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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배려한다는 총회, 여성 목소리 담지 못했다

[101회 예장통합 교단 총회 참관기] 세월호 부스 마련했지만 아쉬움 남아

이진수   기사승인 2016.10.11  19: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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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참관기는 교회개혁실천연대 교단 총회 참관 활동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 편집자 주

어릴 때부터 기독교인으로 자라면서 교회에 대한 이런저런 꿈을 꾸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좋은 교회를 향한 어떤 꿈은 내 삶에서 실제 이루어지기도 했고, 다른 꿈은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아 있다. 어떤 경험은 따뜻하고 좋았지만, 또 다른 경험은 교회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나는 현재 교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 회의장 안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세월호 부스였다. (사진 제공 교회개혁실천연대)

총회가 어떤 일을 하고, 목사님·장로님들은 어떻게 회의할까 궁금하던 차에 교회개혁실천연대가 놓아준 징검다리를 딛고 예장통합 총회를 참관할 수 있었다. 총회 장소인 안산에 도착해 보니 교회 주변에는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한참 동안 주변을 살피다가 이웃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안전한 곳을 간신히 찾아 주차에 성공했다. 마중 나온 간사님과 만나니, '참관'이란 명찰을 건네주신다.

총대들과 다른 색깔의 명찰을 받고 어색하게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본당 정면에 마련된 세월호 유족들 부스였다. 예장통합이 안산이란 상징적 장소를 택한 이유가 잊히고 외면받고 있는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 들었다. 그 상징성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초입에 살짝 긴장이 풀렸다. 이런 기분 좋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회무가 시작되면서 사회자가 전체 총대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이 회의 상황이 인터넷으로 중계되니 품위를 지켜 주십시오." 그런 당부 때문일까? 나는 4일 중 3일을 참관했는데 적어도 내가 참석한 회의에서는 인터넷에서 종종 보곤 했던 일종의 난장판은 보지 못했다. 또 생각했던 것보다 회의 자체는 효율적이고 원활했다.

총대 1,500명이 모여서 하는 회의가 과연 가능할까 그런 마음이 들었는데 실제 가능했다. 사전에 정리된 보고들이 올라왔다. 필요한 경우 의견이 개진되었고, 토론도 일부 있었다. 대부분 결론을 내렸다. 첨예한 안건이 있을 때마다 중간중간 고함을 지르는 분이 종종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 주는 분들의 농담과 재치도 한몫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무난했던 회의였다고 생각된다.

   
▲ 총회 내 여성 비율은 대단히 낮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도 제한적이었다. (사진 제공 교회개혁실천연대)

그러나 불편한 몇 가지가 있었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총회 안에 여성 비율이 너무 낮고, 역할이 성차별적이었다는 점이다. 내가 알기로 예장통합은 여성 안수를 가결한 지 시간이 좀 흘렀다. 전체 총대들 가운데 여성 비율은 겨우 1.6%밖에 되지 않았다. 이를 해소하려고 총회 기간 중 '여성위원회'가 노회에서 총대를 파송할 때 여성 1인을 할당해 달라고 청원하였으나 이것도 부결되었다.

세월호 부스까지 마련한 총회가, 오랜 기간 헌신만 하고 소리를 죽이며 교회를 섬겨 온 여성들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총회 총대는 각 교회 대표들인데 교인의 반수가 넘는 여성들 의견을 어떻게 수렴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총회뿐만이 아니라 그 산하 조직들에서도 여성 비율이 어떨지 짐작이 된다.

여성들을 위한 배려는 아쉬움을 넘어 심각한 문제로 보였다. 총회에는 총대가 아닌 여성들도 참여했다. 그분들은 대부분 예배를 돕는 합창단원으로, 총회 임원들 축하 시에 꽃다발을 건네는 분들이었다. 일종의 '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검은색 양복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남성 중심의 총회 한복판에 화사한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등장해 꽃을 건네주는 모습은 너무 불편했다.

이제 이런 어색한 광경을 우리 사회에서 교회 말고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이것이 매우 불편하다는 것을 총회에 모인 분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축하 행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진 제공 교회개혁실천연대)

다음으로 축하 행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받았다. 총회장 이임식과 취임식이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할 필요가 있는가 싶다. 교회를 섬기겠다고 간절히 호소하고 선거를 하였는데 실제로는 최고의 명예를 얻은 개선장군 같은 느낌이다. 그 자리에 오르려고 14억이라는 거액의 선거비용을 교회가 지급했다고 사회로부터 손가락질받는 판국에 거창한 축하 의식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겨우 1년짜리 직책이어서 실제로 어떤 것도 추진하기 힘든 구조인데 말이다.

이취임식의 화려함과 과도한 예우를 보면서, 아무리 생각하고 유추해도 십자가를 지러 가신 예수님은 떠오르지 않았다. 거기 모인 총대들에게 이 광경은 익숙할지 몰라도 외부인인 나는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만약 젊은 세대가 이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광경이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역시 나와 다르다며 등을 돌리게 될까. 아는 분이 교회 직분을 맡는다며 연락이 올 때마다 참여해서 느꼈던 그 불편함이 고스란히 이번 총회 축하 예식에서 느껴졌다. 이 불편한 마음은 무엇일까?

이단 사면에 관한 논쟁이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난 것도 아쉽다. 예장통합의 이단 사면 문제는 한국교회를 뒤흔들었다. 총회 사회를 보던 분이 앞으로 이것 때문에 이단들이 소송을 하게 되면 힘들어진다며 이단 사면 반대 측을 은근히 협박하기도 했다. 다수 총대도 꽤 격앙되어 있었고, 담당자들을 향한 사과 요구도 집요했다. 실제 담당자들은 아주 소극적인 사과만 했다.

자존심이 걸려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과라기보다 자기변호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총회는 은혜로(?) 덮는 것을 선택했다. 개별적으로 재판국에 고소할 수 있다고 하고, 총회 석상에서는 더는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 취재를 위해 계속 예의 주시하며 참관하고 있던 기자들도 어이없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싱겁게(?) 상황은 종료되었다. 과연 종료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왜 이단을 해제하고 사면시키려 했는지, 혹 그 대가로 주고받은 것은 없는지, 또 친분이 그 결정에 작용한 것은 아닌지…. 궁금한 것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상황은 종료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계속 지켜볼 일이다.

많은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으나 이만 줄이고자 한다. 참고로 참관은 잔잔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고쳐야 할 것도 많아 보였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참관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비교해 보고 싶다.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다. 총회 기간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를 녹음하고 메모하고 실시간으로 SNS에 올리며 애쓴 교회개혁실천연대의 수고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고단하지만 그런 노력 덕에 한국교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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