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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슬픔은 어디서 오는가

영화 '한강 블루스'로 보는 고통·위로·헌신…이무영 감독 "하나님, 환난 가운데 피할 길 내셔"

이용필 기자   기사승인 2016.10.16  21:5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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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한강 블루스'(Han River, 2016)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띵동, 띵동, 띵동…. 초인종이 연거푸 울린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른다. 무언가에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한 젊은 여자가 나타난다. 여자는 '파란' 물속에서 부유한다. 감긴 두 눈, 무표정한 얼굴, 저항 없는 몸짓은 삶에 작별을 고하는 듯하다.

이어 화면은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하늘 위에서 서울의 남과 북을 가르는 한강을 비춘다. 가늘고 길게 늘어지는 찬송 '이 험한 세상' 멜로디는 한강을 타고 흐른다.

9월 22일 개봉한 영화 '한강 블루스'(이무영 감독)의 도입부다. '한강 블루스'는 행복한 삶에서 밀려나, 비루한 삶으로 몰린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블루스가 흑인 노예의 슬픔을 담고 있듯, 영화도 슬픔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6년 만에 신작을 발표한 이무영 감독은 '한강 블루스' 기획·각본·연출을 맡았다. 앞서 이 감독은 '아버지와 마리와 나'(2008)에서 혈연으로 이뤄지지 않은 가족 공동체를 그렸다. '한강 블루스'도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네 사람의 연대를 보여 준다. 저마다 외줄 타듯 극적인 삶을 살지만, 가족처럼 서로를 위한다.

네 명의 주인공은 모난 돌 같다. 평범한 삶에서 삐죽 튀어나왔다. 실수로 갓난아이를 죽인 죄책감에 집을 나와 노숙자가 된 의사 장효(봉만대), 자신을 좋아하던 여자의 자살로 자신도 죽으려는 신부 명준(기태영), 임신한 가출 소녀 마리아(김희정), 생물학적으로 남자인데 마음은 여자인 트랜스젠더 추자(김정팔). 성당 수녀들을 제외하고 누구도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족조차도.

   
▲ 이무영 감독이 6년 만에 '한강 블루스'를 들고 복귀했다. 혈연으로 이뤄지지 않은 대안 공동체를 그렸다. 사회에서 낙오된 이들의 삶은 슬프지만, 잔잔한 위로를 안겨 준다. ('한강 블루스' 공식 포스터)

영화는 한 여자의 자살로 시작한다. 자살은 한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떠난 이와 달리 세상에 남은 이는 슬픔, 고통과 마주한다. 여자의 죽음을 알게 된 신부 명준도 뒤를 따르려 한다. 대교 난간에 선 그는 신을 향해 울부짖는다.

"당신을 위해서 모든 걸 다 버렸습니다. 당신만을 사랑하라고 해서 사랑하는 여자도 포기하고, 신부의 길을 택했잖아요. 근데 이게 뭡니까, 하느님. 그 여자가 죽을 때 무슨 염치로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셨냐고요! 예?"

명준은 차디찬 겨울 한강에 몸을 던졌다. 지나가던 노숙자 장효가 명준을 살린다. "살고 싶지만, 무조건 죽어야 한다"는 명준에게, 장효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거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는데, 이 세상에 무조건 죽어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

신에게 죽음으로 복수(?)하려 한 명준은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삶을 이어 간다. 성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장효 집(텐트)에 머문다. 갈 곳 없는 10대 소녀 마리아, 그리고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규정'된 추자도 함께다. 영화는 네 명의 주인공을 통해 위로·헌신(희생)·회복(치유) 메시지를 던진다.

"주님은 환난을 이길 힘을 주신다"

   
▲ 이무영 감독(사진 왼쪽)은 영화 흥행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한강 블루스'를 보고 누군가가 '다른' 결정을 내리고, 위로를 얻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기독교 자살 예방 센터 라이프호프(조성돈 대표)는 10월 13일 서울 신촌 필름포럼(성현 대표)에서 '한강 블루스'를 공동 관람했다. 영화 상영 이후 이무영 감독과 함께하는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다.

이 감독은 조성돈 대표와의 대화에서 "세상 영화 같지만, 자세히 보면 신앙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영화에 두 가지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했다. 주인공들에게 굉장히 많은 슬픔이 찾아오는데 잘못(죄) 때문에 오는 건지, 연단 차원에서 오는 건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은 위로하고 길을 내신다고 했다. 이 감독은 "주인공(장효)의 삶이 무너졌지만, 결국 회복할 수 있게 길을 내신다. 하나님이 어려운 삶을 위로하시고, 환난 가운데 피할 길을 내신다는 게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것도 너무 많이 일어난다. "하느님. 그 여자가 죽을 때 무슨 염치로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셨냐"는 대사는, 믿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보거나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하나님을 향해 절규했던 세월호 유가족들도 그렇다.

감당할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은 어디서 오는 걸까. 영화 속에서 신부의 죽음(명준은 한강에 몸을 던진 한 여자를 구하고 대신 죽는다 - 기자 주)을 지켜본 마리아는 장효에게 "견디기 힘든 슬픔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고 묻는다. 장효는 "잘 모른다"고 답한다. 장효의 답은 곧 이무영 감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대사는 100% 명확하게 신앙적이다. 믿는 사람들은 이쪽(세상)이 아닌 죽음 이후 건너가는 영원한 삶에 목표를 둔다. 이쪽에 있는 사람은 아직 과정을 건너가지 못했고, 시험 가운데 있으니 당연히 어려운 거다.

신앙을 떠나서 생각한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상실의 고통이 있다. 죽은 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는데, 솔직히 그건 사람을 잃어버린 나의 슬픔이다. 자기 연민이 강하다. 그 사람 없이 살아 내야 하는 내 삶의 슬픔 같은 거다. 확실히 죽은 자보다, 시험을 감내하며 살아 숨 쉬는 자들의 고통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원망스러우면 원망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몽니를 부려도 괜찮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 고통이 있지만, 주님께서 이길 힘을 준다고 믿는다."

심판 대신 포용과 이해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캐릭터를 꼽으라면 '추자'다. 트랜스젠더 추자는 여장을 하고 다닌다. 노란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하고, 진한 매니큐어를 바른다. 추자는 장효를 '오빠'라 부르고, 장효는 추자를 '이년'이라고 부른다.

추자 딸을 만난 명준은 "마음이 여자인 걸 아빠가 스스로 정한 건 아니잖아요"라며 대변하고, 
장효도 "모양이 어떻든 다 그분 자식들 아닌가"라며 추자를 위한다. 보수 기독교 세계관에 반하는 관점이지만, 이 감독은 추자에게 애정이 많이 간다고 말했다.

"개신교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발칙한 개념인 걸 안다. 하지만 휴먼 섹슈얼리티를 공부해 보면, 사람의 정체성은 출생부터 부여된다는 걸 안다. 과학적으로도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상에는 성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왜 주님이 이런 환경을 만들었을까. 사실 저는 답이 없다. 답이 없으니까 세상에 던져 놓고, 우리가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살도 똑같다. 자살하면 주님이 사자를 보내 그 사람을 지옥에 던지실까? 절대 답을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심판'이라는 답보다 조금 더 포용하고, 이해하고, 사려 깊게 고민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봤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것들에 관용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존재하는 것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용과 관용 이 두 가지가 사회에 가장 필요한 마음인 것 같다."

위로는 어디서 오는가

   
▲ 주인공 장효(사진 오른쪽)는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린 영혼이다. 자살을 시도한 신부 명준(사진 왼쪽)을 통해 치유를 얻는다.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온 그는 다시 용기를 내 세상으로 돌아간다. (한강 블루스 공식 포스터)

위로를 해 줘야 할 신부 명준은, 장효를 보고 자기 아픔은 크지 않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용서를 구한다. 장효와 명준은 추자가 딸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수녀가 되겠다는 미혼모 마리아를 응원한다. 이무영 감독이 생각하는 '위로'는 하늘에서 햇빛이 내려오듯 극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위로는 대체적으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괴로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오히려 상처 있는 사람들이 남을 위로할 수 있다. 정작 나 자신은 모르지만, 그런 도구로 쓰일 수 있다.

주님의 역사는 오묘하다. 신부는 노숙자 장효와 함께 지내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나중에는 어마어마한 헌신을 한다. 그리고 신부의 죽음으로 장효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마리아가 낳은 아이를 입양해서. (신부의 희생처럼) 헌신해야 할 삶을 발견한 것이다. 목숨을 걸고 아이를 지켜야 할 사명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죽어 있다면 위로가 될 수 없다"

자살로 시작한 영화는 장효가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보통 영화 결말이면 주인공은 행복과 설렘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효는 그렇지 않다. 뭔가 초조해 보이면서도 불안하다. 이 감독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완전히 냉소적인 태도로 삶을 파멸로 몰아가던 장효에게 불안한 마음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다시 아내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두려울 것이다. 오랫동안 사회구조 바깥에 있다가 다시 돌아가 일원이 돼야 하는데, 무서울 것이다. 저는 그게 우리네 삶이라고 생각한다. 불안한 마음으로 회복을 통해서 가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 이무영 감독과의 대화는 기독교 자살 예방 센터 라이프호프(조성돈 대표)가 주관했다. 행사 직후 참석자들이 이 감독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한강 블루스'는 저예산 영화다. 총 제작비는 8,000여만 원밖에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2,000명 정도 봤다. 결과만 놓고 보면 씁쓸할 수도 있지만, 이무영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 영화를 보고 '다른' 결정을 한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 감독과의 대화가 끝날 무렵, 이 감독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주님은…주님은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고, 우리가 죽어 있다면 위로가 될 수 없다. 살아 있기 때문에 위로는 전달된다. 어려운 환경에 살더라도 살아남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위로를 느끼셨으면 좋겠다."

   
▲ '한강 블루스'는 노숙자, 신부, 10대 미혼모,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강 블루스' 공식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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