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부산에 내려갈 일이 생겼다. 가는 김에 '흔하지 않은 교회'를 취재해 볼 요량으로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신통치 않았다. "부산에 소개해 줄 만한 교회는 없다"는 말들이 돌아왔다.

그러다 운 좋게 인터넷에서 사귐의교회(문춘근 목사)를 발견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연락처를 알아낸 다음 문춘근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취재를 하고 싶다 하니 문 목사가 반갑다는 듯 말했다.

"우리 교회 취재하고 싶다고요? 하찮은 교회인데, 그래도 괜찮으면 한 번 오이소."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정겹게 다가왔다. 10월 18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있는 사귐의교회를 찾았다. 복합 건물 3층에 자리 잡은 예배당은 아담했다. 문 목사와 김찬욱 집사, 청년 김관주 씨가 반갑게 맞았다.

▲ 부산 사귐의교회는 하나님, 교인과의 사귐을 추구한다. 형식적인 관계와 교제는 지양한다. 9년 가까이 인격적인 만남을 이어 오고 있다. 중심에는 문춘근 목사(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문춘근 목사는 50년 가까이 부산에 살고 있다. 5살 때 부산으로 이사 온 후, 유학 기간을 제외하고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사귐의교회는 2008년 문 목사 가정 포함 세 가정으로 출발했다.

교회를 개척하기 전 문 목사는 대형 교회 수석 부목사로 시무했다. 하지만 2년 반도 안 돼 교회를 나왔다. 사고를 치거나 미운털이 박힌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그려 온 목회 그리고 교회상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몇몇 대형 교회를 거치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 바로 학창 시절 IVF(한국기독학생회)에서 배운 내용과 거리가 멀다는 거였어요. 교회 개혁(Reform)을 꿈꾸며 애를 써 봤지만 거의 불가능했어요. 인격적인 만남과 진실한 교제가 이뤄지는 공동체를 생각했는데 큰 교회에서는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하더라고요. 성도들의 영혼과 가정을 세워 주는 하나님의 동역자인 목회자로 살고 싶었는데, 성도들 삶도 제대로 몰랐어요. 피상적인 관계로 지내면서 교회 조직과 프로그램을 관리 운영했죠. 이건 아니다. Reform은 내 길이 아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웃음)"

생각을 정리한 이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임서를 제출했다. 생계는 잠시 아내에게 맡겼다. 이 당시를 '자발적 무임 안식년'이라고 문 목사는 회고한다. 

이 당시 문 목사를 찾아온 두 젊은 부부는 "목사님은 교회 개척 안 하세요?"라고 물었다. 문 목사는 그 길로 교회를 개척했다. 문 목사 가정 포함 6명은 교회 창립 멤버가 됐다.

교회 개혁에 관한 고민은 계속됐다. 그리고 가닥을 잡아갔다.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하는 교회', '주일만큼이나 평일의 일상을 중시하고 지원하는 공동체',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발견하고 준비해 하나님나라를 받드는 공동체'. 건물 중심이 아닌 교인들의 삶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교회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교회 이름은 '성삼위 하나님과 온 교인의 사귐을 추구하고 누리고 나눈다'는 의미에서 사귐의교회로 정했다.

▲ 사귐의교회에서는 정겹고, 구수한 내음이 난다. 서로를 격려하고, 때로는 질책도 한다. 기혼 청년 김관주 씨(사진 왼쪽)와 창립 멤버 김찬욱 집사(가운데), 문춘근 목사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활짝 웃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문춘근 목사는 인터뷰 내내 '인격', '교제', '사귐', '공동체'를 강조했다. 형식적인 관계로는 교회 공동체를 세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교회 창립 멤버인 김찬욱 집사도 문 목사 말에 동의했다. 김 집사는 보다 인격적인 관계를 쌓고 싶어서 사귐의교회에 합류했다. 그렇다면 기존에 다니던 큰 교회와 지금 다니는 교회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김 집사가 말했다.

"관계, 그리니까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죠. 흔히 교회에서 교인들 만나면 안부 묻고, 인사하는 정도가 전부잖아요. 그런데 사귐의교회는 그렇지 않아요. 깊은 관계를 나누죠. 칭찬도 하고 질책도 하고.

(사귐의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저의 본모습 즉 본능과 욕심이 보이더라고요. 교회에 오면 저도 모르게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예컨대 설거지나 교회 청소는 여자가 해야 된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절 불러서 '왜 수고하지 않느냐'며 그동안 쌓여 온 감정을 막 쏟아 냈어요. 나이 먹고 그것도 목사님한테 야단 들으니까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인격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많이 바뀌었죠.(웃음) 기존 교회에 다녔다면 그저 '젠틀'하고, '나이스'한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했을지 몰라요."

나무랄(?) 수 있는 특권은 목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 목사 역시 '견제'를 받는다. 문 목사는 나이스한 관계만 유지하는 것으로 교인들의 인격과 삶을 터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사귐의교회 교인들은 서로를 밀고 당겨 준다. 싫은 이야기에도 귀를 잘 기울인다. 1년에 한 번씩 교회 전체 사역을 소그룹별로 평가한다. 소모임, 예배, 목회자에 대한 것 등 평가 항목은 다양하다. 당연히 비판적인 이야기도 나온다. 문 목사는 "비판보다 의견을 나눌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 구조가 문제다"고 말했다.

온 종일 함께해도
"피곤하지 않아"

사귐의교회는 아이·어른 합쳐 60~70명 정도 출석한다. '온 세대'가 함께 모여 예배한다. 성경 봉독과 봉헌은 아이들 몫이다. 평균 예배 시간은 2시간. 종종 아이들은 설교가 너무 길다고 문 목사에게 항의한다. 그럴 때마다 문 목사는 "얘들아, 미안해. 그게 잘 안 되네"라고 웃으며 답한다.

예배가 끝난 뒤에는 함께 식사를 한다. 조별로 식사를 준비하는데 각자 가져온 반찬에다 밥을 나눠 먹고, 소그룹 모임을 갖는다. 그런데 이 소그룹 모임이 좀 특이하다. 연령별로 나누지 않고, 고루 섞여 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성경을 읽고, 삶을 나눈다.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을까.

"세대 차이도 나고 처음에는 어색했죠.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서로 꾸밈없이 진실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문제가 없는 건 아닌데…말이 조금 많은 지체들을 견제하기 위해 5분짜리 모래시계를 구입할 예정입니다."

문 목사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김 집사도 거들었다.

"40대 후반인 제가 살면서 20대와 고민을 나누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 주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그리고 각자를 위해서 기도해 줘요. 제 아내도 20대 자매와 교제하는데, 상당히 만족해합니다."

예배와 오후 소모임을 마치면 하루는 금방 지나간다. 하루 종일 교회에 있으면 피곤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기혼 청년 김관주 씨가 말했다.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쉬고 온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최근 숫자가 늘면서 좀 아쉬움이 있고, 소그룹별로 섬기는 일도 좀 늘었어요. 하지만 큰 교회 속 '대중'으로 지내며 떠다니는 듯한 피로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 문춘근 목사는 대형 교회 수석 부목사 출신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 갈 수 있는 혜택을 버리고, 맨땅에 교회를 개척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사귐의교회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중 하나는 '젊음'이다. 30~40대가 60% 이상을 차지한다. 김관주 씨는 기존 교회에 낙심해서 오거나 평소 교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가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교회를 처음 찾아온 이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하지만 등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문 목사는 오히려 겁(?)을 준다. "교회는 노동과 땀으로 이뤄지는 공동체"라며 주보 접기와 같은 소일거리를 준다. 마음에 확신이 들 때까지 교회 등록 얘기를 일절 꺼내지 않는다. 싫으면 다른 교회를 알아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할 정도로 '배짱'이 두둑하다.

사귐의교회에는 '5분 기도회'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순서는 일요일 점심 이후 전 교인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다. 맡은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 그러니까 일터와 가정 이야기를 소개하며 기도를 요청한다. 어떤 교인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을 조사해 발표하기도 한다. 만덕 철거민 이야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만행,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다뤘다. 최근에는 한진해운을 다니다 퇴직한 교인과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이 합주회를 진행했다.

기도회를 통해 교인들은 서로 더 알게 된다. 이와 함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부조리를 보게 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문 목사는 "기도에 힘이 있으려면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현장과 맞닿아 있거나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통해 진실에 눈을 뜬다. 사회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는 공동체로 자라 간다"고 말했다.

"나를 낮추고 거품 빼게 하시려고"

물론 지금도 '크다'고 할 수 없지만, 개척 초창기에 비하면 교회는 꽤 늘어났다. 개척 후 1년 가까이 교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문 목사는 '거, 하나님, 너무하시네'라고 생각했다.

그의 속마음을 읽으셨을까. 한 사람씩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는 많은 새 신자가 몰려오기도 했다.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새 신자를 맞이하고, 적응시키느라 교회 정체성과 분위기가 휘청거리는 경험도 했다. 문 목사는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하나님이 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돌이켜 보니 다 뜻이 있었어요. 나를 낮추고, 거품을 빼고, 여물게 하려, 하나님이 사람들을 천천히 보내 주신 것 같아요.“

보냄받은 곳에서
보냄받은 자답게 살기

문춘근 목사는 평소 삶과 예배의 일치를 강조한다. 신앙생활을 교회 건물 안에서만 하려 들지 말고 하나님이 머물게 하시고 일하게 하시는 곳, 바로 그곳에서 하라는 것이다. 문 목사는 "우리가 살고 일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낸 곳이다. 그 자리에서 이미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보냄받은 자답게 살자"고 강조한다.

수요 예배 대신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수요 기도회'를 한다. 교인들의 가정이나 직장으로 찾아가서 함께 기도하고 교제한다. 문 목사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은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나라를 받드는 하나님나라 사역자"라고 늘 일깨워 준다.

▲ 사귐의교회 예배당은 아담하다. 교회를 소개하던 문춘근 목사는 "꼭 도심 속의 사우나 같지 않습니꺼"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사귐의교회는 최근 교인들 거주지 중심으로 네 개 소그룹을 재형성했다. △낙동강을 바라보는 화명동 일대 모임 △부산 지하철 1호선 근처 모임 △광안대교 근처 모임 △해운대 지역 모임. 이전보다 좀 더 수월하게 서로 교제하고,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해 마음과 힘을 모으고 있다.

문춘근 목사는 이 모임이 또 하나의 교회 공동체로 자라 나갈 수 있기를 간구한다. 처음 6명이 모여 던졌던 질문을 되새기며, 믿음의 모험을 이어 가려 한다.

'부산에 예수 믿는 교인이 여기 우리 6명밖에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맨땅에 헤딩하듯 8년을 살아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부리기에 딱 좋은 교회 공동체가 되겠다고, 문 목사와 교인들은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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