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10월 9일은 엄청 추웠죠. 수은주는 7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날 시청 광장에서 열린 '깊은 회개 집회'에 오신 분들 중에도 패딩 점퍼를 입고 오신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한국교회는 꼭 덥거나 추울 때 시청에서 기도회를 하더군요. 32도 폭염 주의보에도 10만 명이 모였던 지난해 평화통일 기도회와 핵무장을 주장하기 위해 영하 18도에 7,000명이 모였던 올 초 국민 기도회가 생각났습니다. (모두 제가 간 건 함정) 아무튼 폭염과 혹한을 뚫고 기도하러 나오는 열심 자체는 대단합니다.

'크리스천' 노숙인이 QT 중인 교인들에게 말을 걸었는데…

장장 네 시간짜리 집회, 추위를 피해 잠시 시청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에도 교인분들이 계시더군요. 일가족으로 보이는 성인 남성, 여성과 어린 여자아이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QT를 하고 있었습니다. 통성기도 소리가 시청 지하까지 파고들어 이분들 기도를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옷을 세 벌 껴입은 한 남성이 박스 하나를 들고 걸어옵니다. 여기서 주무시려는 분 같았습니다. 머뭇거리시다가 제게 "혹시 돈 좀 줄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저는 현금이 없었습니다. 지갑에 있는 거라곤 지난 6월 휴가 때 쓰고 기념으로 남긴 2불짜리 홍콩 달러 지폐 한 장. 순간 왠지는 모르겠는데 제 자신이 좀 한심하더군요. 멋쩍게 웃으시던 그 남성분은 QT를 마친 일행에게 묻습니다.

"저도 교회 다닙니다. 다니엘서 6장에 사자굴에 들어간 총리 다니엘이 나오죠…"

장황한 서론의 귀결은 '돈 달라'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요컨대 "나도 믿는 사람이니 일단 긴장 푸시라, 근데 오늘 밥을 못 먹었다. (믿는 사람끼리) 서로 사랑 베풀고 살면 안 되느냐"는 말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던 일행은 경계하는 눈초리가 역력했습니다. 그들은 대답 대신 빙긋 웃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뻘쭘(?)해진 상황에 저와 노숙인 분만 남았네요. 다시 저에게 말을 거십니다. 13살에 고아원을 나와 60살이 되도록 거리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땐 "예수 믿으려면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 내용을 잘 아시네요"라고 묻자, 그는 7년 전 예수를 믿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합니다. 계기가 뭐냐 물으니 갑자기 노래를 부릅니다.

호렙산 떨기나무에 나타나신 하나님
모세를 부르신 주 하나님 하나님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 너를 도와주리라
고통 속에 있는 내 백성 어서 찾아가라
불꽃 떨기 속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부르신 주 하나님 하나님

불꽃 떨기 속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
약하고 힘없는 내 백성을 찾으라 찾으라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 너를 도와주리라
억압받고 있는 내 백성 어서 구하여라
불꽃 떨기 속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부르신 주 하나님 하나님

길거리에서 누가 이 찬양을 불렀는데, 그때 확 돌아섰다고 합니다. 그는 계속 노래를 부릅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오 이 기쁨…. 혼자서 눈감고 기도도 하십니다. 손짓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 갑자기 찬송을 부르십니다. 선생님은 영상과 사진을 얼마든지 찍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돌아갈 집도 가족도 없다고 합니다. 교회에는 안 나가시냐고 물으니 가기 싫답니다. 뭔가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용산역에서 주일 오전 10시에 예배가 있기는 한데, 밥은 안 먹고 나온답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항상 굶고,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이 있는 월~금만 서울역 등지에서 식사를 하신다고 합니다.

그분은 "돈은 안 줘도 괜찮으니 길거리의 천사들에게 더 많이 관심 가져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제가 노숙인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분은 그간 만난 노숙인들과는 뭔가 느낌이 달랐습니다. 여운이 남는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광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유대 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자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목사는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70년 만에 종식시키셨다며, 남북한 정부 수립 70주년이 되는 2018년이 "통일의 골든 타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공산주의와 동성애를 통한 사단의 방해를 물리치려면 회개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한국교회가 거룩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거룩. 레위인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교인들은 아멘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거리의 노숙인들을 멸시한다거나 섬기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무료 급식, 경로 식당, 복지관 등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노력은 몰라주고 개독교라고 욕만 한다"는 푸념도 사실이지요. 그러나 회개 집회에서 우리 사회 낮은 자들을 향한 메시지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 걸까요.

그나저나 따뜻한 국물이라도 함께 마시면 좋았을 텐데 취재를 핑계 삼아 자리를 떠 버린 저도 자책감이 큽니다. 저는 혼란스럽고 씁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여운이 계속 남았습니다. 그 어르신, 잠은 잘 주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쉬움이 길게 남습니다. 성함도, 연락처도 모르고, 다시 만날 기약도 없지만, 다음번 용산역 갈 때는 주의 깊게 살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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