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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동생이 그립다

[인터뷰] "죽음 막지 못한 하나님 원망스러워"…자살자 유가족이 겪는 슬픔

이용필 기자   기사승인 2016.10.19  14: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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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고 한 적 있는데, 슬퍼하실 부모님이 생각나서 못 죽겠더라." 오래 전 친한 친구 녀석이 털어놓은 말인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만일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독자님들도 한 번쯤 생각해 본 적 있을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개인의 죽음은 주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자살은 사고사나 병사와 무게감이 다릅니다. 유가족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고통에 직면합니다. <뉴스앤조이>는 4년 전 동생을 떠나보낸 유미현 씨(가명)를 10월 18일 만나, 자살자 유가족이 겪는 슬픔을 들어 봤습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2012년 4월. 유한준 씨(가명)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발견됐다. 유 씨 할머니가 그를 처음 발견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그의 집을 찾았다. 유 씨는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몸이 차가운 사람은 처음"이라고 기억했다.

비보를 듣고 달려 온 유 씨 부모님은 말을 잃었다. 자녀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 없던 아버지는 이날 사람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쏟아 냈다. 어머니는 오열했다. 친구들은 숨을 죽인 채 울었다.

교회에 다니던 부모님은 차마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릴 수 없었다. '심장마비'라고 전했다. 교회는 유 씨의 장례를 치렀다. 가족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유 씨를 더는 언급하지 않는다. 살가웠던 가족의 추억은 막내의 '자살'과 함께 막을 내렸다.

서른다섯 청년의 죽음

   
▲ 누나는 4년 전 말 없이 떠난 동생이 그립다. 무슨 사연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몰라 답답하다. 동생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누나는 하나님이 원망스럽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그의 나이 서른다섯. 한창 가정을 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며 자리를 잡아갈 시기. 유 씨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 같다. 고등학교만 나온 그를 받아 주는 회사는 없었다. 이렇다 할 기술도 없었다.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결혼 이야기까지 오갔지만 결국 헤어졌다.

유 씨에게는 두 살 많은 누나가 있다. 유미현 씨는 동생 생각이 날 때마다 울컥한다. 좀 더 챙기지 못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한 자신을 아직도 질책한다.

동생은 두 번 자살을 시도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같이 살던 미현 씨가 유 씨를 발견, 죽음을 막았다. 병원에서 3주간 집중 치료를 받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동생은 당시 아버지에게 "하나님은 왜 날 살렸을까"라고 말했다.

미현 씨는 직장 문제로 서울에서 동생과 몇 달 같이 살았다. 첫 번째 사건 이후, 한두 달간 마음이 불안했다. 동생과 데면데면해졌다. 먼저 이야기 꺼내기가 어려웠다. 혹 교회를 나가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까. 권유하자 동생은 "나중에 나갈게"라고 짧게 답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징후'는 있었다.

"일 때문에 서울서 6개월간 같이 살았어요. 그때 동생은 뭔가 체념한 듯했어요. 삶에 의욕이 없어 보였어요. 밖에 나가거나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았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런 중간에 첫 번째 일이 터졌어요. 지방에 다녀왔는데 방 안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났어요."

방 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바로 119에 신고했다. 동생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때도 지금도 미현 씨는 모른다. 사건은 충격으로 남았다. 지나가는 앰뷸런스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주저앉는다.

미현 씨가 직장 문제로 서울을 뜬 지 석 달 만에 한준 씨는 세상을 등졌다. 첫 번째 시도보다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가족들은 한준 씨에게 상담을 받아 보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거부했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남은 가족들이 겪는 아픔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애써 잊으려는 부모님…할머니는 "내가 죄가 많아서…"

미현 씨 부모님은 평생을 바쁘게 살아왔다. 은퇴 후에는 더 바쁘게 산다. 여행을 가고, 구청에서 각종 교육을 받는다. 미현 씨는 "애써 잊으시려고 하는 것 같아요. 손주들도 있고 하니까 (슬픈) 티를 잘 내지 않으세요"라고 말했다.

아흔 줄에 접어든 할머니는 지금도 손주 주검을 발견한 날을 잊지 못한다. 가족이 모일 때면 "내가 죄가 많아서 (한준이를) 먼저 보냈다"고 자책한다. 미현 씨 남편도 부채감을 느낀다. "자리를 빨리 잡아서 처남을 (지금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어야 한다"고.

유 씨는 유서 한 장 없이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도 미현 씨도 유 씨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던 미현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약했던 것 같아요. 의욕도 없었어요. 삶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 같았어요. 삶이 너무 '절망적'인 게 아니라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유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잖아요…"

   
▲ 자살자 유가족은 후유증에 시달린다. 미현 씨는 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4년이 지났지만, 앰뷸런스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주저앉는다.

동생 장례식 날, 미현 씨는 울고 또 울었던 기억밖에 없다. 동생의 허망한 죽음에 지금까지 믿어 온 하나님이 서럽고 원망스러웠다.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미현 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잖아요. 그런데 알면서도… 하나님이 신이면 (동생 죽음을 막는) 영향력을 보여 주셨으면 안 되나 하고 많이 원망했어요. 4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됐어요."

한없는 슬픔에 잠겨 있던 그날. 미현 씨는 고모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괜찮아 미현아. 한준이 천국 갔을 거야."

미현 씨는 일찍이 동생을 교회로 인도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크다고 말했다. 하나님 이야기를 많이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홀로 남겨진 누나

동생이 떠난 뒤 찾아온 변화들이 있다. 미현 씨는 동생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됐다. 자녀들에게조차 이야기 꺼내는 게 쉽지 않다.

어린 아이들이 "외삼촌 왜 죽었어"라고 물으면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다. 몸과 마음이 아파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설명한다. 밖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형제가 어떻게 되냐" 물으면 "혼자"라고 말할 때도 많다.

"(동생의 자살을) 숨기고 싶어요. '가족은 뭐 하고 있었냐' 생각할 것 같아서요."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도 바뀌었다. 미현 씨는 사회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동생 죽음 이후 한 개인의 죽음은 사회구조와도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개인의 선택과 능력이 아니라, 어쩌면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문제이지 않을까요. 만약 한준이가 살아 있다 해도, 무직에다, 고졸이고, 기술도 없는 사람을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회 부조리를 볼 때마다 극심한 분노가 느껴져요."

   
▲ 떠난 사람은 말이 없고, 남은 사람은 상실감과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미현 씨는 인생의 기로에 서 있는 이들을 향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보통 사람들은 타인의 자살 소식을 뉴스로 들어도 크게 안타까워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동생이 죽기 전까지 미현 씨도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자살 뉴스를 다른 시각으로 본다. 유가족들이 겪을 슬픔과 트라우마에 마음 쓰인다.

"(자살 뉴스를 볼 때마다) 그때 느낌과 장면이 떠올라요. 냄새까지도… 남아 있는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발견했을 가족은 너무 힘들어 할 거예요."

조사에 의하면, 자살자 유가족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을 더 많이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적은 없어요. 다만 '죽는 게 생각보다 쉽네'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죽음은 되게 크고, 힘들 게 넘어가는 게 아니구나' 하고요. 그런데 이따금 무기력하거나, 의욕 없어 보이는 우리 아이들 볼 때마다 (동생과) 오버랩돼서 놀라기도 해요."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으면"

지금 이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미현 씨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동생 장례식 때 하신 말씀이에요. '멍청한 놈이, 친구들도 이렇게 많이 왔는데 왜 죽어! 왜 말 한마디도 못하고, 멍청한 짓을 했냐'며 다그치셨어요. 한준이 친구들 정말 많이 왔어요.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며 같이 슬퍼했어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약인지 모르겠다. 미현 씨는 예전만큼 울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뿐인 동생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다. 세 아이,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면 친정이, 특히 동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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