓누른 세월호의 아픔도 품어 내지 못했습니다. 백남기 씨의 죽음 또한 능멸했습니다. 진정성 없는 사과에 이어 이번에는 아예 거짓된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은 문제의 근원이 대통령님께 있습니다. 청와대 비서진을 교체하고, 내각이 총사퇴한다 한들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대통령님의 하야(下野) 외에는 국정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릴 방책도, 국정의 동력을 회복할 방책도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의 하야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다는 것을 압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하야하는 데까지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은 하야 외에는 방책이 없어 보입니다. 솔직히 5년 임기에서 1년 4개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또 대통령님이 하야를 결단하지 않으면 남은 기간은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고, 탄핵을 놓고 국론이 분열할 것이고,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헤아리기조차 힘들 것이 분명합니다. 또 만에 하나 탄핵이 된다면 대통령님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대통령님께서 탄핵당하여 물러나는 것보다 스스로 결단하고 하야하시는 게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대통령으로서 명예를 지켜 주십시오. 대통령직에서 물러남으로써 대통령의 마지막 명예를 지켜 주십시오. 이것이 국민이 대통령님께 바라는 마지막 기대입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대통령님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자, 대통령님께서 그토록 신명을 바친다는 국가와 국민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좀 더 냉혹하게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대통령님이 대통령직을 지키는 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모독입니다. 대통령직 사유화는 계속되어서도 안 되고, 사유화된 대통령직은 반드시 국민에게 반납돼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입니다.

정병선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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